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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미나라 Nov 14. 2024

25) 내가 몰랐던 독일: 숨겨진 매력을 찾아서

독일에서 지내며 자연스럽게 한국과는 확연히 다른 점들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그중에서도 특히 여가 문화의 차이는 정말 흥미로웠다. 한국에서는 모든 게 즉흥적이고 속도전이다. 회사에서 일이 끝나면 동료들이나 친구들이 "한잔 할래?"라고 물으면, 마치 약속이나 한 듯이 모두가 흔쾌히 응한다. 신기하게도 거의 누구도 거절하지 않는다는 사실! 술자리에서 분위기가 무르익으면 자연스럽게 "2차로 노래방 갈까?"라는 말이 나오고, 때로는 PC방에서 게임 한 판 하자는 이야기도 이어진다.  한국의 여가는 마치 끊임없이 이어지는 '도시 속의 소셜 레이스' 같다. 빠르게 흘러가는 하루 속에서 동료나 친구들과 카페에 앉아 상사 험담도 하고, 틈틈이 유튜브나 예능을 보면서 잠깐의 휴식과 웃음을 찾는다. '바쁘지만 즐겁게!' 이것이 바로 한국인의 여가 라이프의 핵심이다. 내게는 이 모든 게 너무 자연스러웠고, 그런 즉흥적인 만남들이 삶의 큰 활력소였다. 딱히 거창한 계획 없이도 언제든지 친구들과 모여 신나게 놀 수 있다는 점이 한국의 여가 문화를 생동감 넘치고 활기차게 만들어주었다. 


독일에 와서 가장 놀랐던 것 중 하나는, 독일인들은 즉흥적인 여가라는 게 거의 없다는 것이다. 여가 계획을 미리 짜는 게 이들에겐 당연한 것처럼 느껴졌다. '독일 사람들은 혹시 MBTI 'J'가 많은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일정 관리가 철저했다. 남편의 독일 친구들에게 "오늘 저녁에 뭐 할까?"라고 물으면 이미 그들은 주말 계획까지 다 세워둔 상태였다. 처음에는 이게 너무 답답하게 느껴졌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들도 나름대로 자신들만의 여유를 즐기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독일 사람들은 주말이면 도심보다는 자전거를 타고 숲으로 나가거나, 하이킹을 즐기며 자연 속에서 시간을 보내는 경우가 많다. 또한 공원에 누워 책을 읽거나, 강변을 따라 조용히 산책하며 사색에 잠기는 독일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 마치 도시 한가운데에서 느끼는 자연 속의 고요함처럼 보인다. 어느 날 우리도 베를린으로 시부모님을 초대해 근처로 하이킹을 갔는데, 끝없이 펼쳐진 초록빛 자연 속을 걷다 보니 마치 몸과 마음이 다 정화되는 느낌이었다. 그 상쾌한 공기와 더불어 잔디밭에서 독(?)버섯까지 발견했는데, 내 손보다 훨씬 커서 깜짝 놀랐다! 마치 동화 속에나 나올 법한 거대한 버섯이 우릴 쳐다보는 것 같았다. 그 순간 정말 자연과 하나 된 기분이었달까? 독일식 여가는 이런 식으로 차분하고 계획적인데, 그 나름대로의 재미와 매력이 있는 것 같았다.


처음엔 그 차이가 너무 크다고 느껴졌다. 한국에서는 친구들과 시끌벅적하게 웃고 떠드는 게 익숙했는데, 독일에서는 혼자 보내는 여유로움이 그들만의 힐링 방식이니 말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나도 그 정적인 여가의 매력을 깨달았다. 햇살이 따스한 오후에 공원에서 잔잔한 바람을 맞으며 책을 읽는 순간, 한국의 즉흥적이고 활기찬 문화와는 완전히 다른 평화로운 고요가 나름의 힐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두 나라의 여가 문화는 그 사회의 삶의 리듬을 잘 반영하고 있는 것 같았다. 한국의 즉흥적 에너지와 독일의 계획적 여유는 서로 극과 극이지만, 그 둘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삶을 더 풍요롭게 만들어주는 것은 마찬가지이지 않을까?



한편, 독일의 환경 보호에 대한 정책과 실천도 인상적이었다. 독일은 세계에서 쓰레기 분리수거를 앞장선 나라 중 하나로, 1990년대 초반 듀얼 시스템(Dual System)을 도입해 포장 폐기물에 대한 엄격한 분리수거를 시작했다. 독일은 분리수거와 재활용을 전 국민적 의무로 삼아 오늘날 가장 엄격한 분리수거 시스템을 운영하는 나라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고 분리수거의 초기 도입에 있어서 스위스와 함께 독일이 선구적인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독일은 환경 보호 의식이 매우 높아 플라스틱 일회용품 사용이 눈에 띄게 없었고, 재활용 시스템은 그야말로 철저했다. 플라스틱, 종이, 음식물, 금속은 물론 유리병도 색깔별(투명, 초록색, 갈색)로 나누어 분류해야 했다. 처음에는 이 복잡한 시스템이 헷갈리고 분류하는 곳들이 다 달라서 불편했지만, 나중에는 이 과정이 익숙해지면서 환경 보호의 중요성을 몸소 느끼게 되었다. 


특히 Pfand(판드) 제도가 독특했는데, 이 제도는 플라스틱 또는 유리병이나 캔을 마트나 슈퍼 자판기에 반환하면 보증금을 돌려주는 시스템이다. 처음에 물이나 음료수를 사면 물건값 외에 몇십 센트의 보증금(Pfand)이 추가되는데, 다 마신 후 그 병을 반환기에 넣으면 '똑똑' 소리와 함께 영수증이 나오고, 그걸 마트 카운터에 제출하면 보증금을 돌려준다. 이게 처음에는 좀 번거롭게 느껴졌지만, 나중에는 이 영수증을 모아 한꺼번에 돈을 돌려받는 작은 보너스처럼 느껴져 꽤 재미있었다. 정부에서 머리를 잘 쓴 것 같았다. 또한, 마트에서 물건을 살 때 비닐봉지는 거의 사라진 지 오래고, 장바구니를 직접 가져가는 것이 당연했다. 한국에서는 아직도 가끔 깜빡하고 쓰레기봉투를 살 때가 있지만, 독일에서는 장바구니 없이는 절대 쇼핑을 나설 수 없었다. 재미있게도, 독일 사람들은 작은 천 가방을 항상 들고 다니며 언제든 장을 볼 준비가 되어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독일 사람들은 정말 환경 보호를 생활화하고 있었고, 이곳에서 지내면서 나도 점점 더 작은 습관을 통해 환경에 기여하는 법을 배워가는 것 같았다. 독일의 이런 철저한 환경 정책과 실천은 정말 깊은 인상을 남겼다.




독일에 와서 또 하나 정말 신기했던 것은 식사 문화였다. 독일에서는 점심이 하루 중 가장 중요한 식사로 여겨지고, 주로 따뜻한 음식을 먹는 유일한 시간이기도 하다. 이게 한국과는 완전히 다른 점이었다. 한국에서는 거의 따뜻한 음식을 위주로, 특히 저녁을 든든하게 먹는 게 일반적인데, 독일에서는 점심만큼은 제대로 챙기고, 아침과 저녁은 그야말로 간단하게 때운다. 아침과 저녁은 주로 빵, 햄, 치즈 같은 걸로 해결하는데 저녁을 푸짐하게 먹는 나는 처음에 이게 너무 생소하게 느껴졌다.


그래서인지 독일은 정말 빵의 천국이었다. 독일엔 300종이 넘는 빵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매번 베이커리에 들어갈 때마다 마치 새로운 세계에 발을 디디는 기분이었다. 독일의 빵들은 하나같이 개성 넘치는 모양과 맛을 자랑하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흥미로웠던 건 바로 사워도우(Sourdough)! 한국에서는 달콤하고 부드러운 소프트한 빵이 인기지만, 독일 사람들은 신 맛이 살짝 나는 사워도우와 같은 짭짤하고 크리스피한 빵을 선호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사워도우는 천연 발효(젖산 발효)를 통해 만들어지며, 이 과정에서 유익한 유산균이 생성된다. 따라서 사워도우는 소화에 도움이 되고 혈당 지수가 낮으며, 인공 첨가물이 없어 일반 빵에 비해 더 건강한 선택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달콤한 빵에 길들여져 있던 내가 사워도우 빵을 처음 입에 댔을 때, 솔직히 그 약간 시큼한 맛에 당황스러웠다. ‘이게 무슨 맛이지?’ 싶었지만, 웬걸? 몇 번 더 먹다 보니 오히려 그 독특한 깊은 맛에 푹 빠져버렸다. 이제는 그냥 빵이 심심하게 느껴질 정도니 말이다. 사워도우의 풍부하고 쫄깃한 맛 없이는 하루도 버티기 힘든 빵 덕후가 되어버렸달까?


처음에는 빵을 너무 자주 먹는다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독일의 빵사랑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건강한 빵 옵션이 많아 매일 먹어도 몸에 부담스럽지 않을 것 같았고 매번 다양한 새로운 빵을 맛볼 때마다 ‘이래서 독일은 아침저녁으로 빵을 먹는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베이커리에 가면 때로는 거대한 호밀빵이, 때로는 작은 브레첼이 진열장을 가득 채우고 있는 모습은 그 자체로 축제 같았다. 빵 하나만 골라도 매번 색다른 선택지가 있으니, 베이커리에 가는 길이 매일 기대되는 일상이 되었다. 독일인들의 빵에 대한 자부심은 확실히 남다르고, 그들의 식탁에서 빵이 중요한 이유를 몸소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독일 하면 소시지와 햄을 빼놓을 수 없다. 내가 처음엔 "소시지가 뭐가 특별할까?"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가보니 이 나라에는 1,500종 이상의 소시지와 육가공품이 있다고 하니 정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육가공품은 건강에 좋지 않다’고들 하는데, 그렇다면 예전부터 소시지와 햄을 매일같이 먹어온 독일 사람들은 괜찮을까?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알고 보니, 독일에서는 식품 규제가 아주 엄격해서 인공 첨가물 사용이 제한적이라고 한다. 방부제나 인공 색소는 엄격히 관리되고, 전통적인 방식으로 만든 육가공품도 많아서 일부 제품은 소금과 후추 같은 단순한 양념만 넣는다고! 특히 예전 독일의 각 동네에는 맷츠거라이(Metzgerei)라는 정육점들이 즐비했는데, 이곳에서는 인공 첨가물이 들어가지 않은 신선한 육가공품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고 한다. 아, 얼마나 신선했을까! 하지만 안타깝게도 요즘은 이런 전통 맷츠거라이들이 점점 사라지고, 대형 마트들이 자리 잡으면서 자연 그대로의 육가공품을 찾기가 어려워지고 있다. 옛날처럼 순수한 맛을 찾기란 쉽지 않은 시대가 되어버린 셈이다.


그런 점이 아쉽긴 했지만 '대체 이 많은 소시지가 뭐가 다를까?'라는 호기심이 생겨 나도 하나씩 도전해 보기로 했다. 그중에서도 특히나 독특했던 소시지는 바로 레버부어스트(Leberwurst)! 이름부터 생소한 이 소시지는 간으로 만든 스프레드형 소시지인데, 빵 위에 발라 먹으면 고소한데도 살짝 신비한(?) 맛이 났다. 한국에서 먹던 순대 간과는 전혀 다른 식감이라 처음엔 당황했지만, 나중엔 호밀 통밀빵과 정말 잘 어울리는 맛을 발견했다. 마치 새로운 미식 세계에 눈을 뜬 기분이랄까?


그리고 맷불츈(Mettbrötchen)은 또 다른 충격이었다! 날 돼지고기를 다져서 빵 위에 올려 먹는 독일의 전통 적인 음식인데 솔직히 좀 겁이 났다. 한국인이라면 당연히 '날 돼지고기를 그냥 먹는다고?!'라는 생각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독일에선 위생 기준이 엄격해서 신선한 돼지고기를 안전하게 먹을 수 있다고 했다. 막상 한입 베어 물었을 때는 그 짭짤하고 신선한 돼지고기가 생양파와 함께 입안에서 터지는데, 생각보다 훨씬 더 풍미 가득한 맛이었다. 돼지고기 육회 같은 느낌인데, 짭짤하면서도 고기의 본연의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었다. 독일의 소시지와 육가공품은 처음엔 생소하고 놀라웠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소박하면서도 깊은 맛에 빠져들게 되었다. 독일 음식은 다른 유럽 나라 음식들처럼 세계적으로 유명하진 않지만 정말 빵과 육가공품만큼은 어디에 내놔도 뒤지지 않는 맛의 세계를 탐험할 수 있는 나라라는 걸 깨닫게 되었다!




독일에서 지내면서 가끔 남편이 전통 독일 요리를 해줄 때가 있었는데, 그게 얼마나 특별했는지 모른다. 예를 들어, 린드롤라덴(소고기말이)이나 자우어크라우트(절인 양배추)를 만들면, 한국 음식과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맛에 혀가 춤을 추는 듯했다. 남편이 자신의 나라인 독일에 오니 갑자기 요리 레벨업을 했는지, 집에서 독일 음식들을 수준급으로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평소에도 요리를 잘하는 것을 알았지만, 여기서는 거의 프로 셰프가 된 것처럼 변신했다. 그가 만들어주는 슈니첼(송아지 비프커틀릿)이나 카토펠잘라트(감자샐러드) 같은 음식들은 진짜 현지 맛집에서 먹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뿐만 아니라, 가끔은 내가 한국을 그리워할까 봐 제육볶음이나 김치찌개 같은 한국 음식도 시도해 보곤 했는데, 맛이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그 정성이 느껴져서 정말 감동이었고 그 마음에 고마웠다. "이게 내가 알던 김치찌개 맞나?" 하면서도 웃음이 피어나는 식사 시간이었다. 


식사 관련, 독일에서 한국이랑 정말 다른다고 생각했던 것 중 하나는 식사 시간이 단순히 밥을 먹는 시간이 아니라, 긴 대화의 중심이 된다는 거였다. 독일 친구들이나 가족들과 여유롭게 앉아 식사를 할 때는, 음식을 후딱 해치우기보다는 차분한 대화가 이어지는 시간이 참 많았다. 한국에서는 식사가 좀 더 빠르게 이루어지고 친구들이나 온 가족이 모여 북적거리면서 활기찬 분위기 속에서 음식과 대화가 동시에 터져 나오고, 가끔은 누가 더 많이 먹나 속도전처럼 느껴지기도 하는 반면 독일에서는 정반대였다. 식탁에 앉으면 먼저, 눈앞에 있는 음식보다 대화의 흐름이 중요했다. 음식이 나와도 한 주제의 대화가 끝날 때까지 음식은 쳐다보지도 않아서 배가 고프면 화가 행그리 정신이 강했던 나는 처음에 적응이 잘 안 되었다. 독일에서는 식당에 가도 크게 소리 내서 웃고 떠드는 사람들이 거의 없다는 것을 목격하고 나 또한 더 조용조용 대화하게 되었는데 마치 한 영화 속의 숨 막히는 식사 장면을 실제로 경험하는 기분이었다. 처음엔 ‘이렇게까지 오래 앉아서 조용히 얘기만 할 수 있을까?’ 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이 차분한 여유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깨달았다. 음식이 천천히 사라지고, 대화는 더 길어지는 이 독일식 식사는, 적응이 되면서 나에게 또 다른 여유로움과 즐거움을 더해주었다. 한국에서처럼 분주하게 먹고 신나게 떠드는 것도 매력 있지만 느긋하게 앉아서 서로의 이야기에 조용히 귀를 기울이는 시간을 갖는 것도 나에게는 또 다른 힐링이 되었다. 



먹을 것을 얘기하다 보니 생각나는 게 내가 처음 독일에 와서 가장 놀랐던 건 바로 식재료 가격이었다. 한국에서는 과일이나 야채를 살 때마다 지갑을 슬며시 잡고 눈치를 보다 살까 말까 고민하다가 안 사는 경우가 많았는데 독일에서는 마치 야채와 과일이 ‘거저’라는 느낌이 들 정도로 저렴했다. 전반적인 마트 식재료 값이 싸니 정말 먹고 싶은 것들 다 담으면서 마음 편히 장을 볼 수 있었고 장보고 나면 마음이 든든했다. 특히 빵! 빵값은 정말 이 세상 가격이 아니었다. 독일에선 고소하고 신선한 빵을 몇백 원, 몇천 원이면 듬뿍 살 수 있었는데, 한국에서는 그런 빵을 먹으려면 베이커리에서 3배 정도 가격을 더 지불해야 했던 것 같다. 처음엔 정말 놀라서 ‘혹시 오늘 세일하는 날인가?’ 싶기도 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독일의 저렴한 식재료 가격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한국의 농업은 여전히 소규모 농가가 대부분인 것과 달리 독일은 넓은 경작지와 대규모 농업 덕분에 독일은 대량 생산이 가능하고, 여기에 유럽 내 무관세 혜택까지 더해져 수입품도 저렴하니 가격이 저렴할 수밖에 없었다. 또한 독일 농업은 유럽의 공동 농업 정책(CAP)에 따라 대규모 보조금을 받는다고도 했다. 독일에서는 마치 농작물들이 가득 찬 시장에서 '어서 가져가세요!'라고 손짓하는 듯했고 나는 그 부름에 언제나 응했다.



한편, 독일은 진정한 구름의 나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나는 원래도 하늘을 올려다보며 둥실둥실 떠다니는 구름 보는 걸 좋아했는데, 독일에 와서는 그 취미가 더욱 업그레이드된 느낌이었다. 독일 하늘을 보면 그날그날 다양한 구름들이 새로운 모양으로 펼쳐져 있는데, 마치 자연이 그리는 거대한 캔버스를 감상하는 기분이 들었다. 솜사탕처럼 포근한 구름이 하늘을 떠다니는 날도 있고, 어느 날은 회색빛 유화 같은 구름들이 하늘을 가득 채워 비가 내릴 준비를 하는 모습도 정말 장관이다. 그래서 독일에서 우산은 거의 필수품이 되었다. 날씨가 순식간에 변하니, 언제든 우산을 챙겨야 했다. 햇볕이 쨍쨍하다가도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지니, 정말 "소나기는 예고 없이 온다"는 말을 독일에서 몸소 체험할 수 있었다. 하지만 비 온 후 무지개를 만나게 되는 건 또 다른 작은 행운이 있기도 하고 상상 이상의 일몰을 선사하기도 한다. 


비가 자주 오는 덕에 독일의 자연은 늘 초록빛으로 넘쳐난다. 도시 곳곳에 있는 공원과 숲에서 느껴지는 그 푸르름은 정말 독일의 매력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베를린에서는 비가 굵어졌다 얇아졌다 하며 거리를 적시는 모습이 흔한데, 그럴 땐 동네 카페에 들어가 따뜻한 커피 한잔을 마시며 비 오는 날의 낭만을 즐기는 것도 나만의 작은 즐거움이 되었다. 그리고 독일 하늘이 주는 다채로운 풍경은 정말 지루할 틈이 없다. 봄, 여름, 초가을에는 구름도 예쁘고, 하늘이 계속해서 시시각각 변하는 모습이 경이로웠다. 하지만 겨울이 다가오면 얘기가 달라진다. 끊임없이 내리는 비와 축축한 공기에 지칠 때도 있고, 우울해지기도 한다. 그런 날에는 ‘내가 왜 구름을 좋아했지?’라는 회의감이 들기도 한다. 회색빛 하늘이 계속해서 펼쳐지고, 비가 부슬부슬 내리면 그토록 좋아하던 구름이 많이 미워지기도 하고 '이 회색 구름은 도대체 언제 그칠까?'라고 생각하며 화창한 봄을 기다리는 순간이 점점 더 간절해지기도 한다. 


한편, 독일 사람들의 범죄물 사랑은 정말 독특하고 흥미롭다. 한국에서는 웃기고 유쾌한 예능이나 달달한 로맨스 드라마가 인기인데, 독일에선 오히려 범죄 영화, 드라마, 소설 같은 심각하고 긴장감 넘치는 콘텐츠가 주류를 이룬다는 점이 신기하게 다가왔다. 예능을 보며 시시콜콜 웃고 떠들던 한국의 일상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한국에서 예능과 드라마가 사랑받는 이유는 그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고, 감정적으로 빠져들기 좋기 때문인 것 같다. 예능은 일상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한방에 날려버릴 만큼 웃음이 넘치고, 드라마는 로맨스나 가족 이야기, 가슴 저린 인생사를 통해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타는 기분을 준다. 한국인들은 이런 감정적 교감을 중요하게 생각해, 몰입하고 공감할 수 있는 콘텐츠에 푹 빠지는 경향이 있다.


반면에 독일에서는 범죄물이 대세다. 처음에는 왜 이렇게 심각한 이야기들을 좋아할까 의아했지만, 독일 사람들은 논리적 사고와 복잡한 이야기를 풀어가는 데 큰 매력을 느낀다는 걸 알게 됐다. 범죄물을 통해 사건을 하나씩 풀어나가는 추리 과정, 인간의 심리와 동기를 파헤치는 지적인 도전이 그들에겐 오락 그 이상인 것이다. 여기서는 '타트오르트(Tatort)' 같은 범죄 드라마가 몇십 년째 인기인데,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한 리얼리즘과 깊이 있는 이야기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심지어 내 시부모님도 항상 범죄 소설만 읽으시고 드라마를 즐겨 보시는데, 그게 처음엔 너무 신기했다. 나는 이 독특한 취향에 독일의 날씨도 한몫한다고 생각한다. 독일의 우중충한 날씨에 푹 젖다 보면, 차 한 잔 마시면서 두꺼운 범죄 소설을 읽는 게 딱일 것 같더라.. 그 비 내리는 날씨와 심오한 범죄물의 조합이 왠지 찰떡궁합처럼 느껴졌다. 이처럼 한국에서는 감정적인 재미와 힐링을 선사하는 콘텐츠가 대세라면, 독일에서는 지적인 추리와 사회적 이면을 탐구하는 범죄물이 더 큰 매력을 발휘하는 듯하다. 두 나라의 시청자 취향 차이를 보면, 그 나라 사람들의 성향이 콘텐츠 속에서 그대로 드러난다는 사실이 참 신기하게 다가왔다. 



독일의 숨겨진 매력과 독일 사람들과 한국 사람들의 성향 차이를 고찰해 보니, 정말 흥미로웠다. 각 나라의 환경, 문화, 역사, 교육 방식이 달라서 자연스럽게 나타난 성향 차이들은 생각보다 더 깊은 의미를 담고 있었다. 그런 차이점들을 마주하면서, 양쪽의 장점을 배우고 서로의 문화적 차이를 존중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새삼 깨달았다. 이 모든 차이를 이해하면서, 양국의 고유한 생활 방식이 각기 다른 사회적 배경과 가치관에서 비롯되는 모습을 직접 볼 수 있었다. 각 나라의 매력을 탐구하며 서로의 문화를 깊이 이해하고 다름을 존중하는 것은, 그 자체로 소중한 경험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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