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2월 4일

모든 도전은 불편했지만

by 이잎싹



오늘도 열심히 산 나 칭찬해.


어제 새벽 3시쯤 잠들어서 오늘 아침 8시쯤 일어났다.

조금 더 일찍 자고 조금 더 일찍 일어날까?

나에게 아침시간이 더 잘 맞는지 저녁시간이 더 잘 맞는지 모르겠다.

아침 8시를 훌쩍 넘어서 일어나는 건 싫지만 저녁에 일 다 마치고 그냥 잠들기엔 시간이 아까워 온전히 나만의 시간을 보내다 보면 금방 새벽 2시를 넘긴다.

근데 또 하루에 여섯 시간 정도는 자야 컨디션도 괜찮은 것 같고.

흠 이렇게도 저렇게도 해보자. 보류.



주말에는 헬스장이 10시에 문을 열어서 오픈시간에 맞춰서 가서 운동했다.

오늘은 복근과 하체 운동하는 날. 알고 있는 모든 엉덩이 운동을 했다.


집에 와서 점심을 챙겨 먹고 30분 정도 잠들었다가 아르바이트하러 다녀왔다.


오늘 왠지 발이 무겁고 게을러지고 싶은 날이었는데 그래도 가서 사람들이랑 즐겁게 일하니까 금세 기운이 차올랐다. 토요일 밤의 한식주점에서 바쁘게 일하고 귀가해서 고양이들 밥 주고 화장실 치우고 씻고 따뜻한 물 한잔을 들고 노트북을 열었다.



내가 어린 시절에 했던 도전들을 기억했다.

나는 초등학교 6학년에 다닐 무렵에 연기를 처음 시작했다.

집에서 과자 사달라는 말도 하지 않던 내가 대뜸 연기학원 보내달라고 하니 부모님도 장난인 줄 아셨던 것 같다. 선뜻 보내주신 건 아니었다. 그래도 생전 뭐 해달라는 말 않던 막내딸이 학원 하나 보내달라고 하니까 보내주시긴 하셨다. 그렇게 다니게 된 학원에서 나도 몰랐던 나의 모습들이 툭툭 튀어나왔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어떻게 그렇게 도전할 생각을 했는지, 그 어린 나이에..

4개월 정도를 다녔을무렵 학원생들끼리 백설공주 연극을 준비하게 되었다. 제일 까만 피부를 가지고 있던 나였지만 주인공을 꼭 하고 싶어서 집에서 혼자 열심히 준비했다. 오디션에서 연기를 잘해서 아무도 반대 못하게 하려고. 그렇게 백설공주 역할을 기어코 따내서 연습이 시작됐는데 영화 오디션을 보게 됐고 그 영화에 출연하게 되면서 학원에서 진행 중이던 연극은 취소가 됐다. 주인공이 연습하다가 없어졌으니.. 그때 참 미안했던 기억이다.

초등학생 때 처음 연기를 접했던 그 당시도 그렇고, 대학교 1학년을 마쳤을 때도 그렇다.

나는 연극영화과만 가면 매니지먼트 회사에서 찾아와서 스카우트해 가고 오디션 기회도 많고 그냥 당연히 전공 살려 취직하듯, 물 흐르듯 되는 건 줄 알았다. 하지만 막상 신입생으로 학교를 가보니 매니지먼트 회사는 단 한 번도 찾아와 주지 않고 오디션은커녕 매일같이 학교에 박혀서 연극연습하고 술만 마시고 다른 수업은 잘 나가지도 못했다. 나도 학기 중에 학교만 진짜 열심히 다녔는데 1학년 끝무렵에 위기감이랄까 지금이 아니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서 이대로 안주하면 안 되겠다 싶었다. 휴학을 결심했다. 부모님께 전화로도 말씀드리기가 두려워서 장문의 문자를 보냈다. 나중에 언니에게 들은 거지만 그 문자를 보고 언니랑 엄마랑 울었다고 한다. 부모님과 떨어져 지내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했을 막내딸 모습이 눈에 아른거리셨나 보다.

그렇게 휴학을 하고는 서울로 올라와 언니랑 방을 잡고 지내면서 아르바이트를 구하고 프로필사진을 찍고 포털에 검색해서 나오는 몇십 개의 엔터테인먼트 회사에 프로필을 우편으로 보냈다. 그때 찍은 프로필 사진이 아직도 눈앞에 선명한데 가관이다. 우편을 보낸 회사 중에 3,4곳에서 연락을 받고 미팅을 했던 걸로 기억한다. 외모지적을 받은 적도 있고 안될 거라는 눈빛은 항상 기본으로 깔려있었고 프로필 사진 지적도 받고..

또 한 번은 드라마 오디션에 지원해서 보러 갔는데 오디션장에서 벌벌 떨다가 집에 와서는 진이 빠져 하루종일 잠에서 깨어나지 못한 적도 있다. 긴장을 많이 했었나 보다. 그 후로도 몇십 번은 오디션장까지 가는 내내 ‘아프다고 할까?’ ‘사고 났다고 할까?’ 오디션에 참석하지 않을 변명을 생각하다 겨우겨우 용기 내서 오디션을 봤다. (머리랑 가슴이랑 다리랑 따로 놀면서 오디션장까지 몸을 질질 끌고 갔다. 셋 중 무엇이 더 힘이 셌을까?)

거절을 수백, 어쩌면 천 번은 받으면서 힘들기도 하고 울적하기도 하고 포기할까 싶기도 하고 (포기하는 게 왜인지 복수하는 기분이었다.) 또 에잇 뭐, 싶었다가 어떤 때는 무감각했다가 금세 잊어버리기도 하면서 계속했다. 매니지먼트 회사를 만나기 전에는 단역, 보조출연으로 나가는 에이전시에 있으면서 보조출연으로 드라마 현장에 가서 대사 한마디 있다고 긴장하면서도 좋아했던 적도 있었고 오디션을 빙자한 사기꾼도 만났고 상업연극에 참여했다가 출연료로 10원 한 장 못 받고 떼인 적도 있었다. 그런 일들과 들었던 수많은 말들이 머릿속에 뒤엉킨다.

그러면서 나는 참 복도 많고 운도 좋은 사람인게, 좋은 사람들도 수없이 만났다. 그분들 덕분에 버틸 수 있었다. 어딘가에서 상처가 나면 거기 가서 기댈 수 있었다. 흔들릴 때마다 나 자신보다 나를 더 믿어주고 붙잡아주었다. 그러다 보니 종종 연기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고 좋은 회사도 만나고 좋은 분들도 많이 만났다. 내가 어릴 때 동경하며 봤던 드라마의 감독님과도 작품을 함께 할 수 있었고 존경하던 선배님들과 대사를 주고받을 수도 있었다.


자주 시상식에서 소감을 말하는 내 모습을 상상한다. 그럴 때마다 고마운 사람들 생각에 목이 까끌하고 눈물이 차오른다. 분명 나보다 더 기뻐해줄 사람들. 감사해요. 감사합니다.

(갑자기 너무 감사한 마음이 들고 스스로 절대 잊지 말자고 되뇐다.)


여기서 중요한 건 이거다. 계속하는 것. 반복하고 계속하는 것.

지금은 내가 keep going!! 외쳐도 아무도 듣지 않을지 모르지만 곧 내가 더 유명한 배우가 되면 꼭 말해주고 싶다. 멈추지 말고 계속하라고. 했는데 아닌 것 같으면 다르게 하면 된다고. 실수하고 실패해야 더 큰 성공을 얻을 수 있다고. 작은 실패를 반복하고 큰 성공을 꼭 맛보라고. 여태껏 해온 게 아깝지 않냐고 지금 80% 왔을지 90% 왔을지 누가 알겠냐고. 일단 하는 게 중요하다고. 계속하라고.



모든 도전은 어렵고 불편하고 어색했다. 13살 때도, 23살 때도 33살 때도.

13살의 어린 소녀도 했는데 20년이 지나서 지금 못하겠다 도망가는 부끄러운 어른, 안 할 거다.

끝까지 걸어가서 내가 산 증인이 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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