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감은 프리랜서의 숙명인가요?

일이 너무 많다가, 일이 너무 없어졌을 때

by 민디


프리랜서를 선언한 이후, 내가 가장 의식적으로 관리하고 있는 감정은 ‘불안감’이다.


이상한 일이다.


일이 넘쳐흐르던 때에는, 가기 싫은 회사에 매일 출근하던 때에는 낮 한가운데 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이 그렇게 부러웠다. 내 시간을 온전히 내 마음대로 쓸 수 있다는 것. 그 자유를 얼마나 갈망했는지 모른다. 회사에 갈 때마다 스스로에게 물었다. 이렇게 하루 아홉 시간 일주일의 대부분을, 정년이 될 때까지 회사에서 보내며 살아야 한다고? 너무 불행한 인생 아닌가.


그래서 퇴사를 결심한 김에, 하루라도 빨리 내가 원하는 삶을 살아보고 싶어 프리랜서를 선택했다.

그런데 자유가 생긴 자리에는 예상보다 큰 불안이 함께 들어왔다. 손에 쥐어진 일이 없을 때의 공백은 생각보다 훨씬 컸다.






은근한 안정감을 주던 촬영장의 어두운 조명


방송작가로 일하던 시절,

정규 프로그램이 아닌 이상 하나의 프로그램은 보통 3개월 남짓한 생명력을 가졌다. 기획하고, 송출하고, 그리고 끝. 다음 프로그램이 정해질 때까지는 무기한 대기 상태였다. 그 시간이 유난히 불안했다. 지금 돌아보면 여행도 다녀오고 조금은 느긋하게 쉬어도 됐을 텐데, 그땐 어렸고 ‘안정되지 않은 상태’라는 말 자체가 마음을 잠식하던 시기였다.


프로그램 하나가 끝날 때마다 같은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방송작가를 그만둬야 할까. 한 살이라도 더 어릴 때 남들처럼 회사에 들어가 보는 게 맞지 않을까.


방송 일은 너무 재밌었다. 아이돌과 연예인을 워낙 좋아했던 탓에 매 출근이 좋았고, 어쩔 때는 '내가 돈을 받고 일해도 되는 걸까?' 싶을 정도였다. 그런데 이렇게 좋아하는 일을 그만둘까 고민하게 만든 이유는 단순했다.


매일 같은 장소, 같은 시간에 출근했지만 내 책상은 늘 어딘가 잠시 빌려 쓰는 자리 같았다. 자리는 있었지만 내 자리는 아닌 느낌. 그 감각이 싫었다. 그래서 생각했다. 프리랜서 말고, 일반적인 회사에 정규직으로 들어가 보자고. 그렇게 하면 이 불안도 사라질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막상 회사원이 되었을 때, 나는 예상과는 전혀 다른 종류의 답답함을 느꼈다.

방송작가로 일하던 시절에는 팀마다 다르긴 했지만, 메인 작가님이 출근하지 않는 날이거나 특별히 사무실에 상주해야 하는 상황이 아니라면 비교적 자유로웠다. 잠깐 휴게실 침대에서 눈을 붙이기도 했고, 노트북을 들고 방송국 1층 카페에서 일을 하기도 했다. 일은 분명히 하고 있었지만, 자리를 지키는 방식만큼은 유연했다.


IMG_0725.heic 달콤한 딸기 케이크 하나를 옆에 두고, 1층 카페에서 일하던 날


회사에 들어와 보니 풍경은 완전히 달랐다. 기본값은 ‘내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이었다. 업무의 리듬보다 출근과 착석이 먼저였다. 하루 중 유일하게 밖으로 나갈 수 있는 시간은 점심시간뿐이었고, 그래서 나는 늘 무료로 제공되는 구내식당 대신 사비를 써서 근처 식당으로 향했다. 밥을 먹고 커피를 사 들고 동료들과 근처 공원에 앉아 시간을 흘려보냈다. 정말 하염없이. 그리고 정해진 시간이 끝나기 직전이 되어서야 다시 사무실로 돌아오곤 했다.


사무실에 눈치를 볼 사람이 너무 많다는 것도 답답한 이유 중 하나였다.
신입으로 회사에 들어간 나는 ‘밉보이면 안 된다’는 생각을 늘 마음에 달고 다녔다. 웃는 얼굴이 기본값이었고, 화장실을 오가다 누군가와 마주치면 빠짐없이 인사를 했다. 자연스럽게, 그러면서도 지나치게. 아주 보통의 신입들처럼 하루 종일 주변의 눈치를 보며 지냈다.


그런데 그 사소한 긴장들이 생각보다 빨리 쌓였다.
아무 일도 하지 않았는데 숨이 막히는 기분. 가만히 있어도 계속해서 누군가를 의식하고 있다는 감각이 나를 점점 지치게 만들고 있었다. 그나마 팀 분위기라도 부드러웠다면 숨통이 조금은 트였을 텐데, 애석하게도 내가 속한 팀은 사무실 안에서도 가장 날카롭고 경직된 조직이었다. 그 공기 속에서 신입들은 오래 버티지 못했다. 누군가는 나가고, 또 누군가는 들어왔다. 팀은 늘 사람을 새로 맞이하고 있었고, 그 사실 자체가 이곳의 분위기를 조용히 증명하고 있었다.







그래서 결국, 가장 중요한 질문이 남는다.

회사는 나에게 안정을 가져다주었을까. 그곳에 들어간 뒤, 나의 ‘불안감’은 정말로 해결되었을까.


대답은 단호하다. 전혀 아니었다.


회사에 들어와 보니, 그곳에는 또 다른 형태의 불안이 기다리고 있었다. 위로 올라가기 위한 경쟁은 생각보다 훨씬 치열했다. 방송작가로 일할 때는 일이 너무 많아 늘 사람이 부족했고, 내가 일감을 따내야 한다는 고민 자체를 해본 적이 없었다. 일은 알아서 굴러왔고, 나는 그 안에서 버티기만 하면 됐다.


하지만 회사에서는 달랐다. 시시각각 프로젝트마다 경쟁이 붙었고, 그중에서 ‘적임자’가 선별되었다. 연차가 쌓인다고 해서 자연스럽게 대우가 따라오는 구조도 아니었다. 대신 무한 경쟁 속에서 스스로를 증명해야 했고, 눈치껏 사회생활을 해내며 위로 올라가야 했다. 안정될 거라 믿었던 선택 앞에서, 불안은 또 다른 모습으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이 구조 속에서 점점 더 답답해졌다. 경쟁을 즐기며 에너지로 삼는 성격도 아니었고, 동료를 공동의 문제를 함께 문제를 풀어가는 진짜 동료로 대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들의 시선 속에서 나는 늘 경쟁자였다. 견제와 긴장은 공기처럼 흐르며 하루에도 몇 번씩 사람을 조였다. 그래서 늘 피곤했다. 무엇보다, 나 역시 서서히 그 방식에 물들어가고 있다는 사실이 가장 괴로웠다. 그때부터 회사 생활 전반에 대한 환멸이 조용히 스며들기 시작했다.


운이 좋게도 첫 회사 생활을 대기업에서 시작할 수 있었지만, 나는 이런 구조가 규모가 큰 조직일수록 더 선명하게 드러난다고 믿었다. 그래서 다음으로 선택한 곳은 규모가 작은 스타트업이었다. 하지만 그곳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형태만 달라졌을 뿐, 비슷한 불안감과 압박이 여전히 나를 조여 왔다.






이런저런 시도를 거치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결국 이 ‘불안감’이라는 감정은, 없애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그리고 불안보다 더 견디기 힘든 감정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는 반드시 자리를 지켜야 하는 시간과 장소가 정해지는 순간, 특히 그곳이 많은 사람들이 모인 사무실일 때 숨이 막히듯 답답해져 당장 밖으로 뛰쳐나가고 싶었다. 그제야 비로소 이해하게 됐다. 아, 내가 방송작가라는 일을 선택했던 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었구나. 과거의 나는, 생각보다 훨씬 나를 잘 알고 있었구나.



지난 주말, 프리랜서 생활 관련 팁을 나누는 오프라인 커피챗에 다녀왔는데, 그 자리를 열어주신 마케팅 에이전시 대표님의 말이 유독 오래 마음에 남았다.


“일감이 끊기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을 없애보려고 몇 년 동안 안 해본 게 없었어요. 그런데 어느 날 문득 깨달았죠. 회사에 소속되어 있든, 밖에 있든, 아무리 대기업에 다니고 남들이 부러워하는 직장에 있어도 불안 없이 사는 사람은 없다는 걸요. 그래서 저는 이 감정을 없애려 하지 않아요. 그냥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이려고 합니다.”


그 말이 마음에 정말로 오래 머물렀다.

불안해서 다시 회사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들 때마다, 이 말을 떠올리며 나 자신을 조심스럽게 다독여 보려고 한다.


작가의 이전글30살, 퇴사만 6번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