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결이 되지 않아 음성 사서함으로 연결되었습니다."
사랑이에게 전화를 하면 대부분은 이제는 익숙해진 남자 목소리가 들린다.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내면 이틀 뒤에 확인하는 경우도 있다. 답장보다 내 메시지에 하트나 체크로 읽음 표시만 남겼다. 함께 있을 때는 단답형으로 말을 하고 유튜브에 집중하느라 나와 눈 마주칠 시간은 없었다. 나는 아이의 침묵에 서운했다.
며칠 전, 마트에 갔을 때 사랑이의 손을 잡으려 손을 뻗었다. 하지만 끝내 나는 빈손이었다. 잠자리에 들 때도 "엄마, 손 잡아주세요."라고 말할 정도로 사랑이는 늘 내 손을 잡고 있었다. 손잡고 다니는 게 습관이 되어버렸는데 요즘은 내 손이 뜨겁다며 매번 피해버린다. 내 손이 좀 뜨겁다는 걸 알기에 "덥다"는 이유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외면당한 것 같아 매번 조금씩 상처가 깊어졌다.
손만 잡지 않는 게 아니었다. 말이 많은 아이는 아니었지만 물어보면 조근조근 대답도 잘했는데 요즘은 말수가 부쩍 줄었다. 물어야 말을 하는데 몇 마디라도 해주면 기뻤다. 주로 단답형으로 대답하거나 고갯짓으로 표현했다. 사랑이의 일상은 대부분 친구들과 게임을 하고, 노래방에 가고, 밥을 먹고, 쇼핑을 했다. 집에 있을 때는 혼자만의 시간에 빠져있었다. 나는 같은 공간에 머무르며 그 모습을 지켜봐 주는 주변인 같았다.
예전에는 아이의 행동이 마냥 예뻤고, '이 시기에 맞는 발달 과정이지'라며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하지만 요즘은 자꾸 서운해진다. '사춘기니까, 성인이 되어가는 준비 과정이니까'라고 머리는 아는데, 좀처럼 예전의 마음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내 맘인데 내 맘대로 참되지 않는다.
왜 이렇게 감정 조절이 안될까. 나도 내가 낯설었다.
'갱년기라 그런가?'
호르몬의 변화가 감정 조절을 어렵게 만든다더니, 정말 그런 것 같다. 전에는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넘어갔던 것들이 지금은 가슴에 콕콕 박힌다. 늘 부족한 사람이라 생각했기 때문에 그저 지금의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했을 뿐이었다. 그마저도... 사춘기 아이에게는 부담스러운 걸까.
나보다 아이가 우선인 삶을 당연한 듯 살았다. 나를 바라보며 웃어주고, 함께 놀아달라 조르던 아이였는데, 나를 향하던 시선이 사라진 만큼 서운함도 컸다. 내가 무슨 잘못을 한 건 아닌지 걱정이 앞섰고, 왠지 좋은 엄마가 아닌 것 같았다. 어떻게 하면 예전처럼 될 수 있을까 고민했지만, 방법을 찾을 수 없었다. 그건 아이의 몫이지 나의 몫이 아니었다는 걸 깨달았다. 아이를 계속 품 안에 두고 싶은 나의 집착은 아니었을까.
나는 서운함 대신 아이를 믿는 마음을 갖기로 했다. 아이는 스스로 잘 크고 있으니까, 아이에게 향했던 마음을 나에게로 돌리기로 하고, 그동안 미뤘던 박사과정 진학을 준비하기로 했다. 이게 맞는지는 잘 모르겠다. 나도 엄마가 처음이라서.
그래도 한 가지는 확신한다. 아이가 필요할 때 도움을 줄 수 있는 관계가 가장 중요하다. 이런저런 잔소리로 아이와 관계가 틀어지면, 아이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는 일이 생겼을 때 숨기게 된다.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 나는 서운한 마음을 흘려보내고 아이를 기다려주는 엄마가 되길 선택했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안 하는 건 아니다. 아이에게 되돌려 받을 생각은 지우고 내 마음에 후회가 남지 않을 정도는 한다. 결국 다 내가 좋아서 하는 거니까.
엄마도 감정이 있는 사람이라는 걸 인정하게 된 것도 얼마 되지 않았다. 사람은 누구나 감정이 있고, 엄마도 감정이 있으니 상처받고 아픈 건 당연하지 않을까. 엄마와 자녀 사이도 일방적인 헌신만으로는 건강한 관계가 될 수 없다는 걸 이제야 안다. '헌신하면 헌신짝이 된다'는 말처럼, 나는 사랑이에게 헌신짝이 되고 싶진 않다. 엄마와 딸의 관계를 떠나서 서로에게 좋은 사람으로 남길 바란다.
결혼정보회사에서 매칭매니저로 일하면서 부모와 자녀의 관계에 대해 생각할 때가 많다. 부모님이 자녀를 대신해 가입해서 진행하는 경우가 많은데, 결국 자녀를 설득하지 못해 만남을 취소하는 일이 흔하다. 부모는 자녀에게 쩔쩔매고, 나에게 미안해한다. 그 모습을 보면서 주관이 뚜렷한 성인 자녀를 대하는 것도 쉽지 않다는 걸 알게 됐다. 어느 순간부터 아이들은 부모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아니, 안 되는 게 맞다. 하지만 막상 그 상황에 직면하면 부모는 당황한다. 내가 요즘 그런 것처럼.
그래서 요즘 브런치에 이런 상황과 불편한 감정을 담고 있다. 친구들에게 말을 해봐야 자신의 삶의 무게로 힘들 텐데 나까지 그 무게를 더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든다. 세상은 온통 말은 많이 하고 듣지는 않는데, 나라도 많이 듣고 적게 말하며 살고 싶다. 그래서 글 쓰는 시간이 점점 늘어간다.
이런 과정을 나는 엄마로서의 성장통이라고 생각한다.
엄마도 상처받을 수 있다. 서운할 수도 있고, 때로는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런 감정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 그것이 건강한 엄마가 되는 첫걸음인 것 같다.
사춘기와 갱년기가 만났을 때, 서로 다른 호르몬의 변화 속에서 우리는 각자의 방식으로 성장하고 있다. 아이는 어른이 되기 위해, 나는 더 성숙한 어른이 되기 위해. 이 시간들이 지나고 나면 우리는 더 건강한 관계로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그때까지 나는 기다린. 아이를 믿으면서, 그리고 나 자신도 믿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