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 빨간 갱년기

by 예서연

"어디 아파? 얼굴이 빨개."


회의실에서 대표님이 나를 바라보며 걱정스럽게 물었다. 대표님의 시선이 내 얼굴에 꽂혔을 때,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속으로 '또다시...' 생각하며 나는 괜찮다는 듯 손을 흔들며 웃었지만, 속으로는 당황스러웠다.


또 티가 났구나. 요즘 매일처럼 얼굴에서 열이 나는 것 같은데, 감기에 걸린 것도 아니고 체온이 특별히 높은 것도 아니다. 그런데 거울을 보면 얼굴이 유독 빨갛다.


"열이 조금 있는 것 같아요."


얼버무리며 대답했지만, 사실은 알고 있다. 이게 갱년기 증상이라는 것을. 안면홍조라고 하던가. 그런데 아직 대놓고 "갱년기 때문에 그래요"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나이 듦과 여성성의 끝처럼 여겨지는 사회적 시선이 여전히 불편하다.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하다.


순간 내 딸 사랑이가 떠올랐다. 요즘 사춘기인 그 아이도 얼굴이 자주 빨갛다. '볼 빨간 사춘기'라는 말처럼, 생기로 물든 붉음이다. 그런데 내 얼굴의 붉음은 다르다. 생기가 아니라 열감이고, 시작이 아니라 끝으로의 신호다. 같은 붉은 얼굴이지만, 사랑이는 아직 나를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내가 몇 년 전 그 동료를 이해하지 못했던 것처럼.


몇 년 전 이전 회사에서 일했을 때가 떠올랐다. 옆자리에 앉았던 동료는 나보다 6살 정도 나이가 많았는데, 욕을 해도 해도 너무 했다. 회원에게서 전화가 오면 욕을 하고, 웃으며 전화를 받고, 전화를 끊으면 또 욕을 했다.

처음엔 그 동료가 마냥 신기해 그 광경을 구경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스트레스로 변했다. 내게 욕하는 게 아니란 걸 알면서도 어느 순간 울컥했다. 도저히 안 되겠어서 용기를 내어 내 불편함을 말하며, 욕을 좀 줄여줄 수 있을지 조심스레 제안했다.


그런데 동료는 참 단호했다.


"갱년기라 참아지지 않아요. 팀장님이 참아요."


그때는 이해할 수 없었다. 왜 욕하는 걸 참을 수 없다는 건지, 왜 갱년기를 이유로 드는 건지 납득이 가지 않았다. 그때의 나에게 갱년기는 그냥 '나이 들면서 겪는 어쩔 수 없는 변화' 정도로만 여겨졌다. 감정 조절 정도 의지로 할 수 있지 않나?


이제야 그 마음을 알 것 같다.


원래 추위를 많이 타는 편인데, 요즘은 자꾸 더워진다. 회사에서 아직 에어컨을 틀어도 답답하고, 집에서는 선풍기를 바로 옆에 틀어두고 순간순간 밀려오는 열감과 씨름하고 있다.


몸의 변화만큼이나 마음의 변화도 뚜렷하다. 예전에는 아무렇지 않게 넘겼을 말들에 욱하는 순간들이 늘어났다. 매칭매니저로 일하면서 겪는 감정노동이 예전처럼 잘 참아지지 않는다. 까다로운 회원의 요구나 무리한 부탁들이 예전보다 훨씬 버겁게 느껴진다. '이제야 온화해졌다'라고 생각했는데, 갱년기가 시작되면서 다시 감정의 파도가 심해지고 있다.


갱년기는 단순히 몸이 변하는 것만이 아니었다. 마음도, 감정도, 참을 수 있는 한계도 모두 변한다. 호르몬의 변화가 가져오는 감정의 롤러코스터는 의지로만 어쩔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 동료에게 왠지 미안한 마음이 든다. "갱년기니까 어쩔 수 없다"는 말은 핑계가 아니라 정말 간절한 호소였다는 걸, 왜 그때는 몰랐을까. 지금이라면 그 동료와 다르게 대화했을 텐데.


"힘드시겠어요.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까요?"


오늘도 대표님이 "얼굴이 빨갛다"라고 걱정해 주실 때, 나는 "갱년기 때문에 그래요"라고 솔직하게 말하지 못했다. 하지만 오늘 밤, 사랑이에게는 말해볼 생각이다.


"엄마도 요즘 얼굴이 자주 빨개져. 너처럼. 근데 너는 젊음이 예뻐서 빨개지는 거고, 엄마는... 음, 진짜 어른이 되느라 힘들어서 빨개지는 거야."


사랑이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하다. 아마 "엄마, 그게 뭔 차이야?"라고 물을 것 같다. 그러면 나는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차이는... 시간이 지나면 알게 될 거야. 그리고 그때가 되면, 엄마를 더 잘 이해하게 되겠지. 그때는 사랑이를 바라보는 사랑이를 꼭 닮은 사춘기 딸이 있으려나?"


빨간 얼굴을 가리려 파운데이션을 덧발라도 소용없다. 이 열감은 화장으로 숨길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래도 괜찮다. 이것도 내 삶의 한 부분이니까.


그리고 언젠가는 당당하게 말할 것이다.


"네, 갱년기 때문에 그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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