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모록┃한 친구의 죽음이
내게 남긴 것

남은 자의 죄책감과 기억의 무게

by 빛나는조각

이 글은 트라우마 (C-PTSD, PTSD)를 겪고 있는 제가
삶에서 큰 사건 중 하나로 남아 있는 경험을 기록한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가족과 관계 속에서 받은 상처들을 주로 써왔지만,
이번에는 그와는 또 다른 무게의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꺼내려 합니다.


자살과 관련된 내용이 포함되어 있으니,
비슷한 경험이 있으신 분들은
자신의 마음을 최우선으로 두고 읽어주세요.


⌜잊혀졌다고 믿었던 기억⌟



10년도 훌쩍 지난 일이다.
잊었다고는 할 수 없지만 내 기억 속에서 희미해진 줄 알았다.
그런데 트라우마 치료를 받는 도중, 그 기억이 뜻밖에 불쑥 떠올랐다.


여린 아이였다.
나를 친구로서 존중하고 아껴주던 아이였다.
헤어질 때마다 내 뒷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지켜봐 주던 그 모습이 아직도 선명하다.
사물과 사람을 깊이 바라보고, 그 생각을 조심스레 글로 옮길 줄 알았던 아이였다.


그 친구와의 소중한 한 장면이 지금도 내 기억 속에 선명하다.
날씨가 좋았던 날로 기억한다.
우리는 조용한 카페를 골라 들어가 따뜻한 홍차와 스콘을 함께 주문했다.


늘 인생을 버거워하던 친구에게 나는 이렇게 말했다.
“인생이 홍차처럼 쓸 때가 많지만,
버터 향 가득한 스콘과 곁들이면 맛있어지듯이,
작은 행복들과 함께라면 우리 삶도 견딜 만해질 거야.”


친구는 그 말을 듣고 웃었고,
집에 돌아간 뒤 그 말이 인상 깊었다는 이야기를 문자로 보내왔다.
내 작은 말이 그 아이에게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었다는 사실이 기뻤다.


그러나 그 아이는 그런 미소 뒤로 깊은 그늘을 안고 있었다.
약을 먹어가며 나름대로 애쓰는 것 같았지만,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는 가끔 내게 세상을 등지고 싶다는 말을 하곤 했다.


사랑조차 평범하게 시작하지 못했다.
사람들에게 쉽게 마음을 열지 못했던 그는
극단적인 선택을 함께 이야기하는 익명 사이트에서 한 사람을 만나 잠시 기대며 지냈다.

그때 나는 친구의 외로움이 얼마나 깊고 심각한지 직감했다.

동시에 두렵고 무서웠다.
뉴스에서나 접할 법한 그런 모임을 친구가 찾았다는 사실이 낯설면서도,
그의 상태가 얼마나 심각한지 더욱 실감났다.


정말 그 아이가 세상을 등질까 봐,
그리고 남겨진 내가 느낄 슬픔이 두려워서…
나는 한동안 거리를 두었다.


삶이 너무 힘들다고 토로하던 친구였지만,
정작 눈물을 보이는 일은 드물었다.
그러던 어느 날 다시 통화가 되었을 때,
그는 부모님 이야기를 하며 처음으로 목 놓아 울었다.


나 역시 부모님으로 인한 어려움을 겪었기에,
다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는 마음이었다.

“힘들었겠다.”
나의 말에 그 아이는 더 목 놓아 울었다.




⌜남겨진 마음의 무게⌟


그리고 한 이주 정도 지났을쯤,
우리 둘 다 알고 지내던 또 다른 친구에게서 급히 연락이 왔다.
그 아이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었다.


처음엔 멍했고, 믿기지 않았다.
놀람과 공허함만이 온몸을 채웠다.
황급히 고속버스를 예약해 장례식장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도착해 문을 열었을 때, 나는 다시 한 번 멈칫했다.

친구의 동생이 너무나 내 친구와 닮아 있었기 때문이다.
그 순간 잠깐이나마, 내 앞에 친구가 서 있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아마도 그만큼 내가 그 친구가 여전히 살아 있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들어간 장례식장 안에는 친구의 사진이 놓여 있었다.
그 사진을 보고서도, 죽음이라는 사실이 도무지 와닿지 않았다.


그날의 일은 지금도 흐릿하다.
장례식장에 어떻게 있었는지,
얼마나 머물렀는지,
누구와 무슨 이야기를 나눴는지는 거의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그날 밤 잠을 자지 못했다는 기억과
내 마음을 스쳤던 생각만은 지금도 또렷하게 남아 있다.


“그때 울 때 더 들어줬어야 했을까?”
“한 번만이라도 더 안부를 확인했어야 하는데…”
“내가 괜히 힘들겠다고 말해서 더 감정이 증폭됐나…”


슬픔보다 먼저 밀려온 건 여러 가지 죄책감이었다.



자살로 가까운 사람을 잃은 이들이 흔히 겪는 반응을

생존자 죄책감[Survivor’s Guilt]이라고 한다.

이는 “내가 더 도와줄 수 있었는데”라는 자책과

“왜 나는 살아 있고 그 사람은 떠났을까”라는 복합적 감정이 함께 찾아오는 자연스러운 반응이라고 한다.


며칠 후, 친구의 어머님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너무 힘에 겨운 목소리로, 그분은 내게 여러 가지 이야기를 쏟아놓으셨다.
친구가 어떻게 생을 놓았는지부터,
편히 눈을 감지 못했다는 사실까지…


너무 듣기 힘든 이야기였지만, 나는 끊을 수가 없었다.
친구에게 미처 하지 못한 내 몫을,
왠지 친구 어머님의 이야기를 들어드리는 것으로 대신해야 할 것 같았다.


그런 시간들이 이어지면서 내 안에는 변화가 찾아왔다.
폭력적이거나 잔인한 것들을 예전처럼 보지 못하게 된 것이다.
죽음과 폭력이 꼭 동등한 것은 아님에도,
내 무의식은 두 가지를 억지로 연결해 버린 듯했고
그 때문에 그런 것들이 더욱 끔찍하게 느껴졌다.


들려오는 공인들의 스스로 생을 마감한 소식은 정말이지
내 심장을 세차게 뛰게 했다.


그런 날들이 이어지며,
한동안 내 꿈속에서도 친구가 찾아오기 시작했다.
내 죄책감이 반영된 꿈이었을까.


여전히 여린 아이 같은 모습이었지만,
꿈속의 그는 내게
“너 나랑 같이 있어주지 않으면… 나는 사라질 거야”
라고 말하곤 했다.


깨어나면 그것이 꿈이었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 말이 내 마음속에 오래 남아 나를 붙잡았다.


그 꿈들은 내 안에 있는 말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좀 더 내가 챙겼어야 했는데’라는 죄책감,
‘옆에 있던 사람이 그렇게 갑자기 사라질 수 있구나’ 하는 두려움…


그 모든 감정들이 꿈을 통해 떠올랐다.
한 친구의 죽음은 강력하게
그리고 오랜 시간 마음의 짐으로 남아 있었다.




⌜치유에 자리에서 다시 만난 친구⌟


그렇게 긴 시간이 지나며,
아주 서서히 글을 쓰거나 상담을 받으면서
내 안의 감정을 이름 붙이고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것도 그 과정의 일부다.


트라우마에 대한 기억을 재처리하는 중에
나는 기억 속에서 친구를 다시 만났다.
원망의 말부터 나온다.


“너 왜 그랬어.”


아이는 늘 그렇듯 말이 없다.


나는 다시 한번 말을 건넨다.


“너 나한테 참 좋은 친구였어.
자주 생각났어.
너와 함께한 시간들이 내 안에서 여전히 살아 있어.


우리가 어디선가 다시 만나게 된다면,
그때는 따뜻한 홍차와 스콘을 또 함께 먹자.
이번엔 너도 마음 편히 웃고,
나는 끝까지 네 얘기를 들어줄게.


그날까지는, 잠시 안녕.
편히 쉬고 있어.”


내가 인사를 건네자,
아이는 말없이 표정으로 대답하는 듯했다.

예전 꿈속에서처럼 애처롭던 모습이 아니라
한결 편안해진 얼굴이었다.


마치 “이제 나 괜찮아”라고 말해주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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