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지옥을 드러낸 불길

친절의 가면, 통제의 실체

by 빛나는조각


「불씨에서 산불로」


불씨는 많았지만,
마침내 산불이 된 사건이 있었다.


나는 약 4개월 동안 한 봉사단체에 참여했는데,
그곳에서 특별한 어르신을 만났다.


처음 그는 따뜻했고, 다정했고, 유쾌했다.
지쳐 있던 내게 그 친근함은 선물처럼 다가왔다.
관계 초반에는 칭찬과 격려가 많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그 친절은 통제로 변해갔다.

“너는 밝은 색 옷을 입어”
“눈꼬리를 빼면서 아이라이너를 그려봐”


그리고 어느 날, 그는 내 마음의 선을 넘어왔다.


"너는 왜 아무한테나 친절하게 굴어? 싸게 구는 거야?

나는 아무 하고나 안 놀아. 너도 저 사람들한테 인사하지 마"


불쾌함은 불편함으로, 불편함은 두려움으로 번졌다.

처음엔 단순한 조언이라 믿고 넘겼다.
‘나이가 많으셔서, 표현이 좀 거칠 뿐이야.’
스스로를 타이르며 이해하려 했다.


“저는 그런 걸 원하지 않아요.”
몇 번이고 완곡하게 거절했지만,
나의 말은 끝내 무시되었다.


그의 말은 개인적인 일에서까지 점점 명령이 되어갔다.


직업을 권하고, 장을 볼 마트까지 정해주려 했다.
그러더니 어느 날, 이렇게 말했다.

“나는 아이들을 좋아해. 다음 봉사에는 아이들도 데려와.”


“저는 아이들과 함께 봉사를 하면 불편해요.”
그렇게 말하면 돌아오는 답은 늘 같았다.
“너만 조금 희생하면 되잖아.”
“아니? 이렇게 하라니까?”


만남은 두려움이 되었다.

그날 이후, 봉사 후에는 몸이 굳었다.

말 한마디를 꺼내기조차 조심스러웠다.


시간이 지나자, 봉사 시간이 아니어도
전화와 문자가 이어졌다.
내가 받지 않으면 압박이 쏟아졌다.
“전화를 받든 지, 문자에 답을 해.”


나는 그의 인형이 되길 강요받고 있었다.
선을 넘고 있다는 건 직감했지만,
구체적으로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몰랐다.

결국 나는 봉사를 그만두고
연락에도 답하지 않는 것을 선택했다.


그러나 그 이후로도
원하지 않는 음식이 집 앞에 놓였고,
다른 가족에게까지 문자가 이어졌다.



「산불처럼 번진 불안」


3개월쯤 지났을까.
아는 동생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언니, ○○ 어르신 알아?
오늘 우리 가게에 오셨는데,
언니 얘기를 하시더라…”


그 사람은 내게 병명을 붙였다.
그리고 나를 위험한 존재로 몰아갔다.


순간, 심장이 귀 옆에서 북소리처럼 울렸다.
작은 불씨가 삽시간에 산불이 되어
내 안을 집어삼켰다.


정신질환을 가볍게 입에 올리는 일.
그 무심한 한마디가 사람을 끝까지

몰아세울 수 있다는 걸
그날 나는 온몸으로 배웠다.


나는 순식간에 역사 속 마녀가 되었고,
사냥당하는 짐승처럼 몸을 떨며

두려움 속에 서 있었다.


그 와중에도 내 안의 재판관은
더 큰 판사라도 되려는 듯 고개를 들었다.
“혹시… 나 정말 그런 사람일까?”


동시에 또 다른 목소리도 있었다.
“아니야. 내가 그에게 느낀

불편함은 틀리지 않았어.
그는 위험한 사람이야.”


나는 인형이 되길 거부했고,
그 대가로 마녀가 되어 있었다.



「이름 없는 어둠에 이름을 붙이다」


살려는 의지였을까.
아니면 단지 버티려는 몸부림이었을까.


그날 이후, 자다가도 눈이 번쩍 떠지고

심장이 뛰었다.
훤한 대낮에도 알 수 없는 눈물이 흘러내렸고,
우리 집 반려견 달이의 작은 짖음에도

화들짝 놀라곤 했다.


나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이제는 나를 통째로 집어삼키려는

이 고통을 밝혀내야 했다.


노트북을 열고 증상들을

하나씩 단서 삼아 검색했다.


분노와 억울함, 불안, 무력감.

몸은 자주 긴장되어 있었고,

사소한 소리에도 심장이 먼저 반응했다.

아무 일도 없는데도, 늘 무언가가 덮쳐올 것만 같았다



서너 시간이 지났을까.
퍼즐 조각이 맞춰지듯

흩어진 단서들이 하나의 그림을 이루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그 이름을 만났다.


복합외상(C-PTSD).

생소한 이 단어는, 아동기 학대나 반복적인 관계의 상처처럼

오랜 시간 누적된 외상으로 생겨나는 마음의 손상을 뜻했다.


이는 통상 사람들에게

트라우마라고 알려져 있는 것이었다.


증상과 경험의 조각들을 하나하나 맞추자
내가 겪고 있는 많은 것들이 설명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찾아온 감정은, 안도감이었다.
드디어 나를 설명해 줄 이름을 찾았다는 안도감.


누군가에겐 충격적인 이 병명이,
내게는 내 고통에 비하면

오히려 순한 이름처럼 다가왔다.


그러나 동시에 혼란도 있었다.

끝없이 나를 괴롭히던 어두운 그림자.
나는 그것을 지옥이라 불렀다.


괴물 같은 얼굴을 하고 있으리라 생각했던

지옥의 고통은
의외로 담담한 이름,
내 상처를 담은 슬픈 얼굴로 다가왔다.


하지만 확신할 수는 없었다.
그건 내가 찾아낸 지식에 근거한 결론일 뿐,
정말 내가 이것으로 설명될 수 있는지
전문가의 확인이 필요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옥을 설명할 수 있는 이름이

어렴풋이 생긴 순간
내 안에 희망의 실 한 오라기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렇다. 어둠 속에서도 빛의 방향이 어렴풋이 보였다.
그 빛은 내 고통의 뿌리까지 닿을 것 같았다.


그리고 그 빛 아래에서,

오래 잠들어 있던 기억이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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