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누구일까

관계 속에 길을 잃은 나를 찾아서

by 빛나는조각

「조각난 나」


웃는다, 내가.
사람들 앞에서.


불안하다, 내가.
내 안에서.


속인다, 내가.
내 자신을.
“다 별일 아니야…”


웃는 나, 불안한 나, 속이는 나로
조각난다.


때로는 사람들을 만나며 바쁘게 지내다가도
겨울잠을 자듯
긴 시간 동안 혼자만의 시간을 갖기도 한다.


뒤엉킨 나를 마주하며
나는 혼란스럽다.


맞춰주는 나,
도망하는 나,
맞서는 나,
얼어붙는 나.
(Fawn / Flight / Fight / Freeze — 트라우마 연구에서 말하는 네 가지 생존 반응)


네 가지 모습의 간극만큼
나는 내 안에서 길을 잃는다.


하지만 정작 사람들은
나를 하나의 틀에 넣어 확신한다.


“너, 외향형이지?”
“너 완전 E지?”


그러나 그들의 확신과 달리,
나는 민감하고, 조용하다.



「가면과 조각, 나를 찾아가는 길」


언젠가 문장완성검사(Writing Completion Test)를 할 때
“내가 강하고 힘이 있다면… (차분할 것 같다)”
라고 써 넣으면서도 스스로 놀랐다.


그 문장을 반대로 해석해보면,
나는 지금 약하고 힘이 없어,
활발한 가면을 두르고 있는 걸까.


위협으로 가득했던 어린 시절과
혼란스러운 20대를 지나며
나는 그 가면을 쓰고
그것이 나 자신이라 믿으며 살아왔다.


어둠과 대조되는 인위적인 밝음으로,
욕구를 반영한 안전한 얼굴로.


“저 그렇게 어둡지 않아요.
봐요, 이렇게 잘 웃어요.
저는 안전한 사람이에요.
그러니 당신도 나를 부드럽게 대해 주세요”


위협 앞에서 금세 배를 드러내는 강아지처럼
나는 웃음으로, 또는 과한 배려로
‘내가 안전한 사람임’을 증명하려 했다.


나는 모든 환경을 기본값으로
‘위협’에 맞춰 놓았던 모양이다.


그렇게 가상한 노력을 하다가,

상대가 내 인내를 넘고 넘을 때면
내 안의 또 다른 내가 튀어 올라
강하게 목소리를 내곤 했다.


트라우마 연구에서 말하는
‘맞서 싸우기(Fight)’ 반응.


평소엔 감추고 있던 그 모습이
내게도, 상대에게도 낯설게 느껴졌다.


활발한 가면을 쓴 나와
벗은 나 사이에는 깊은 간극이 있었다.


사람들을 만나고 돌아오는 길이면
내 에너지는 거의 방전 직전이었다.

최대 밝기로 켜졌다가 급히 꺼지는
휴대폰처럼, 나는 그렇게 꺼져 버렸다.


그날의 만남이 위협은 아니었을지라도,

만남이 끝나고 나면 수많은 자극 속에서
나를 지켜낸 것만 같은,
일이 끝난 듯한 묘한 안도감이 찾아오곤 했다.



「하나의 나를 찾아가는 길」


이 모든 조각들이
내 아픔에서 비롯된 것임을 몰랐다.


어둠에 이름을 붙이고
치료를 시작하면서
조금씩 변화가 생겼다.


사실, 내가 사람들을 만나는 이유중 하나는
어떤 사건에 대해
내 생각과 감정을 믿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옳다 / 그르다”에 대한 의견을
다른 사람에게서 듣고 싶었고,
확신을 늘 타인의 판단에서 찾았다.


그러나 회복의 길에서
제일 두드러진 변화는 이것이었다.

내 생각과 감정을
조금씩 믿기 시작했다는 점.


그러니 더 이상
사람들에게 옳고 그름을 묻지 않아도 되었고,
자연스레 사람들과의 거리가 생겼다.

나는 내면에 더 집중하게 되었다.


가끔, 나는 가면을 벗을 용기를 낸다.
트라우마로 조각 난 나들과 마주하기도 한다.

흩어진 조각을 어루만지며
원래 가지고 있던 조각에
살며시 덧대어 본다.


웃는다, 내가.
조각을 이어,
하나의 나를 만나길 바라며.


오늘도 나는 내 안의 조각들을
조용히 꿰매어 본다.


언젠가,
하나의 나로 서기 위해.







@sprinkle.pie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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