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월 25일

새로운 아르바이트

by 이잎싹



12월 마지막 주를 남기고 일하러 다니던 카페가 앞으로 직원들로만 구성해서 운영하기로 방침을 바꿔서 아르바이트생인 나는 그만두게 되었다.

7년 만에 단발머리로 시원하게 자르고 나와서 들은 소식이었다.

바람은 쌩 불고 연말이고 머리카락은 짧아져서 목이 휑하니 시렸다.

뭐 어쩔 수 없지 약간의 걱정이 있었지만 나는 막연히 어떻게든 되겠지 생각해 버리는 성격이어서 이번에도 어떻게든 되겠지 정 안되면 배달 아르바이트 하면서 손가락 발가락 동상 좀 걸리면 되지 뭐 낄낄거리고 말았다.


이참에 가족들이나 실컷 보고 오자 싶어서 부산에 내려가서 새해의 첫 해가 떠오르는 것도 보고 일주일을 푹~ 쉬고 또 대구 가서 삼일을 탱자탱자 놀다가 1월 10일경 서울로 돌아왔다.

부산에 내려간 첫날부터 3일간은 갑자기 몸살에 오한에 아파서 골골거렸는데 가족 품에 있었으니 얼마나 다행이야.


서울로 돌아온 날은 월급날.

통장에 12월의 노동이 숫자로 찍혀있었다.

통장을 스치고 가버렸지만.

여하튼, 서울로 돌아온 것도 온 거고 이제 월급 나올 구석도 없다 싶으니 현실로 돌아왔구나 싶었다.

무슨 일이라도 찾아야겠다 싶은데 친구가 쿠팡물류센터랑 컬리물류센터 같은 것도 있다고 알려줬다. 같이 하자고. 결과부터 말하자면 친구는 안 하고 나만 했다.


1월 한 달 동안 세 번 가서 일했다.

18시~4시까지. 야간근무로. 야간수당이 붙어서 야간근무가 조금 더 많이 번다.

근데 물류센터가 보통 외진 곳에 있어서 우리 집 바로 앞에 셔틀이 오지만(이건 너무 좋은 점) 타고 가려면 16시 30분쯤부터는 집에서 나와야 한다. 그리고 집에 돌아오면 5:30 쯤 되고. 그러니까 꼬박 13시간 정도를 쓰게 되는 거다.


첫날 갔을 때는 멘털도 좀 털리고 괜히 더 힘들게 느껴졌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현타가 왔었나 보다. 현타? 뭐가 현타지? 이 글을 쓰면서 생각해도 웃기다. 현타가 왔었다고 말하는 게 부끄럽다. 일 할 수 있음에 감사하고 일할 수 있어서 다행이고 즐거워야 맞는 게 아닌가?


무튼 그리고 또 가려고 했는데 쿠팡물류센터 알바가 은근 경쟁률이 세다. 특히 요즘처럼 방학기간에는 대학생들도 단기알바를 하려고 몰리기 때문에 신청해도 일이 잘 안 잡힌다.

그렇게 1월 둘째 주에는 하루만 일을 할 수 있었다.

하기 싫어 가기 싫어.. 해놓고 안 시켜주니까 갑자기 열정 생기는 이 심보 무엇?

매일 신청하다 보니 그 이후로 두 번을 더 나갈 수 있었다.


근데 쿠팡 알바는 아무래도 밤을 새우는 일이다 보니 이틀을 연달아서 하는 건 무리다.

그래서 설날 연휴를 며칠 앞두고는 일부러 쉬면서 체력을 보충했다. 설날 연휴에 풀근무를 할 작정으로!

쿠팡은 주휴수당, 심야수당, 초과근무수당, 연휴수당 등 법적으로 지켜야 하는 수당은 다 챙겨준다.

그래서 설연휴 동안 풀근무를 하면 이 모든 수당을 받을 수 있기에 꼬박꼬박 잊지 않고 신청을 했는데 단 한 번을 안 불러주더라 하하

본가에는 며칠 전에 길게 다녀왔으니 연휴 동안 일 하려고 계획을 잡아놨는데 결국 혼자 집에서 푹 쉬면서 책 읽고 운동하고 음식 해 먹고 요양도 이런 요양이 없었다. 거의 홈캉스.


시간이 남아돌다 보니 이것저것 보다가 당근마켓으로도 당일 알바를 구할 수 있던 것 같은데? 번쩍 생각이 들어서 찾아보다가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의 한식주점과 라멘집에 고정 아르바이트로 지원을 넣고 면접을 보고 왔다.


두 곳 모두 바로 일을 하게 되어서 한식주점은 토, 일, 월 그리고 라멘집은 내가 시간 되는 날 조율해서 일하기로 하고 라멘집 면접 본 다음날인 오늘, 일을 하고 왔다.


오랜만에 음식점 서빙을 나름 열심히 했더니 시간도 잘 가고 재미도 있었다.

이곳에는 거의 모든 직원이 일본인이고 한국인은 점장님과 직원 한 분 그리고 나뿐이다.

그래서 잡담할 때 일본어로 한다. (나 빼고 일본어 다 잘 함.) 나한테 일 하려면 일본어를 공부해야 한다고 하는데 나 일본 유학 왔냐..? 보통 같으면 일본유학생이 한국에서 아르바이트하려면 한국어를 배워야 하는 거 아닌가..? 근데 이런 상황도 꽤 재밌다. 여하튼 걸어서 왕복 두 시간 정도 되는데 아르바이트 다니면서 유튜브로 영어 공부도 해야겠다.


기계도 안 쓰면 녹슬고 물건도 안 쓰면 고장 나는데 몸도 마찬가지다. 움직이고 자꾸 써야 윤이 나고 반짝반짝 해지는 법이다. 일을 너무 많이 하면 뼈마디가 굵어지고 자세가 흐트러지고 힘들어서 빨리 늙는다는데 그건 생각하기 나름 아니겠나?


일 하면서도 힘들다 힘들다 죽겠다 죽겠다 하면 그냥 죽는 거고

아싸 돈 번다! 즐겁다! 부자가 될 테다! 다 배워서 나중에 써먹어야지! 일 할 수 있음에 감사합니다! 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뭐가 있을까 찾아서 해야지! 하면 보람차고 즐겁고 그래서 더 예뻐지고 또 모든 일이 잘 될 거라고 생각한다.

나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주연배우로서 지금의 이런 모든 경험이 나에게 피가 되고 살이 되어 배우로서의 큰 무기가 될 것이고 결국에는 칸의 여왕이,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의 주인이 될 것이다.

멀지 않았다. 끌어당기는 중이다 열심히. 그리고 이런 하루하루가 쌓여서 나를 부자로 만들어 줄 것이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다. 2023년의 세상은 나를 기특해하며 굉장히 호의적이다. 느껴진다. 자, 열려라 참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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