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가까운 곳에서 시작된 폭력
“가족”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TV 속 공익광고 장면이 스친다.
식탁에 둘러앉아 웃는 얼굴들,
따뜻한 대화와 웃음소리.
그러나 내게 가족은 달랐다.
내가 파편으로 부서져 가는 시작점,
그리고 직접 나를 부서뜨린 첫 가해자가 거기에 있었다.
어린 시절 내 집안의 공기는 늘 불안했다.
언니와 인형놀이를 하며 잠시 웃던 그 사이사이,
굵직하게 들이닥치던 아버지의 폭력과 잔해가 끼어들곤 했다.
내가 유치원쯤이었을 때였다.
엄마와 아빠가 격렬히 다툰 뒤
아빠는 잠시 집을 비웠고
엄마는 급히 문을 걸어 잠갔다.
“얼른 큰외삼촌한테 전화해서
집으로 와 달라고 해!”
엄마의 다급한 목소리에
나는 수화기를 들어
큰외삼촌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러나 불행히도
큰외삼촌이 도착하기도 전에
아빠는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우리가 문을 열어주지 않자
그는 아파트 1층 우리 집 베란다 창틀에 매달려
“빨리 문 열어!”라고 고함쳤다.
그 목소리에는 온갖 욕설까지 섞여 있었다.
어두운 저녁의 고요 속에
아빠의 목소리만이 점점 더 커져 갔다.
그 소리는 아파트 앞마당까지 울려 퍼져
같은 아파트에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들을 수 있는 것이었다.
외삼촌이 도착하기 전까지
아빠의 고함은 계속되었고
나의 불안과 긴장은
점점 더 커져 갔다.
두근두근두근… 어쩔 줄 모르는 작은 아이.
그 공포는 그날의 일만은 아니었다.
아빠의 폭력을 피해
언니와 나는
외할머니 집에서 지내고 있었다.
그러나 그곳에서도
공포는 끝나지 않았다.
안전해야 할 곳에서조차
나는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
어느 날, 엄마의 전화를 받은 직후
곧바로 다급한 할머니의 목소리가 울렸다.
“얼른 나와.
저기 밑에 ○○댁에 가서 숨자.”
마을 뒤편,
가장 높은 곳에 있던 할머니 집에서 내려다보니
아빠의 회색 소나타가
마을 어귀로 들어오고 있었다.
우리는 급히
할머니 친구 댁으로 몸을 숨겼고
그날 저녁 그 집에서
머물러야 했다.
잠은 쉽게 오지 않았다.
불안과 긴장감은
그대로 내 몸에 새겨지고 있었다.
그렇다.
아빠는 언제 어디서 터질지 모르는
폭탄과도 같았다.
나는 걸어 다니는 폭탄,
심지어 자동차를 몰고
어디든 나타날 수 있는 폭탄과
같은 지붕 아래 살았다.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순간들조차
엄마의 입을 통해 내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은 내가 견뎌낸 폭력의 또 다른 증거였다.
그 증거는 훗날 엄마의 입을 통해
조각조각 되살아났다.
엄마는 종종 내게 이렇게 말했다.
“너 어릴 때 큰일 날 뻔했어.
네 아빠가 하도 널 들어 벽에다 내던져서
괜찮은 건지 몇 번이나 응급실에 업고 가곤 했어.”
너무 충격적이었기 때문일까.
나는 그 일이 기억나지 않는다.
엄마는 또 이렇게 덧붙였다.
“그냥 언니처럼 빨리 잘못했다고 빌면 되는데,
너는 힘이 다 빠질 때까지
‘아저씨! 우리 아빠 아니야!’ 하면서 대들었어.”
그 말처럼
언니와 나는 같은 공간에서
같은 폭력을 겪었지만
살아남는 방식이 달랐다.
화로 가득한 아빠와
지쳐 있던 엄마 앞에서
언니의 방식은 더 환영받았다.
저항하는 아이는
더 자주 부딪혔고
더 깊이 상처 입었으며
점점 더 조각난 채로 흩어져 갔다.
훗날 엄마와 아빠가 이혼한 뒤
내가 언니와 다투는 날이면
엄마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다들 너네를 두고 나오라고 했었는데…”
“너, 진짜 너네 아빠 닮았어.”
가혹한 가해자와는 멀어졌지만
같은 피해자였던 엄마는
내게 종종 가해자의 흔적을 남겼다.
모습과 강도는 달랐지만
내 안에서는 끊임없이 금이 가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아빠를 닮은 것이 아니었다.
아빠와 달리, 나는 경계를 알았고
어린 몸과 목소리로
그 경계를 지켜내려 했다.
그것은 내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작은 힘이었다.
그건 내가 끝내 그와 달랐다는 증거였다.
자신의 온 힘을 다해 저항했던 그 작은 아이는
지금 이렇게 글을 쓰며 말하고 있다.
“아저씨, 아빠라면 절대 할 행동이 아니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