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무의식 속의 경보
들어오려는 어두운 그림자를 막기 위해
나는 온 힘을 다해 집 안을 뛰어다니며 창문을 닫고 문을 걸어 잠근다.
내가 더 빠른 날엔 그림자가 들어오지 못하지만,
조금이라도 늦으면 그 그림자는 창문 틈으로 스며든다.
그리고 대부분,
그 어두운 그림자는 내가 창문을 닫는 속도보다 늘 한 발 앞서 있다.
들어온 그림자는 내 몸과 겹쳐진다.
순식간에 온몸이 무언가에 휘감기듯 압도당한다.
배경은 조금씩 바뀌어도
어둡고 거대한 힘이 나를 덮치는 그 느낌만큼은 늘 같다.
꿈이었다.
깨어나면 곧 꿈이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만,
그 순간 내 온몸은 일상에서는 좀처럼 느낄 수 없는
강한 긴장감으로 굳어 움직이기조차 힘들다.
“사람들은 이걸 ‘가위눌렸다’고 표현하나?”라는 생각이 스친다.
다시 잠을 청하면 겨우 잠은 들지만,
악몽을 꾸고 일어난 날이면 아침에 몸이 너무나 무겁다.
늘 나는 아침이 조금 힘든 사람이었다.
새벽에 일어나는 ‘아침형 인간’은 내게 닿을 수 없는 꿈같았다.
나는 수십 년 동안 악몽과 같은 무서운 꿈을 꾸어왔다.
가끔은 전 세계 사람들을 통틀어
“나보다 힘든 꿈을 많이 꾸는 사람이 있을까?” 하고 생각해 본 적도 있다.
어느 날에는 어릴 적 무서워하며 보던 ‘전설의 고향’ 속
저주받은 집과 원혼, 터에 얽힌 이야기들이 떠올랐다.
“이 집에서 누가… 죽었나…”
나는 악몽의 이유를, 괜히 지금 사는 집 탓으로 돌려본 적도 있었다.
하지만 옮기는 집마다 그런 일이 있었을 리는 없었다.
“그러면, "터”의 문제도 아닌 것 같고,
혹시 “악한 영”이 붙은 건 아닐까?" 하고
웃으며 말하던 기억도 난다.
나는 거의 매일 꿈을 꾸었다.
일어나서 “아, 꿈을 꾸긴 했는데…” 하고
흐릿하게 느끼는 것이 아니라
내용까지 어느 정도 생생하게 기억났다.
어두운 그림자 같은 비유적인 꿈도 자주 꾸었지만,
꽤 현실을 그대로 재현하는 꿈들도 많았다.
나를 힘들게 했던 사람들이
배경과 사건만 조금씩 바꿔 등장하곤 했다.
꿈은 우연이 아니었다.
복합외상을 진단받고 치유의 길을 걷는 과정에서
나는 그것들이 안전하지 못한 경험을 소화하지 못한
뇌의 결과임을 깨달았다.
트라우마 이론에 따르면
트라우마를 겪는 사람들의 절반가량이 악몽을 경험한다.
우울감이나 과도한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들 역시
악몽을 자주 꿀 수 있다.
우리는 인지적으로 어느 정도 괜찮아졌다고 믿지만
몸은 여전히 그 기억을 간직하고,
신경계는 그 기억을 다시 꿈으로 불러온다.
나 역시 몸이 누워 있는 그 순간에도
처리되지 못한 상처와 감정들을
다시 체험하고 있었다.
트라우마를 치료하는 초기에는
악몽의 빈도가 더 잦았다.
무의식의 고삐가 풀린 것처럼
그동안 억눌려 있던 것들이
꿈속으로 쏟아져 나왔다.
마치 각각의 트라우마들이
치유의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는 듯
“나 좀 봐줘”,
“나 이걸 해결하고 싶어”,
“나 이게 아직도 아파” 하고
외치는 것 같았다.
EMDR(Eye Movement Desensitization and Reprocessing,
안구 운동 둔감·재처리)은
양쪽 눈을 번갈아 움직이게 하며
기억을 안전하게 저장하도록 돕는 치료 기법이다.
이 과정을 거치며 상처 입었던 마음과 기억이 안정적으로 정리되어가고,
삶이 조금씩 회복되는 길로 나아감을 느낀다.
자기 전, 무서운 꿈을 꿀까 두려운 날이면
몸의 긴장을 풀어주기 위해
5초 코로 들이마시고
5초 입으로 내쉬며
“여기는 안전해”라고
작은 위로를 건넨다.
그래도 무서운 꿈을 꾸고 일어난 날이면,
나에게 말을 건넨다.
“너, 그 일이 불편했던 거야?”
“조금씩 같이 치유해 가자. 괜찮아. 여기는 안전해.”
이상하다.
“너 자신을 존중해야지.”
“너 자신을 사랑해야지.”
그 말을 수천 번 들어도 내 것이 되지 않았는데,
트라우마가 치유될수록
나는 나에게 더 친절해진다.
이제 무서운 꿈은 더 이상 두려움이 아니다.
내가 더 잘 지내도록,
아직 치유하지 못한 것을 알려주는
신호이자 메신저다.
그 꿈은 내 안의 상처 조각이다.
나는 그 조각들을 힌트 삼아
내 자신의 상처를 들여다본다.
이제, 그 꿈조차도
나를 치유하는 한 부분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