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에서 건져낸 나,
아직도 흔들리지만

에필로그

by 빛나는조각

「여전히 흔들리지만」


아픈 기억들과 회복의 과정을 써 내려가는 동안,
정리되지 못한 채 뒤엉켜 있던 내 내면이
조금씩 자리를 찾아가는 것을 느꼈다.


그 길 위에서,
미처 느끼지 못하고 지나쳐왔던 부채감정들을
하나씩 마주하며 갚아가느라
아팠고, 슬펐고, 힘들었다.


이 여정에서 내가 얻은 가장 큰 변화는,
더 이상 어떤 사건의 옳고 그름을
누군가에게 기대어 묻지 않게 되었다는 점이다.


의존이 줄어들자 자연스럽게 혼자 있는 시간이 늘었고,
그 고요 속에서 나는 더 깊은 자리까지 내려가
나의 아픔과 불편함을 정면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글쓰기와 상담,
그리고 치유와 관련된 책들을 읽는 일이
나를 조금 더 회복의 길로 이끌어 주었고
조금 더 독립적으로 만들어 주기도 했다.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흔들리고,
여전히 작은 일에도 쉽게 아프다.


그러나 이제는
완벽한 행복이나 어떤 이상으로 도망치며
지금의 불편함을 부정하고 싶지 않다.


그 불완전함과 약함을
그대로 마주 본다.


“아직도 흔들리지만”이 아니라,
여전히 흔들리지만.


이것은 과거에도, 지금도, 앞으로도
흔들렸어도, 흔들려도 괜찮다는
나만의 선언이다.


‘아직’이라는 말에는
언젠가 흔들리지 않을 거라는
완벽을 향한 욕망과 기대가 숨어 있기 때문에.



「진실로의 헌신」


『몸은 기억한다』 같은 트라우마 책을 읽다 보면
때때로 억울함과 슬픔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사람들이 각자 트라우마를 가지게 된 배경을 들여다보면
안타깝고, 너무나 슬펐다.

하지만 그 상처받은 사람들이
또다시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모습을 보면
내가 다 억울해지기도 했다.


그 비극의 고리가 참담했다.
트라우마 사건을 겪은 것도 슬픈데,
그 여파로 또 다른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게 되는
가해의 자리까지 떠맡게 된다는 사실은
너무 가혹하고 불공정하게 느껴졌다.


나는 그들을 나와 동일시했고,
그들의 결과가 곧 나의 결과인 것처럼 비참해졌다.


그러다 문득 스스로에게 질문했다.
“나는 정말 피해자이기만 했을까?
나는 누군가에게 상처를 준 적은 없을까?”


트라우마 생존 방식이라는 이름으로
그 질문을 얼른 뛰어넘고 싶었지만
진실은 늘 내 발목을 붙잡았다.


나 역시 코너에 몰릴 때면,
또 작은 상처들이 쌓여 넘칠 때면
말로, 행동으로, 혹은 침묵과 거리 두기로
누군가에게 상처를 준 적이 있다.


참다 참다 터진 화는 공격적이었고,
그 화살은 누군가에게 분명 꽂혔을 것이다.


그 사실을 떠올리면
억울함과 수치심이 뒤섞여
나 자신이 싫어진다.


진실을 마주하는 일은 아프다.

그러나 기억한다.
외면하고 도망쳤을 때의 대가는
훨씬 더 크다는 것을.


「회복을 돕는 사람들」


사람이 너무 싫고, 관계를 맺는 일이 지치고 힘들어
세상으로부터 숨어 지내던 시간에도
나는 결국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는 사실을 고백한다.


가정폭력의 피해자이면서,

서툴지만 그때마다의 최선을 다해

언니와 나를 길러낸 엄마.


부모님보다 더한 인내로,
더 한결같은 시선과 사랑으로 나를 지켜준 남편.

존재만으로 삶의 이유가 되어주는 아이들.


스무 해 동안 내 이야기를
기꺼이 들어주고 공감해 준 친구 S.

나는 그녀에게 빚진 것이 많다.


힘든 시기마다
따뜻한 눈빛과 조심스러운 말,
진심 어린 격려를 건네던 H.


멀리 있어도 통화만 하면
웃음이 끊이지 않는 K.


따뜻한 마음으로
위안이 되어주는 Y.


그리고 이 긴 치료의 여정을
성실함과 세심함으로 함께하고 있는 상담사 E.


또, 사람은 아니지만

말없이 내 존재 자체를 사랑해 주고,

곁을 지켜 준 과거의, 지금의 반려견들.


그들은
한 사람의 인생에 자신들이 얼마나 큰 선물인지
아마 알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 글의 마지막에
그들의 이름을 이렇게 남겨둔다.


그들이 사랑해 준 기록으로,
그리고 내가 받은 사랑의 기록으로.


바란다.
나도 누군가의 회복에,
그들의 ‘사랑받은 기록’에
쓰이기를.


@sprinkle.pie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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