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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미나라 Nov 10. 2024

24) 테네리페: 자연과 역사의 섬 (ft.윤식당)

베를린의 겨울은 정말 혹독했다. 해는 어디 숨었는지 보이지 않았고, 매일같이 부슬부슬 내리는 비가 도시를 잠식했다. 하늘은 마치 구멍이라도 뚫린 것처럼 쏟아지기 시작하더니, 점점 내 마음마저 축축하게 젖어들었다. 우울함이 스며들던 그때, 우리는 과감히 테네리페에서 한달살기를 결정했다. 테네리페는 스페인 카나리아 제도에서 가장 큰 섬으로, 아름다운 해변과 따뜻한 날씨로 잘 알려진 곳이었다. 겨울의 암흑을 벗어나 따뜻한 햇살을 쬘 생각에 두근거렸다.


비행기가 테네리페에 착륙하기 직전, 테이데 산의 웅장한 모습이 창밖에 펼쳐졌다. 이 산은 스페인에서 가장 높은 산이자, 세계에서 가장 큰 화산 중 하나로, 그 거대한 존재감이 섬 전체를 지배하는 듯했다.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베를린의 혹독한 겨울과 완전히 다른 따뜻한 공기가 우리를 감싸며 절로 환호가 나왔다. 20도 정도의 기온은, 겨울 도시에서 막 빠져나온 우리에게 여름의 품과도 같았다. 섬을 제대로 즐기기 위해 우리는 렌트카를 빌렸고, 바람을 맞으며 숙소로 향했다.


깐델라리아(Candelaria)에 위치한 숙소는 깔끔하고 아늑했다. 두 명이 사용하기에 충분했고 생활하면서 필요한 왠만한 것들은 다 갖춰져 있었다. 하지만 우리가 가장 사랑에 빠진 공간은 따로 있었다. 바로 발코니였다. 그곳에서 바라본 햇살에 반짝이는 바다는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아침마다 우리는 발코니에서 식사를 하며 하루를 시작했다. 햇살과 바다, 그리고 따뜻한 바람이 어우러진 그 순간은 진정한 행복의 순간이었다. 베를린에서의 습한 어둠 속에서 이제는 햇살 가득한 여유를 누리며, 테네리페를 백배 즐기기로 했다. 



우리는 설레는 마음으로 숙소 주변을 먼저 둘러보기로 했다. 햇살이 가득한 테네리페의 상쾌한 공기를 마시며 천천히 길을 따라 내려갔는데, 그 길에는 테네리페에서만 볼 수 있는 특이한 식물들과 독특한 건축물들이 우리를 반겨주었다. 그곳의 선인장과 화산지대에서만 자라는 식물들은 마치 우리가 이국적인 정원 속을 걷는 듯한 기분을 들게 했다. 사람들의 집도 각기 다른 색감과 디자인으로 눈을 즐겁게 했고, 파란 하늘 아래 펼쳐진 이국적인 풍경이 여행의 시작을 더욱 특별하게 만들었다. 길을 따라 계속 내려가다 보니, 저 멀리에서 바다의 파도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점점 가까워질수록 바다의 모습이 선명하게 드러났는데, 그곳에서 우리는 검은 돌로 이루어진 해변을 발견했다. 처음 본 이 모습에 잠시 멈춰 서서 경치를 감상했다. 제주도의 돌 해변과도 비슷한 이곳은, 화산섬 특유의 자연스러움과 매력을 가득 품고 있었다. 파도가 검은 바위에 부딪히며 만들어내는 하얀 물보라와 시원한 바람은, 마치 화산섬의 생명력을 그대로 전달하는 듯했다. 이곳의 바다는 평범한 해변과는 달리, 대자연의 위대함과 지구의 힘을 그대로 느끼게 해주는 공간이었다. 우리는 그 순간, 테네리페가 관광지 이상의 자연의 경이로움을 품은 섬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우리는 가장 먼저 TV 프로그램 '윤식당'이 촬영된 가라치코(Garachico)로 향했다. 한국에서 이 프로그램을 보며 늘 마음 한구석에 남아 있던 그곳을 직접 가본다는 생각에, 기대감이 솟구쳤다. 도착하자마자, 마을은 마치 시간 여행을 한 듯 과거의 흔적을 고스란히 품고 있었다. 가라치코는 그 자체로 역사와 자연의 경이로움이 어우러진 마을로, 한적하면서도 매력적인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윤식당에서 봤던 그 골목과 건물들, 그리고 푸르른 바다가 눈앞에 펼쳐지니 TV에서만 보던 장면이 현실로 다가왔다. 마을 전체는 마치 한 폭의 그림처럼 유유자적한 분위기를 자아냈고, 몇몇 안되는 관광객들도 그저 느긋하게 거리를 거닐고 있었다. 여유롭고 소박한 테네리페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곳이었다.


우리가 제일 먼저 찾아간 곳은 바로 윤식당이 위치했던 건물이었다. TV에서만 보던 그 장소가 눈앞에 펼쳐지니, 마치 그 TV속 장면에 들어온 듯한 느낌이었다. 따뜻한 테라코타색의 벽과 짙은 갈색의 목재로 만든 문이 어우러진 이 건물은,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소박하면서도 매력적인 분위기를 유지하고 있었다. 광장과 거리도 윤식당 캐스트들이 활보하던 그곳 그대로였다. 우리가 TV에서 보던 장면들이 떠올라 한편으로는 신기했고, 이렇게 직접 방문할 수 있음에 대한 감사함이 가득했다. 프로그램에서 그들이 한식을 요리하고 손님들과 나누던 순간들이 생생히 떠올랐다. 그때 한식 냄새가 스쳐갔던 것 같은 착각마저 들었다. 아쉬움도 남았다. 그 프로그램이 아직 방영 중이었다면, 이곳에서 맛있는 한식을 즐기고 가는 기회를 잡았을 텐데! 현실은 윤식당이 더 이상 운영되지 않아 한식을 먹을 수 없었지만, 그 아쉬움마저 이곳을 방문한 특별한 추억으로 남게 되었다.


근처를 산책하고 언덕에 올라 바다와 마을이 맞닿은 경치를 감상하는 동안, 마음이 평온해지며 이 작은 마을이 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는지 절로 알 수 있었다. 가라치코는 그저 한 프로그램의 촬영지가 아니였고, 화산과 바다가 어우러진 독특한 자연환경을 자랑하는 마을이었다. 1700년도에 일어난 화산 폭발로 인해 마을 대부분이 파괴되었지만, 그로 인해 오늘날의 자연 수영장(Lava Pool)이 형성되었다. 우리는 그곳을 지나면서 파도가 바위에 부딪쳐 만들어내는 물보라를 구경했다. 검은 화산암과 파란 바다의 조화는 이국적이면서도 신비로운 풍경을 만들어내, 자연이 만들어낸 예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라치코의 자연은 우리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윤식당 덕분에 이곳을 알게 되었지만, 가라치코는 자연과 자연의 역사가 공존하는 매력적인 마을임을 느꼈다. 가라치코에서의 하루는 마치 시간이 느리게 흘러가는 듯했다. 매 순간이 소중했고, 평화로운 분위기와 아름다운 풍경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았다. 





테네리페의 여행을 이어가며, 우리는 또 다른 숨겨진 보석 같은 도시 라 라구나(La Laguna)를 찾았다. 테네리페의 옛 수도였던 이 도시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중요한 역사를 품고 있어 방문 전부터 기대가 컸다. 


도시에 도착하자마자, 우리는 고풍스러운 건물들과 웅장한 대성당에 매료되었다. 특히 15세기와 16세기의 식민지 건축 양식을 그대로 간직한 건물들은 마치 시간을 초월한 듯한 느낌을 주었다. 붉은 타일 지붕 아래 자리한 크고 화려한 대문과 정교한 창틀은 그 자체로 예술이었다. 그 중에서도 산 크리스토발 대성당(Cathedral of San Cristóbal)은 우리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성당의 웅장함 앞에서 절로 감탄이 나왔고, 성당 내부로 들어서니 고대 스페인의 역사가 한눈에 펼쳐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라 라구나의 거리를 걷다 보니, 색색의 집들이 눈앞에 펼쳐지며 나를 유혹했다. 마치 도화지 위에 그려진 도시처럼, 각 집마다 저마다의 개성을 뽐내고 있었다. 노란색, 분홍색, 하늘색, 심지어는 보라색으로 칠해진 벽들이 햇빛에 반사되어 빛날 때, 마을 전체가 화려한 팔레트처럼 느껴졌다. 각 골목을 돌 때마다 새로운 색이 나타나며, 나를 이끌고 그 끝을 궁금하게 만들었다. 특히, 이런 색감들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이곳의 문화적 다양성과 역사적 흔적을 반영하고 있었다. 식민지 시대에 건축된 스페인식 건물들이 현대적 감각과 만나면서 이 도시만의 특별한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이런 색들은 따뜻한 기후 속에서 더 빛을 발하며, 골목마다 독특한 캐릭터를 부여했다. 이곳에 발을 디딘 순간부터 모든 건물들이 살아있는 듯, 나에게 다가와 각자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느낌이었다. 우리는 구불구불한 좁은 거리들을 따라 걸으며, 마치 과거와 현대가 자연스럽게 공존하는 독특한 매력에 빠져들었다.


라 라구나는 단순히 예쁜 도시 그 이상이었다. 수많은 작은 박물관과 예술 공간들이 도시 곳곳에 숨어 있어, 이곳이 문화적으로 얼마나 중요한 장소인지를 잘 보여주었다. 우리는 역사 박물관(Museo de Historia)에 들러 이 지역의 식민지 시절부터 현대까지의 역사를 탐험했다. 박물관 안에 전시된 유물과 기록물을 보며, 라 라구나가 테네리페에서 어떤 역사적 역할을 했는지를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테네리페를 포함한 카나리아 제도에는 원래 '관체족(Guanches)'이라는 원주민들이 살고 있었다. 그들은 고립된 생활을 이어갔지만, 스페인 정복자들이 이 지역에 도착하면서 모든 것이 바뀌었다. 테네리페의 식민지 역사를 한국인으로서 보면 여러 공감이 가는 부분이 많았다. 먼저, 원주민 관체족이 스페인 정복자들에게 맞서 싸웠던 모습이 우리의 독립운동과 닮아 보였다. 그들이 식민지화되면서 문화와 종교를 잃고, 심지어 대규모 학살까지 당했다니, 마치 한국이 일제강점기 동안 겪었던 고통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테네리페가 대서양 무역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점도 흥미로웠다. 스페인이 이 섬을 통해 부를 축적한 것처럼, 한국도 동아시아의 중요한 교차로로 이용되었던 적이 있다. 또 스페인이 카톨릭 신앙을 강제로 전파했던 것처럼, 한국도 일제강점기 동안 일본어와 일본 문화를 강요받았던 점이 떠올랐다. 하지만, 두 나라 모두 이 아픈 역사를 극복하고 재건에 성공했다. 테네리페는 세계 문화유산에 등재된 역사를 자랑하고, 한국 역시 세계적인 경제 강국으로 성장했다. 이런 식민지 경험을 통해 두 나라 모두 자부심과 회복력의 중요성을 깨닫고 있다는 점에서 비슷한 교훈을 얻을 수 있었고 우리나라 같은 경우 테네리페와 달리 자국의 정체성, 우리말과 문화를 그대로 보존할 수 있었음에 크나큰 감사함을 느꼈다. 


라 라구나에서 보낸 하루는 단순한 여행을 넘어서, 과거와 현재가 어우러진 시간을 체험하는 특별한 경험이었다. 이곳의 좁은 골목길을 느긋하게 거닐며, 오래된 건축물 속에서 여전히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지켜보는 경험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이다. 테네리페에서 만난 라 라구나는 역사와 예술이 함께 숨 쉬는 특별한 도시였다.




테네리페의 매력에 흠뻑 빠져들 무렵, 우리는 '산타크루스 데 테네리페'(Santa Cruz de Teneife)를 방문하기로 했다. 고대와 현대가 공존하는 산타크루스는 대도시의 활기와 역사적 깊이가 녹아 있는 곳이었다.  테네리페가 스페인 제국의 지배하에 들어가자, 이곳은 스페인의 무역과 군사 전략에서 중요한 거점이 되었다. 특히 산타크루즈 데 테네리페는 대서양 횡단 무역과 신대륙(남미) 탐험을 위한 중간 기착지로 큰 역할을 했다. 이를 통해 스페인은 아메리카와의 교역을 활성화하며 제국의 부를 축적했다. 이곳은 대서양과 맞닿은 항구 도시로서, 단순한 물류 중심지를 넘어, 오랜 세월 동안 유럽, 아프리카, 남미를 잇는 글로벌 교차로로 발전해왔다. 항구에 정박한 거대한 선박들과 분주한 무역의 흔적이 이 도시의 역사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거리를 거닐며, 다양한 인종과 문화가 자연스럽게 섞여 있는 모습을 목격했다. 남미와 아프리카에서 온 사람들도 쉽게 볼 수 있었고, 이곳이 오랜 시간 동안 얼마나 많은 문화적 교류의 중심이었는지 알 수 있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눈에 띈 곳은 라 레코바 시장(La Recova Market). 라 레코바 시장은 그러한 교류의 산물로, 아프리카의 다양한 물품들이 거래되기도 했다. 아치형 구조와 중앙에 시계탑이 있는 넓은 중정은 마치 식민지 시대의 과거로 우리를 이끄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많은 아프리카 출신 이주민들이 테네리페로 건너와 시장에서 일하거나 상점을 운영하며, 아프리카 특산물이나 수공예품 등을 판매하는 등의 방식으로 시장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곳에서 아프리카 출신 사람들과의 상호작용은 테네리페 문화의 다양성을 보여주는 중요한 예시이기도 하다. 이곳은 현재 현지 주민과 관광객들이 한데 어우러져 신선한 농산물, 생선, 치즈, 수공예품을 사고파는 활기찬 장소다. 


산타크루스는 또한 과거와 미래가 공존하는 도시라고 할 수 있다. 거리를 걷다 보면, 고대 건축물과 현대적인 구조물이 나란히 서 있는 모습이 눈길을 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산 크리스토발 성(Castillo de San Cristóbal)인데, 이 성은 예전에 외부 침략을 막기 위해 지어진 방어 시설이었다. 이제는 도시의 한복판에서 마치 역사의 수호자처럼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대조적으로, 도시의 미래지향적인 상징인 오디토리오 데 테네리페(Auditorio de Tenerife)는 말 그대로 파도처럼 유려한 곡선을 그리며, 자연과 도시의 조화로움을 극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종종 음악 공연이 열리는데, 건축과 예술이 하나로 어우러지는 순간이 정말 인상적이다. 건물 자체가 거대한 예술 작품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산타크루스의 매력은 단순히 건축물에서 끝나지 않는다. 우리가 걸었던 팔메툼 공원(Palmetum de Santa Cruz de Tenerife)은 그야말로 도시의 활기와 자연의 고요함이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는 곳이었다. 처음 발을 디디자마자, 이곳이 세계 최대의 야자수 정원이라는 사실이 실감이 났다. 끝없이 펼쳐진 다양한 종류의 야자수들이 마치 도시 속의 열대 정원처럼 우리를 감쌌고, 그 순간 복잡한 도시 속에서도 숨통이 트이는 느낌이 들었다. 산책로를 따라 걷다 보니, 한편으로는 도심의 분주함이 멀리서 느껴지지만, 이곳에선 새소리와 함께 자연의 평화로움이 온몸을 감싸며 도심과는 완전히 다른 세상에 들어온 것 같았다. 특히, 높은 야자수 잎 사이로 내려오는 햇살이 정말 인상적이었다. 도시의 일상 속에서도 이렇게 자연과 인간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공간을 경험하다니, 그 순간 테네리페의 자연과 도시가 얼마나 조화롭게 공존하는지를 몸소 체감했다.




테네리페에 대한 호기심이 점점 커지던 중, 이번엔 북부의 푸에르토 데 라 크루즈(Puerto de la Cruz)라는 해변 도시로 발길을 옮겼다. 대서양을 마주한 이곳은 남부의 리조트들과는 달리, 더 차분하고 고요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마치 자연이 주는 깊은 평온함과 함께 이 도시가 고스란히 숨 쉬고 있는 듯했다. 우리가 푸에르토 데 라 크루즈에 도착하자마자, 우리를 반겨준 것은 검은 모래 해변과 대서양의 거친 파도였다. 이곳의 해변은 남부의 백사장과 달리, 화산 활동의 결과로 생긴 검은 모래가 주는 이국적인 매력이 가득했다. 파도가 바위에 부딪히며 물보라를 일으킬 때, 그 광경은 그야말로 자연의 힘이 느껴지며 눈부셨다. 특히 플라야 하르딘(Playa Jardín)은 자연과 인공이 아름답게 조화를 이룬 해변이었다. 세사르 만리케(César Manrique)가 설계한 이곳은 한적한 겨울 풍경 속에서도 그 매력을 잃지 않았다. 우리는 산책로를 따라 걸으며, 짭조름한 바다의 소금기와 상쾌한 열대 식물의 향기가 온몸을 감싸는 순간을 만끽했다. 그때, "아, 이래서 이곳이 '숨겨진 보석'이라 불리는구나!" 하고 단번에 깨달았다. 눈앞에 펼쳐진 아름다운 풍경과 부드러운 바람이 완벽하게 어우러지며, 만리케의 설계는 우리에게 자연과 하나가 된 예술임을 몸소 느끼게 해주었다.


푸에르토 데 라 크루즈의 또 다른 명소인 라고 마르티아네즈(Lago Martiánez)는 자연과 예술이 만난 대표적인 랜드마크였다. 이곳은 거대한 인공 호수로, 이곳 또한 만리케의 손길이 닿은 예술적 공간이었다. 안타깝게도 겨울이라 수영할 정도의 날씨는 아니었지만 여름에 이곳에서 풀장에 몸을 담그고 대서양을 배경으로 한 장엄한 풍경을 감상하는 것은 그야말로 특별한 경험일 것 같았다. 눈앞에 펼쳐진 끝없는 바다와 함께 수영을 한다는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뛰었다. 또한 자연 바위와 현대적인 조각품들이 조화를 이루어, 마치 물속을 거닐면서 미술관을 탐험하는 기분이 들 것 같았다. 이곳에서의 하루는 그 자체로 예술 작품 안에 머무는 느낌을 주며, 보는 것만으로도 잔잔한 감동이었다. 


푸에르토 데 라 크루즈는 역사 또한 깊이 간직한 도시였다. 이곳에서 구시가지의 좁은 골목을 따라 걷다가, 그곳에 숨겨진 스페인 식민지 시대의 흔적을 발견했다. 길을 걸을 때마다 오래된 건물들에서 그 시절의 분위기가 느껴졌다. 특히, 그곳의 발코니들은 마치 오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과거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했다.

그리고 산 펠리페 성(Castillo San Felipe)에 도착했을 때, 많은 감동이 밀려왔다. 이 요새는 푸에르토 데 라 크루즈가 과거 외부 침략과 해적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 세운 방어의 요새였는데, 성에서 내려다보는 대서양의 장엄한 풍경은 정말 압도적이었다. 해변에 부딪히는 파도의 소리가 성벽을 타고 올라오면서, 마치 그 당시의 역사적 순간들이 살아 숨 쉬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 성에서 멀리 대서양을 바라보며, 과거와 현재가 바다와 함께 호흡하는 이곳에서, 한동안 말을 잊고 역사의 무게를 온몸으로 느꼈다. 







테네리페 곳곳을 여행하면서 우리는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느꼈지만 내 뇌리에 강하게 박힌 이미지는 바다가 마을들과 매우 가까이에 있다는 것이었다. 길을 걷거나 차로 이동하면서도 마치 바다가 마을의 이웃인 것처럼 느껴졌다.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문득 “여기서 불안해서 어떻게 살지?”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기후변화로 인해 해수면이 상승하고 있는 요즘, 이곳 주민들이 매일같이 바다와 가까이 살아가는 모습이 어딘가 위태롭게 느껴졌다. 만약 해수면이 계속해서 더 상승한다면 이들의 생계는 어떻게 될까 하는 걱정이 들기도 했다.


그래서일까, 테네리페에서는 지속 가능한 관광에 대한 지역 사회의 강한 의식을 엿볼 수 있었다. 현지 주민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기후 변화가 그들의 일상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자연스럽게 이야기하게 되었다. 특히 농부들은 불규칙한 강우와 가뭄 때문에 농작물 재배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했다. 또한, 해안가에서는 해수면 상승으로 인해 점점 더 많은 해변이 침식되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다. 이렇게 변화하는 자연 앞에서, 테네리페 주민들의 생존과 환경 보호에 대한 고민이 깊어질 수 밖에 없다. 


하지만 테네리페는 그저 기후 변화의 피해자로만 남지 않았다. 이곳 사람들은 기후 위협을 극복하기 위해 정말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어느 날, 한 레스토랑에서 독일 출신 환경 보호 관계자와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었는데, 그는 이렇게 말했다.

“테네리페는 생물 다양성을 유지하려고 굉장히 노력하고 있어요. 그 중 하나가 재조림 프로젝트인데요, 섬 곳곳에서 사라져가는 숲을 복구하는 작업을 하고 있죠. 그리고 물 부족 문제도 심각해서, 수자원 보존을 위한 여러 가지 계획도 시행 중이에요. 예를 들어, 물을 더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새로운 기술을 도입하고 있습니다.” 그는 또 덧붙였다. “여기서 끝이 아니에요. 저희는 섬의 에너지를 재생 가능 에너지로 전환하는 계획도 차근차근 진행 중입니다. 태양광과 풍력 에너지를 최대한 활용하려고 하죠. 이런 변화는 섬 전체가 더 지속 가능한 관광지로 거듭나는 데 큰 도움이 될 거예요.”

이 이야기를 들으니, 테네리페 주민들이 환경 보호와 지속 가능한 관광 산업을 위해 다방면에서 힘을 모으고 있다는 사실이 정말 깊이 다가왔다. 이들은 기후 변화 앞에서도 그저 좌절하지 않고 미래를 위해 적극적으로 준비하고 있다는 점에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테네리페는 자연의 위대함과 그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지혜가 절묘하게 어우러진 곳이었다. 이곳에서의 경험은 그의 역사뿐 아니라 나에게 기후 변화와 자연 보호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상기시켜 주었다. 테네리페의 풍경은 너무나 아름다웠지만, 그 아름다움을 영원히 유지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책임감을 느꼈다. 테네리페에서의 여행은 단순한 휴양이 아닌, 과거, 현재 그리고 우리 모두의 미래를 진지하게 고민하게 만든 뜻깊은 여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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