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존 제품을 재주문한 후, 다음 챕터를 기다리며 나른한 시간을 보내고 있던 어느 날, 남편이 뜬금없이 '나, 프랑스 파리로 출장 가야 할 것 같아'라고 말했다. 평소에도 나와 모든 것을 함께하고 싶어 하는 남편답게, 곧바로 내 비행기 표까지 끊겠다고 나섰다. ‘출장이라지만 파리라니! 크루아상과 에펠탑이 벌써부터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리는걸?’이라는 생각에 머릿속은 이미 낭만적인 여행 모드로 전환됐다. 순간, 파리의 좁은 골목에서 커피잔을 들고 여유롭게 걷는 내 모습이 상상되면서 웃음이 새어 나왔다. "정말 나도 가도 되는 거야?"라고 물으니, 남편은 오히려 웃으며 "당연하지, 내가 크루아상도 하나 사 줄게!"라며 장난스럽게 눈을 찡긋했다. 파리라니! 업무용 노트북과 서류 가방 속에 낭만과 설렘을 끼워 넣는 그의 모습이 새삼 귀여워 보였다. 짐을 싸면서도 입가의 미소가 가시질 않았다. 한편으로는 출장과 여행을 섞은 이번 일정이 과연 어떤 모험을 안겨줄지 기대 반, 설렘 반으로 가득했다. ‘이렇게 갑작스러운 파리행이라니, 삶은 언제나 예상 밖의 즐거움이 가득하군!’ 마음은 이미 에펠탑 아래에서 반짝이는 불빛을 보며 설레하고 있었다.
한국에서 살 때는 내가 주로 리드하고 챙겼는데 남편과 유럽에 오고 나서 바뀐 게 있다면 남편이 리드하는 상황이 많아지고 어디를 가거나 할 때 꼭 같이 다닌다는 것이었다. 한국에 있을 때는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는데, 유럽에 오니 그는 마치 나의 개인 경호원이라도 된 듯한 느낌이었다. 또한 주변 경계도 심해졌다. "밖에 혼자 나가면 위험할 수 있으니, 나랑 같이 다녀."라고 말하는 남편을 보며, '이게 무슨 보디가드 모드인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길거리를 걸을 때도 주변을 항상 두리번거리며 경계하고, 마치 어떤 상황에도 대비할 준비가 된 사람처럼 행동했다. 나는 그 모습이 조금은 오버인 것 같아 왜 그러냐고 물었다. 그러자 남편이 진지하게 말했다. "여기 유럽은 한국 같지 않아. 언제 어디서 이상한 사람이 나타날지 모른다고... 여긴 당신의 가족이 없는 곳이잖아. 내가 여기선 당신의 하나밖에 없는 보호자야. 내가 없을 때 당신한테 무슨 일이 생기면, 나 자신을 절대 용서할 수 없을 것 같단 말이야..." 마치 내가 항상 보호받아야 할 갓난아기라도 된 듯한 기분이 들었지만 나는 남편에 말에 감동했다. ‘어라, 내가 어느새 이렇게 보호받는 존재가 됐나?’ 하고 웃음이 나면서도, 남편의 든든한 마음이 고마웠다.
파리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늦게. '아, 드디어 낭만의 도시 파리구나!' 하고 설레는 마음으로 창밖을 내다봤는데… 글쎄, 파리 하늘이 마치 우울한 영화의 한 장면처럼 잔뜩 흐려 있었다. 구름이 낮게 드리우고, 비가 당장이라도 쏟아질 듯한 회색빛 하늘이 펼쳐져 있었는데, 그 순간 살짝 당황스러웠다. '여기가 정말 그 유명한 로맨스의 도시 맞아?'라는 생각이 잠깐 스쳤다. 그리고 설상가상, 독일의 들쑥날쑥한 날씨 때문에 몸살 기운이 밀려오니 기분까지 뚝 떨어지기 시작했다. 몸도 찌뿌둥하고... 도착해서는 공항을 나와 빨리 호텔로 가고 싶었다. 이런 와중에 배는 고파오고... 이러면 방법은 하나다. 호텔 근처에서 조용히 밥이나 먹는 거지 뭐. 그래서 대충 '괜찮아 보이는' 식당을 하나 찾아 들어갔다. 그런데 메뉴판을 펼치자마자 눈이 휘둥그레졌다. '어라, 이게 무슨 금액이람?' 파리가 세계에서 물가 비싸기로 유명한 도시는 맞다지만, 그 정도일 줄은 몰랐다. 베를린보다 최소 1.5배는 비싸 보였다. 그런데 비싼 메뉴들 사이에서 나를 유혹한 건 옆에서 다른 손님이 먹고 있었던 로스트 치킨! ‘맛있어 보이네..’라는 생각으로 웨이터에게 물어보고 주문을 했다. 기다림 끝에 드디어 치킨이 나왔고, 첫 입을 딱 먹었는데… 와, 감탄이 절로 나왔다! 간이 어쩜 이렇게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나, 그레이비소스와의 조화가 정말 와따였다! 속으로 '아, 이래서 비싼가 보다' 생각하며 더 맛있게 먹었다. 결국엔, 파리의 첫인상이 흐린 하늘 대신 이름도 기억 안나는 식당의 이 로스트 치킨으로 확 바뀌었다. '낭만은 하늘에서만 오는 게 아니구나, 바로 내 접시에 있었네!' 하며 기분 좋게 배를 채웠다.
날씨로 꿀꿀한 마음을 마지막까지 달래려 디저트를 시키며 분위기를 한층 끌어올리기로 했다. 주문한 타르트는 크림이 부드럽게 얹혀 있어, 마치 미술관의 예술작품처럼 아름다웠다. 한 입 베어 물자, 달콤함이 입 안 가득 퍼지며 내 마음도 마치 유럽의 왕족이 된 듯 황홀해졌다. 남편은 내가 음식에 감탄하는 모습을 보며 웃음을 터뜨렸고, 우리는 서로 “비싸도 올 만하다!”라며 저녁의 황홀함에 빠져 수다를 떨었다. 비록 흐린 날씨에 우울한 기분이 들었지만, 파리의 맛있는 음식과 함께하는 이 순간은 내 마음을 따뜻하게 해 주었다. 마치 이곳에서만 느낄 수 있는 특별한 기분처럼, 순간순간이 정말 소중하게 느껴졌다. 우리가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며, 이렇게 아름다운 도시에 함께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조금 나아졌다.
다음날, 나는 컨디션이 좀처럼 회복되지 않아 침대에서 나오는 것조차 버거웠다. 몸은 마치 천근만근의 쇳덩이를 매단 듯 무겁고, 눈꺼풀은 수톤의 벽돌로 눌린 것처럼 꿈쩍도 하지 않았다. 남편은 클라이언트와의 미팅이 있어 아침 일찍 나갔고 미팅을 마치고 조금 돌아다니다가 온다고 연락이 왔다. 나는 그러라고 했고 남편은 파리의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어 나에게 보내주었다. 그가 보내준 사진 속 파리는 마치 그림 속에서 튀어나온 듯, 맑고 파란 하늘 아래 반짝이는 풍경으로 나를 반겼다. 특히 에펠탑이 고개를 빼꼼 내밀고 있는 모습은 내 마음을 단번에 사로잡았다. “이렇게 날씨가 좋은데, 나도 나가봐야 하는데…” 아쉬움이 마음속에서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하지만 남편이 보내준 사진들 덕분에 내 기분도 조금씩 나아졌고, 그가 돌아올 때쯤 되어서야 겨우 침대에서 몸을 일으킬 수 있었다.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하자 뭉쳤던 근육들이 사르르 풀리면서 마치 새로운 생명을 얻은 듯한 상쾌함이 몰려왔다. 그렇게 기운을 차리고 욕실 문을 열고 나왔는데,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그만 입이 떡 벌어졌다! 테이블 위에는 달콤한 케이크와 반짝이는 샴페인, 향기로운 꽃다발이 아름답게 어우러져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 눈길을 단번에 끈 것은 사랑이 가득 담긴 카드였다! 이 모든 것이 바로 내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남편이 준비한 깜짝 이벤트였던 것이다. 갑자기 마음이 몽글몽글해졌고 피로가 싹 가시는 기분이었다.
'생일이니 그냥 레스토랑에서 저녁 정도 먹겠지...' 했던 내 예상은 한순간에 빗나갔다. 남편이 이렇게까지 정성을 들여 준비했다니! 감동이 밀려오면서 나도 모르게 웃음이 번졌다. 마음이 벅차올라 소원을 빌고 초를 후- 하고 껐는데, 정말 언제 이런 걸 다 준비했을까? 카드 속 메시지를 읽는 순간, 마음이 울컥했다. 남편이 나를 얼마나 소중히 생각학고 사랑하는지 느낄 수 있었다. ‘정말 이 사람과 결혼하길 잘했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글씨 하나하나에 담긴 진심이 내 가슴을 따뜻하게 적셔주었다. 남편에게 고마움이 넘쳐 연신 “고마워, 정말 너무 감동이야”라며 말을 이어갔다. 그러자 갑자기 기분도, 몸도 거짓말처럼 완벽하게 회복되는 게 아닌가! 컨디션이 최고조에 이른 나는 남편과 함께 파리를 탐험하자는 멋진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내가 생각하기에, 파리의 진짜 하이라이트는 저녁부터 시작되는 것 같다. 해가 저물고 나면 상점과 레스토랑마다 불이 하나둘 켜지면서 거리가 환해지고, 그 분위기는 단숨에 로맨틱해진다. 가로등 불빛이 하나둘씩 켜질 때마다, 마치 도시가 낮잠을 자다가 깨어난 것처럼 활기가 넘치기 시작한다. 사람들의 웃음소리와 이야기 소리가 섞여 거리가 살아나고, 거리 뮤지션들의 감미로운 멜로디가 그 분위기를 더 북돋아주니, 그야말로 파리가 눈앞에서 마법처럼 변하는 순간이다.
에펠탑은 말해 뭐 해! 밤이 되면 파리의 상징인 에펠탑이 황금빛으로 물들고, 그 불빛은 마치 마법처럼 도시 전체를 감싸는 것 같았다. 특히 멀리서 바라보면 에펠탑이 한층 더 환상적으로 보였다. 그리고 갑자기 시작된 그 유명한 불빛쇼! 마치 수천 개의 별이 한꺼번에 깜빡이는 듯한 광경이 펼쳐졌다. 매일 밤 해가 진 후부터 새벽 1시까지 매 정시마다 5분간 펼쳐지는 이 쇼는 말 그대로 장관이었다. 레이저가 하늘을 가르며 쏘아 올려지는 가운데, 에펠탑 전체가 반짝이기 시작하면 그 아래 있는 모든 사람의 시선은 하나로 모아진다.
에펠탑을 더 아름답게 볼 수 있는 곳도 따로 있었다. 트로카데로 광장, 샹드 마르스 공원, 그리고 세느강변에서 바라보는 에펠탑은 다른 각도에서 감상할 때와는 또 다른 매력을 선사했다. 에펠탑을 바라보는 순간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이 경이로운 광경을 보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로맨틱 지수가 급상승! 불빛쇼를 보는 동안, 에펠탑 아래에서는 연인들이 서로의 손을 잡고 다정하게 속삭이는 모습이 마치 영화 속 한 장면처럼 펼쳐졌다. 그 분위기에 나도 모르게 넋을 잃고 그들을 바라보았고, 그런 로맨틱한 분위기에 나와 남편도 자연스럽게 애정행각(?)을 하게 되었다. 평소보다 더 다정해진 우리를 보며, 순간 이곳이 '사랑의 도시, 파리'라는 사실을 실감했다.
그 순간, 어디선가 풍겨오는 음식 냄새가 내 코를 간질였다. 내 배꼽시계도 정확히 저녁시간을 알리는 듯했고, 우리는 미리 예약해 둔 스테이크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고급스러운 분위기가 조금은 불편한 우리는 현지인들이 잘 가는 캐주얼한 분위기의 식당을 찾았다. 그곳은 부엌이 훤히 보이는 곳으로, 진열된 생고기의 붉은 빛깔만 봐도 고기의 질이 좋다는 걸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이곳은 왠지 우리에게 딱 맞는 곳이었다. 자리에 앉자마자 와인 한 잔을 시키고, 프랑스 전통 요리인 에스카르고와 스테이크를 주문했다. 스테이크는 예상대로 완벽했다. 부드럽게 구워진 고기가 입 안에서 사르르 녹아들면서 나의 기분까지도 녹여줬다. 그러나, 내심 한국의 골뱅이와 비슷할 거라고 생각했던 에스카르고는 예상과는 조금 달랐다. 첫 한 입을 먹었을 때 느낀 그 딱딱한 식감과 느끼하고 짭짤한 맛은 솔직히 내 입맛과는 거리가 멀었다. "아, 이게 프랑스 미식인가...?"라며 속으로 웃음이 나왔지만, 그래도 경험한 것만으로 충분히 값졌다. 그래도 남편과 나는 파리의 야경을 배경으로 소소한 이야기들을 나누며 웃음을 터뜨렸다. 그렇게 레드와인도 한 잔, 두 잔 나누다 보니 시간은 어느덧 흘렀고, "이렇게 멋진 도시에서 특별한 순간을 함께 나누는 건 정말 꿈같은 일이야!" 남편이 말하며 나를 바라보았고, 나도 깊이 공감했다. 파리의 밤은 이렇게 계속해서 나에게 특별한 기억을 선사하고 있었다.
다음날에도 남편과 나는 낮 동안 호텔에서 열심히 일을 했고, 저녁이 되어서야 파리의 거리를 다시 걸었다. 파리의 거리는 정말 눈길을 사로잡는 곳이 많았다. 아기자기한 카페들과 고급스러운 부티크들이 이어진 거리를 걷다 보면,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기분이 좋아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날 저녁, 우리는 프랑스 가정식을 제대로 맛보자는 목표를 세웠고, 끝없는 리서치 끝에 발견한 레스토랑 'La Jacobine'으로 향했다. 평소 기다리는 걸 극도로 싫어하는 우리는 미리 예약을 하고 갔는데, 정말 신의 한 수였다! 유명한 식당답게 입구에 사람들이 길게 줄 서 있었고, 우리는 한껏 여유를 부리며 예약한 자리로 안내받았다. 주변 사람들 사이로 느껴지는 파리의 분위기, 음식에 대한 그 진지함은 진짜였다. 메뉴판을 펼쳐 보며 오늘은 뭘 먹을지 설렘이 가득했다.
우리는 파리에서 정통 프랑스 요리를 제대로 즐기기로 마음먹고, 메뉴판에서 하나하나 신중하게 골랐다. 결국 선택한 요리는 양파 수프(Soupe à l'oignon), 쇠고기 스튜(Estofade de Boeuf), 그리고 버섯 크림소스가 듬뿍 얹어진 오리가슴살(Magret de Canard du Sud-Ouest)! 주문을 마치자마자 우리는 기대감에 벌써부터 두 눈이 반짝였고, “오늘 제대로 먹겠구나!” 하는 생각에 입꼬리가 올라갔다. 주문한 음식이 하나둘씩 테이블에 나올 때마다 그 향기가... 정말 미쳤다! 양파 수프의 구수한 향이 코끝을 스치자 남편과 나는 이미 음식에 빠져들기 시작했고, 적포도주 소스 이불을 덮고 있는 소고기 스튜의 고귀한 자태를 보고 있노라니 입에서 침이 절로 고였다. 웨이터가 마지막으로 오리가슴살 요리를 서빙할 때, 그 크림소스와 버섯의 조화로운 향기가 마지막으로 우리의 기대감을 최고조로 끌어올렸다. 요리를 눈으로, 코로, 그리고 곧 혀로도 즐길 생각에 우리는 말없이 서로 웃음만 지었다. 파리에서 맛보는 진정한 가정식이라... 흥분을 감출 수가 없었다.
내가 제일 궁금했던 양파 수프, 첫 숟가락을 떠서 입에 넣는 순간, 마치 추운 겨울날 따뜻한 담요에 폭 감싸인 기분이 들었다. 솔직히 양파 맛만 강할 줄 알았는데, 오히려 양파의 깊은 단맛과 치즈의 고소함, 육수의 감칠맛이 삼박자를 이루며 어우러져 내 혀를 사로잡았다. '이 맛을 어떻게 냈지?' 싶을 정도로 깊은 맛이었는데, MSG 없이도 이런 풍미를 낼 수 있다는 게 감동적이었다. 옆에서 남편이 한입 먹더니, “이건 정말 영혼을 달래주는 음식 같아. 왜 프랑스 가정식이 유명한지 알겠어!”라고 하며 감탄했다. 우리 대화는 온통 맛있는 음식에 대한 찬사로 가득했다. 마치 우리는 미식가가 된 기분이었다.
특히 쇠고기 스튜 안의 고기는 입에서 살살 녹았고, 그 깊고 진한 풍미는 정말 예술이었다. 오랜 시간 천천히 끓인 게 분명해 보였고, 토마토의 약간의 달큼한 신맛과 소고기의 깊은 풍미, 그리고 적포도주가 어우러진 향이 완벽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남편이 한 입 먹자마자 눈을 반짝이며 “이건 정말 예술이야!”라고 외쳤고, 나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정말 그 말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드디어, 내가 기대하던 버섯 크림소스가 듬뿍 얹어진 오리 가슴살을 먹어 보았다. 오리는 겉은 바삭하고 속은 부드럽게 구워졌으며, 오리 특유의 고소한 풍미가 입안 가득 퍼졌다. 크리미한 소스가 오리와 절묘하게 어우러지며 부드럽고 진한 맛을 만들어냈다. 거기에 감자 그라탱과 채소 볶음이 곁들여져 다양한 맛을 한꺼번에 즐길 수 있었다. “이건 집에서 꼭 따라 해 봐야겠어!”라고 하면서 남편과 함께 즐거운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맥주를 함께 마시며 우리는 프랑스 가정식의 진수를 만끽했다. 현지 맥주와 함께하니 그 맛이 더 깊게 다가왔고, 이 순간이 얼마나 특별한지 다시 한번 깨달았다. 웃음과 감탄, 그리고 새로운 요리에 대한 호기심이 가득했던 그 식사는 정말 파리에서의 잊을 수 없는 순간으로 남았다. 우리는 그저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게 아니라, 함께 특별한 기억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마지막 날, 우리 둘 다 정신없이 일을 하느라 하루가 훌쩍 지나갔다. 카페에서 일하는 것도 좋지만, 파리의 물가를 생각하니 '그 돈으로 차라리 더 맛있는 저녁을 사 먹자'라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그리고 드디어! 내가 손꼽아 기다리던 한식당에 가는 날이 왔다. 유럽에서는 보통 내가 좋아하는 메뉴들을 찾기 힘들다. 물론 기본적으로 비빔밥, 불고기, 된장찌개, 김치찌개등은 사 먹을 수 있지만 나는 내가 집에서 요리하지 못하는 것들을 찾곤 했다. 대도시답게 파리에도 한식당이 꽤 많았는데, 메뉴를 보니 한국에서만 먹을 수 있을 것 같은 진짜 정통 한식들이 즐비해 있었다. 순간, 나의 기쁨은 주체할 수 없을 만큼 커졌고 나도 모르게 발걸음이 빨라졌다. 구글 평점과 메뉴들이 마음에 들었던 '만나식당'으로 향하는 길, 얼마나 설레던지! 파리의 유명한 프랑스 음식점들 이름은 어려워 사진이 없으면 기억이 전혀 안 나는데, '만나식당'이라는 이름은 내 머릿속에 아주 생생히 남아있었다. 마치 오랫동안 기다려온 약속을 지키기 위해 찾아가는 비밀의 장소 같았달까?
식당에 들어서자마자, 한국 음식의 그 매콤하고 고소한 냄새가 나를 반겨줬다. 매운 양념의 향이 코를 자극하면서, "여기가 바로 한국이다!"라는 느낌이 확 들었다. 따뜻한 조명 아래 아늑한 분위기가 식당을 감싸고 있었고, 무엇보다도 한식 특유의 그 익숙한 냄새가 나를 위로하는 듯했다. 메뉴판을 보면서 나는 그동안 억눌렀던 한국 음식에 대한 갈망이 한꺼번에 폭발하는 기분이었다. '여기서는 무조건 먹고 싶은 걸 전부 시키겠어!'라는 다짐과 함께, 구미가 당기는 메뉴들을 골랐다. 남편은 내 표정을 보고는 "이렇게 행복해하다니... 유럽에서 지금껏 본 적 없는 표정이네?"라는 진담섞인 농담을 던졌고, 나도 그 말에 웃음을 터뜨렸다. 맞다, 파리의 화려한 음식들로도 채워지지 않았던 이 한국 음식에 대한 갈망. 이 순간만큼은 내가 진정 기다려왔던 것이 무엇인지 확실히 깨달았다.
나는 그동안 유럽에서 목말라했던 곱창볶음과 닭똥집볶음을 주문했고, 남편은 자신의 최애 메뉴 중 하나인 제육볶음을 선택했다. 남편은 기다리는 내내 싱글벙글한 내 얼굴을 보더니 연신 놀라며 "역시 당신을 공략하려면 한국 음식점으로 데려다주면 되겠다!”라며 허탈한 듯 웃었다. 나는 그의 말에 웃음을 터뜨리며 “응, 맞아! 부정할 수 없어..”라고 대답했다. 어느 좋은 곳을 데려가도 이렇게 격하게 반응한 적이 없다며 남편은 잠시 깊은 고민에 빠진 것 같았다. 이윽고 그는 심각한 표정으로 “당신 기분이 안 좋을 때는 무조건 한국 음식점으로 데려가야겠어. 이건 완벽한 해결책이야!”라고 말했고, 나도 고개를 연신 끄덕이며 동의했다.
드디어 음식이 나왔을 때, 그 감동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매콤한 양념에 버무려진 돼지 곱창은 고소하고 진한 풍미가 입 안 가득 퍼졌고, 닭똥집볶음은 쫄깃한 식감으로 내 입맛을 제대로 사로잡았다. 한입 한입 먹을 때마다 그리웠던 한국의 맛이 떠올라, 눈물이 나올 뻔했다. 유럽에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의문이 들 정도로 그 순간 세상 모든 것을 가진 것 같았다. 남편도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제육볶음을 한 입 가득 넣으며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한국 사람은 어쩔 수 없이 한국음식을 먹어야 해!"라며 나는 감탄을 멈추지 않았다. 주변의 다른 손님들도 저마다 한국 음식을 즐기고 있었고, 그들이 보여주는 행복한 표정이 우리에게도 기분 좋은 에너지를 불어넣었다. 우리는 서로 농담을 주고받으며 웃음이 끊이지 않았고, 그날 저녁은 그야말로 행복과 만족으로 가득 찼다. 음식이 점점 줄어들수록 우리의 대화는 더욱 깊어졌고, 마치 오래된 친구처럼 수다를 떨었다.
여행의 마지막 밤을 이렇게 맛있는 한식과 함께 보내는 건 진정한 행복이었다. 모든 고급 레스토랑, 프랑스 요리, 세련된 분위기를 다 제쳐두고, 우리는 소박하고도 매콤한 한국 음식으로 파리에서의 마지막 하루를 특별하게 마무리했다. 비록 일 때문에 파리 관광을 충분히 하지 못했지만, 우리가 보낸 시간은 소중하고 알차기 그지없었다. 파리에서의 모든 순간이 한 편의 영화 같았고, 예술 그 자체였다. 눈부신 에펠탑, 낭만적인 레스토랑과 카페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식이 더해진 이 완벽한 조화! 우리의 파리 여행은 그렇게 모든 것이 완벽하게 맞아떨어진 예술 작품처럼 기억 속에 남았다.
한편, 파리를 돌아보며 느꼈던 것은 어느 유럽의 도시보다 근사하게 차려입은 사람들이 많다는 것, 그리고 여유가 넘쳐 보인다는 것이었다. 남편이 말하길, 파리 출신 동료에 따르면 파리지앵들은 일상 속에서 예술을 즐기는 데 천재적이라고 했다. 그들에게는 특별한 이벤트나 전시회가 없어도 상관없다. 거리의 벽화, 카페에서의 느긋한 커피 한 잔, 공원에서의 피크닉, 이 모든 게 그들에겐 예술이고, 삶 자체가 하나의 작품인 셈이다. 예술이 삶이고, 삶이 예술인 파리지앵들. 그래서 그들은 작은 일상 속에서 아주 큰 행복을 찾는다. 우리가 큰 성공이나 특별한 순간을 기다리며 행복을 추구할 때, 파리지앵들은 커피 한 잔에서, 해질녘 공원 산책에서 그 만족을 느끼는 법을 잘 알고 있다. 파리지앵들의 생활 철학을 보면 참 배울 게 많다. 그들은 일과 여가, 현실과 예술을 균형 있게 조화시키면서 서두르지 않고 느긋하게 현재를 살아간다. 현대의 바쁜 삶 속에서, 우리는 자주 이런 소소한 즐거움들을 놓치고 살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파리지앵들은 이런 균형을 잘 지키며 여유를 누리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행복의 비결이라고 여긴다. 그래서, 파리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작은 것에서 행복을 찾고, 현재를 만끽하는 여유가 아닐까? 그들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것은, 바쁘게 달려가는 삶 속에서도 멈춰서 순간을 즐기는 것이야말로 진짜 행복이라는 사실이다. 파리의 밤은 그저 화려한 조명만이 아닌, 그 조명 아래서 느긋하게 커피 한 잔 마시며 삶을 즐기는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특별한 분위기라는 걸 말이다. 이게 바로 진짜 파리, 진짜 낭만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