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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여름 Apr 19. 2023

17. 사랑의 색깔

오색 수제비

큰 창문이 있는 자리에 앉았다

여름에 맛보는 수제비는 뜨거워서 

땀이 났다


창문으로 보이는 강물에 발을 담그고

세수를 하고 싶을 정도였으니


나는 오색 수제비가 나오자마자

끊임없이 수저질을 했는데도 

콩나물시루에 콩나물처럼 

오색 수제비가 그릇에 그득했다


맛있게 좀 먹어봐

오색 수제비로 유명한 집이야

너 수제비 먹고 싶다며


겨울에 했던 말을 여름에 기억해 내는 건 

어떤 심리일까 


앞에서 그는 땀을 닦으며

수저를 든 채 나를 채근했다


오늘 같은 날은 콩국수가 낫지 않나


무심코 나온 말을 그는 듣지 않은 건지

듣지 못한 건지 국물까지 들이마시며 

오색 수제비를 먹었다


얼마나 정성이야

그냥 밀가루 반죽만 한 게 아니라고 

이 다섯 가지 색을 내서 하나로 끓여내는 거 보면

보양식이 따로 없어


나는 자꾸 창문 너머 강물에 발을 담그고 싶었다

그러려고 반바지를 입고 나온 여자처럼 


그는 자기 그릇이 비고 나니 내 그릇은 보지도 않은 채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곧장 따라 일어나는 게 자존심이 상해 

잠깐 주저하듯 앉아있는데 무심코 바라본 옆자리에서는

위에서는 분주하게 수저질하는 사이 

아래에서는 연인의 다리가 뜨거운 것을 조심히 들어 옮기듯 

서로를 어루만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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