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과 학교 : 두 곳에서 남은 상처

상처 속에서 강해질 수밖에 없었던 아이의 고백

by 빛나는조각


「벗어났지만 벗어나지 못한 곳」


엄마는 어느 날 우리 자매를 불러 앉혔다.
“너희, 엄마랑 아빠 둘 중 한 명이랑만 산다면, 누구랑 살래?”
어린 시절 기억 속 몇 안 되는 장면이다.


“엄마랑 살 거야. 아빠랑은 안 살 거야!”

아빠와 함께 사는 건 상상만으로도 숨이 막혔다.


엄마는 결국 아빠와 이혼 절차를 밟았다.
폭력에서 벗어났지만, 그 그림자는 여전히 우리를 따라왔다.
피해자들은 서로에게 또 다른 가해자가 되어 갔다.


이미 상처로 가득한 우리는 서로를 참아줄 여유가 없었다.
불안한 언니와 나는 더 자주 다퉜고,
그걸 감당하기에는 엄마의 마음도 이미 가정폭력으로 얼룩져 있었다.


엄마는 우리가 싸울 때마다 버거워했다.
처음에는 꾹 참다가도 어느 순간 화를 터뜨렸다.
잘 달래주는 듯하다가도 어느 순간, 손이 먼저 움직였다,
끝내는 해서는 안 될 말까지 내뱉었다.


“너네 나가서 없어져버려.”


엄마가 화가 날 때면 언니는 늘 엄마에게 “잘못했어”라며 빌었다.
반면 나는 정말 ‘사라지는 쪽’을 택했다.




「두 번째 전장, 학교」


그쯤 나는 초등학교 저학년이었다.
새로운 학교에서 적응하지 못한 채 맴돌았다.
전학을 가자마자 짝꿍에게 이유 없이 맞아 멍이 들기도 했다.


나는 초등학교를 거의 다섯 번이나 옮겼다.
엄마의 직장을 따라 옮긴 경우도 있었지만,
몇 번은 내가 도저히 적응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늘 기가 죽어 있던 나는 기가 센 아이들의 표적이 되었다.
다음 날 학교에 가면 무슨 일이 생길까,
마음 편한 날은 거의 없었다.


초등학교 마지막 무렵에는
늘 당하던 나도 점점 더 기가 세졌다.
말을 더 날카롭게 던지고, 강한 척을 했다.

나도 엄마처럼, 피해자에서 상처를 주는 자리로
옮겨가고 있었던 건 아닐까.


우리 무리는 돌아가며 따돌림을 당하곤 했는데,
초등학교 졸업식을 앞둔 시기에는
그 순서가 내 차례였다.


졸업식이 싫었다.

따돌림을 당하는 나를 보면 엄마가 속상할까 봐,

내 마음이 멍들어 있는데도

엄마 앞에서만큼은 나와 친한 척해 달라고

몇몇 친구에게 부탁했던 기억이 어렴풋하다.




「사라지고 싶었던 아이, 꺼내 쓴 목소리」


어쨌든 나는 엄마 말대로 사라지고 싶었다.
집도, 학교도. 어디에도 내겐 안전이 없었다.


‘그래, 집에서 나가야겠다.’


그렇게 생각하며 집을 나서려는 순간,
엄마가 달려와 나를 붙잡았다.

그리고는 울음을 과하게 터뜨렸다.
엄마는 가끔씩 그렇게 무너져 울었고,
그날도 마찬가지였다.


언니는 엄마를 끌어안으며 함께 울었지만,
나는 움직이지 않았다.


엄마의 눈물은 내겐 위로가 아니었다.
그 순간의 엄마는 피해자가 아니라,
또 다른 가해자였다.


보호자여야 할 사람이
가해자의 얼굴을 하고 있을 때,
아이는 어디에 기댈 수 있을까.


언니는 순종을 배웠고, 나는 저항을 배웠다.
언니는 안전을 얻었지만, 나는 낙인을 얻었다.


종종 엄마는 내가 언니와 싸울 때면,

“너는 O 씨 집안 닮았다”라며 날 두 번 죽였다.


“나 아니야! 아빠 아니야!!”


언니도 엄마를 따라,
내가 싸우다 화를 내기라도 하면

“또 시작이네?”라며 비아냥거렸다.


“아니야! 또 시작 아니야!!”


심장은 강하게 뛰고, 동공은 커졌다.
저항했지만, 상처는 이미
몸과 마음에 새겨지고 있었다.


“나는 폭력을 저지른 아빠와 비슷하다.
동시에, 나는 무가치하다.”


그때 새겨진 ‘무가치하다’는 낙인은 오래도록 내 안에 남아,
사람들의 작은 경계 침범 앞에서도
나를 믿지 못하게 했다.


훗날 나는 어린 날의 나 자신이 이해되지 않았다.
나는 아주 예민한 기질로,
남을 불편하게 하지 않으려
그 예민함마저 감추곤 하는 사람이었다.


그런 내가 왜, 그때는 기질과는 반대로
저항하고 발악했을까.


어쩌면 그때 이미, 내 안에는 나를 버티게 할 힘이 있었다.

신이 내게 남겨둔 건, 온전한 부모가 아니라 견디는 힘이었다.


복합트라우마와 예민한 기질을 가진 내가 살아갈,
이 미친 세상을 알기라도 한 것처럼.


힘들 때마다 꺼내 쓰라고,
억울할 때마다 소리치라고.


나는 가끔 꺼내 썼고, 소리쳤다.
그리고 결국, 나는 여기까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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