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호주 시드니 여행
펜션 준비 끝무렵쯤 남편은 회사일에 많이 지쳐있었다. 남편 회사의 새로운 CEO가 온 후 몇 달이 지나도 기존의 문제들은 전혀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러 차례 회의에서 소프트웨어의 명백한 문제점들이 공개적으로 언급되었지만, CEO로부터는 아무런 답변도 나오지 않았다. 이로 인해 남편은 회사의 발전과 변화에 대한 희망을 점점 잃어가며 좌절감을 느끼게 되었다. 설상가상으로 새 CEO가 새로운 직원들을 대거 고용하면서 팀 내에서 정치적 갈등도 심화되기 시작했고 태국 본사에서 일하지 않는 원격 근무자들의 의견은 무시되었고 남편을 포함한 원격 근무자들은 점점 고립되어 갔다. 이로 인해 팀 간 협업이 더욱 어려워지고, 회사의 내부 분위기는 악화되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남편은 희망을 잃지 않고, 회사의 변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그는 여전히 자신의 업무에 최선을 다하며, 원격 근무자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려고 애썼다. 그러나 새로운 CEO와의 갈등은 더욱 깊어져가고 있었고, 회사의 미래가 불투명해지는 상황에서 남편의 심정은 더욱 복잡해지고 있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남편 회사는 초기의 독일 최초 소프트웨어 판매책으로서 대기업에 맞춤형 고유 솔루션을 제공했던 이점을 상실했다. 독일 지사를 만드는 경쟁 업체가 늘어나고 국제 경쟁이 치열해졌기 때문이다. 남편의 회사 입사 7주년이 다가오고 있었지만, 그는 이미 지칠 대로 지쳤고 스트레스로 인해 거의 잠을 못 자고 불안해했다. 남편은 회사 내의 갈등과 고객의 피드백을 무시하는 회사의 태도에 좌절감을 느낀다며 자주 나에게 불평을 토로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나는 남편의 건강이 우려되었다. 그래서 나는 조심스럽게 남편에게 제안했다. "이렇게 스트레스받지 말고 회사를 그만두는 것이 어때?" 일로 힘들었던 나에게 손을 내밀어 줬던 남편처럼 나도 옆에서 힘이 되어주고 싶었다. 돈도 중요하긴 하지만 나는 남편이 더 나은 기회와 안정된 환경에서 다시 시작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남편은 끝까지 일을 포기하지 못했고 몇 달 동안 스트레스와 무기력증에 시달리며 살아갔다. 나는 남편의 그런 모습을 보는 것이 힘들었지만 그의 결정을 존중하며 지원할 수밖에 없었다. 그가 스스로의 선택으로 자신에게 맞는 길을 찾아가기를 바라면서..
화창한 금요일 오후, 우리는 거의 완성되어 가는 펜션 발코니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주변 산 경치를 바라보고 있었다. 맑은 하늘과 따뜻한 햇살 아래, 완성에 가까워진 우리의 꿈을 실감하며 평화로운 순간을 만끽했다. 이 순간만큼은 모든 걱정과 스트레스를 잊고, 거의 다다른 펜션 프로젝트에 대한 기대와 자연의 아름다움 속에서 진정한 힐링을 느꼈다. 가을이 끝나갈 무렵이어서 나무들은 서서히 잎을 떨어뜨리고 있었다. 주말이 다가오고 있으니 남편은 일에 대한 스트레스를 뒤로하고 조금은 긴장을 풀 수 있게 되었다며 안도했다.
그러다 오후 3시쯤 남편의 화상 통화 벨이 울렸다. 발신자를 보니 태국의 새로 온 마케팅 담당 부사장이었고 남편은 계획되어 있던 회의도 없는데 이 시간에 왜 전화를 했는지 의아해했다. 우리는 서로 말은 안 했지만 뭔가 심상치 않음을 직감했다.
“여보세요?” 남편의 목소리가 화면을 통해 긴장감 있게 흘러나왔다.
" 오늘은 그리 유쾌하지 않은 주제가 있습니다,” 마케팅 부사장이 차분하지만 냉정한 톤으로 말을 꺼냈다.
남편은 마른침을 삼키며 답했다. “무슨 일이죠?”
“구조조정과 비용 절감 조치로 인해, 해외에 위치한 모든 지사와 사무소를 폐쇄하고 웹사이트를 통한 소프트웨어 판매만을 전념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마케팅 부사장은 얼굴에 깊은 고민이 서린 채 무겁게 말했다.
남편은 충격에 말문이 막혀, 화상통화 화면을 멍하니 응시했다.
“안타깝게도 이러한 조치는 당신에게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베를린에 있는 독일 지사는 문을 닫고, 영업팀의 판매도 전면 중단될 것입니다.” 마케팅 부사장의 말은 무겁게 떨어졌다.
남편은 그 충격적인 소식에 잠시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눈앞의 화면에서 그 말들을 되새기며 얼어붙은 듯했다.
남편은 새로운 CEO가 부임했을 때부터 이러한 사태를 우려해 왔다. CEO가 자신의 사람들로 직원들을 바꾸기 시작한 터라, 남편도 예외가 아닐 것이라 예상했지만, 이 말을 직접 듣는 순간 그 충격은 상상을 초월했다. 남편의 얼굴은 울그락 불그락해졌고, 불편한 기색이 가득했다. 나는 그런 남편이 안쓰러웠고 회사 결정에 화가 나기도 했지만, 동시에 이 상황이 오히려 잘된 일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드디어 남편이 그 좌절과 스트레스에서 벗어날 기회를 맞이한 것 같았다. 돈은 생기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하지만, 건강을 잃는 것은 결코 바라는 바가 아니었다. 화상통화가 끝난 후, 남편은 어쩔 줄 몰라하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그런 그에게 하이파이브를 제안하며, "드디어 그 지긋지긋한 회사에서 벗어나게 된 것을 축하해!"라고 웃으며 말했다. 남편은 갑작스러운 해고로 인해 기분이 좋지 않았겠지만, 나에게 애써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날 저녁, 우리는 잔을 높이 들었다. 하지만 그것은 상실감을 곱씹는 건배가 아니었다. 오히려 새로운 시작을 맞이하는 축배였다. 이 상황이 인생의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점이 될 수 있음을 강조하며 남편을 격려했다.
내 지지와 격려를 고마워하며 남편은 이 위기 상황을 새로운 기회로 삼기로 결심했다. 남편의 표정에 서서히 퍼지는 기대와 희망을 보며, 나는 그가 다시 힘을 낼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계약상 몇 달간의 유예 기간이 남아 있었던 남편은 변호사를 고용해 그 기간 동안의 월급과 퇴직금을 최대한으로 보장받기로 했다. 독일의 고용법이 직원에게 유리하게 설정되어 있어, 그의 권리는 잘 보호되었다. 나는 그동안 스트레스받고 고생한 남편을 위해, 그리고 해고의 충격에서 아직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남편을 위해 이 퇴직금으로 안식년을 가지는 것이 어떻겠냐고 했다. 그가 새롭게 에너지를 충전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한 것이었다. 남편은 이 제안에 깊은 감사를 표하며, 우리가 함께 어려운 시기를 겪으면서도 서로의 긍정적인 에너지를 주고받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새삼 느꼈다. 이 시간을 통해 우리는 더욱 강한 팀워크를 다지게 되었고, 각자의 강점과 약점을 이해하며 서로를 지지하는 법을 배웠다. 힘든 상황에서도 함께 헤쳐나가며 쌓아온 신뢰와 협력은 앞으로의 도전에 대한 자신감을 더욱 키워주었다. 이러한 경험은 우리의 관계를 더욱 깊게 만들어 주었고, 새로운 기회를 향한 의지를 한층 더 확고히 했다. 이제 우리는 다가오는 미래를 보다 긍정적이고 준비된 마음으로 맞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남편은 해고로 인한 스트레스를 푸는 동시에 점점 추워지는 날씨를 피하기 위해 한 달간 따뜻한 곳으로 여행을 가고 싶다고 했다. 이는 그의 진정한 여행가적 본능이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역마살의 황제는 역시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마침 나도 온라인으로 주문한 마지막 가구 및 소품들을 기다리고 있었고 나는 그에게 하고 싶은 거 다 해보고 어디든 가고 싶은 곳이 있으면 함께 가자고 제안했다. 남편은 이번엔 호주 시드니를 여행지로 정했다. 한국과 날씨가 정반대고 아름다운 해변가들이 많아 늦가을-겨울 휴가로 가기에는 안성맞춤일 것 같았다.
하지만 나에게 시드니는 그리 달갑지만은 않은 장소였다. 시드니라는 단어만 들어도 마음속에 양날의 감정이 휘몰아쳤다. 사실 나는 호주 시드니에서 2년 반 동안 살았던 경험이 있다. 대학교 졸업 후, 나는 2년 동안 패션 무역회사 해외영업부에서 죽어라 일하며 하루에 16시간씩 좀비처럼 일했고 주말도 마다한 야근으로 모은 돈으로 드디어 시드니의 대학원에 입학했다.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고 싶다는 꿈을 품고 간 곳이었지만, 그 결과는 다소 씁쓸했다. 학기 마지막에 전공 관련 인턴십을 해본 결과, 내 적성에 맞지 않아 결국 전에 다니던 같은 회사로 돌아간 기억은 지금도 나를 웃프게 한다. “내가 왜 그랬을까?”라는 자문과 동시에, 그 시절의 내가 가끔 대견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시드니에서의 대학원 생활은 로맨틱한 캠퍼스 라이프와는 거리가 멀었다. 공부는 공부대로 만만치 않았고 모자란 생활비를 벌기 위해 베이커리에서 빵을 포장하고 팔고, 화장품 매장에서 지나가는 고객들을 불러 세워 물건은 팔고, 남성복 매장에서 진열대를 정리하고 관리하느라 하루하루가 전쟁 같았다. “언젠가 내가 이런 고생을 웃으면서 떠올릴 날이 올까?”라고 생각했지만, 그때는 하루를 버티는 것도 힘겨웠다. 대학원 친구들이 주말마다 해변에서 태닝을 하고 시드니 오페라하우스 앞에서 맥주를 즐길 때, 나는 카운터 뒤에서 빵 포장지를 접고 있었다. 누군가 "시드니, 진짜 멋지지 않아?"라고 물으면 속으로 "글쎄, 난 빵 냄새만 나는데?"라고 되뇌던 내 모습이 떠오른다.
그렇게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시드니에 머물렀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여행다운 여행을 해본 적은 거의 없었다. 항상 "다음 달엔 가야지!" 하며 계획만 세우다 끝났다. 생존 싸움을 하듯 바쁜 일상과 스트레스 속에서 결국 향수병이 터졌고, "그래, 고생도 그만!"이라는 결심으로 마지막에 어렵게 구한 일마저 관두고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그때 나는 속으로 시드니에 이렇게 말했었다. “너랑은 다시 만나지 않을 수도 있겠다..” 그래서 이번 여행은 어쩐지 묘한 기분이었다. 시드니에 다시 가면 내가 그 시절의 힘겨웠던 기억들을 떠올릴지, 아니면 새로운 시드니를 발견하며 다른 감정을 느낄지 궁금했다. 다시 만난 시드니는 예전과 얼마나 달라져 있을까? 그리고 나는 그때와 얼마나 다른 사람이 되었을까? 시드니에서의 두 번째 이야기가 어떻게 흘러갈지, 그 자체가 이번 여행의 가장 큰 미스터리였다.
남편도 전에 이 도시에 여행 가본 적이 있어서 우리는 이번엔 투어보다는 쉬어가는 힐링을 목적으로 시드니로 향했다. 우리는 9시간의 비행 끝에 우리의 숙소가 있는 본다이 졍션(Bondi Juction)으로 향했다. 그곳에 도착했을 때 옛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겉모습은 크게 바뀐 것 같지는 않아 뭔가 묘한 기분이었다. 숙소는 2층에 침실과 화장실이 있고, 1층에는 야외 부엌이 있는 아담한 구조였다. 우리가 머물 숙소는 주인 부부와 두 아이, 그리고 큰 반려견이 함께 사는 집과 연결된 구조로, 중간에 문이 있어 출입이 제한되는 방식이었다. 처음에는 오다가다 마주칠 일이 있을 거 같아 조금은 불편할 것 같았지만, 집주인 부부가 우리를 따뜻하게 맞아주어 다행이었다. 그들은 친절하고 배려심 깊은 사람들인 것 같았다.
우리는 시드니 곳곳을 탐험하며 여유로운 시간을 만끽했다. 캐나다 여행 때와 마찬가지로, 남편과 함께 내 추억 속 장소들을 방문하고 다양한 카페 및 레스토랑에서 이야기를 나누며 새로운 경험을 쌓았다. 유학 시절의 기억과는 또 다른 시드니의 분위기가 새롭게 다가왔다. 시간에 쫓기고 돈에 전전긍긍했던 과거와는 달리, 이번에는 남편과 함께 편안한 여행을 즐기면서 시드니를 다른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한때 향수병을 일으켰던 도시가 이제는 더 이상 고생의 장소가 아닌, 아름답고 여유로운 시드니로 기억될 것 같았다. 오페라 하우스, 하버 브리지, 달링 하버, 본다이 비치, 맨리 비치 모든 곳이 그저 아름답기만 했다. 사람의 상태에 따라 장소가 달라 보인다는 것이 신기하면서도 웃기게 느껴졌고, 여행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장소가 아니라 누가 옆에 있는가라는 사실을 다시금 깨달았다. 이번 여행 덕분에 시드니는 이제 사랑과 편안함이 가득한 장소로 새롭게 각인될 것 같았다.
내가 이렇게 느끼는 동안 남편은 다시 한번 시드니와 사랑에 빠졌다. 시원한 바다를 즐기는 남편에게 이 도시는 마치 천국 같았다. 우리는 매일 여유롭게 맥주나 와인 한 잔씩 마시며 멋진 경치를 감상했고 남편은 아무런 압박감 없이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자유로움을 만끽하였다. 그의 얼굴에는 늘 행복한 미소가 떠올랐고, 우리는 함께 새로운 추억을 쌓으며 시드니의 매력을 다시 한번 느꼈다. 남편은 특히 그곳의 대형 슈퍼마켓을 좋아했다. 싱싱한 야채와 과일, 다양한 치즈와 고기 등 요리하기에 최적의 식재료들을 한 곳에서 쉽게 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요리를 좋아하는 남편은 이곳에서 진정한 실력발휘를 할 수 있었다. 슈퍼마켓에서 장을 보고 돌아올 때마다 그의 얼굴에는 기쁨이 가득했고 그가 만들어 주는 음식은 어느 레스토랑 부럽지 않았다.
집주인 부부와 자주 마주치며 스몰토크를 나누다 보니 자연스레 가까워졌다. 어느 날, 그들이 왓슨스 베이(Watsons Bay)에 함께 가자는 제안을 했다. 거리가 있어 차량 이동이 필요한 곳이라 새로운 지역을 탐험할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집주인 부부의 차를 같이 타고 가는 동안 우리는 즐겁게 대화하며 더 친해졌다. 왓슨스 베이에 도착해 아름다운 해안 산책로를 걸으며 사진을 찍고, 멀리서 누드비치의 풍경도 감상했다. (가까이 가보지 못한 것이 아쉬웠지만...) 근처의 숙박시설과 카페, 레스토랑들은 모두 힙한 분위기였고, 그중 가장 매력적인 야외 레스토랑에서 점심을 함께 했다. 그곳은 인기가 많아 사람들이 북적였고, 음식과 와인의 맛을 보니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점심 식사 후, 집주인 부부와 함께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 후, 우리는 만족스럽게 집으로 돌아갔다.
그 이후로 집주인 부부는 우리가 더 편하다고 느꼈던지, 그들의 반려견이 우리 숙소 부엌 앞마당으로 들어오기 시작했고, 아이들도 그곳에서 자주 놀게 되었다. 부엌이 마당과 연결된 오픈 구조라 다니기 불편하긴 했지만, 아이들과 반려견이 너무 귀여워서 그들의 출입을 막을 수는 없었다. 오히려 우리는 아이들과 가까워지고 장난감도 사주었으며, 반려견에게 간식도 챙겨주었다. 그 반려견은 항상 우리 침실 문 앞에서 우리가 나올 때까지 기다리는 모습을 보여주었고, 그 애틋한 모습이 마음을 따뜻하게 했다. 어느 날, 숙소 마당을 사용한 것에 대한 감사의 뜻으로 집주인 부부가 저녁 식사에 초대해 주었다. 그 자리에서 먹은 스테이크는 상상 이상으로 훌륭했다. 집주인 부부는 우리와 성향이 비슷해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고, 이 대화가 깊어지면서 다음번에는 우리가 식사를 초대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리고 남편의 맛있는 이탈리아 음식들로 그 약속을 지켰다.
집주인 부부 가족과 친해져서 친구가 된 것은 반가웠지만, 한편으로는 돈을 주고 사용하는 숙소에서는 선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우리는 집주인 부부와 가족과 같이 식사를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도 했지만, 동시에 그들은 손님의 개인적인 공간과 프라이버시를 존중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돈을 주고 사용하는 숙소에서는 서로 간의 경계를 존중하면서도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걸 이번 경험을 통해 몸소 느끼게 되었다. 이런 교훈을 통해 앞으로의 펜션 운영에 있어서도 적절한 마인드로 다가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예전에는 어떤 숙소를 가도 고객의 입장으로만 생각했는데 펜션 운영을 하려고 보니 어떤 부분에서 고객이 불만을 느낄 수 있는지 어떤 부분을 중요하게 보는지를 생각하게 되는 호스트로서의 눈도 가지게 되었다. 여유로움 속에서 또 하나 배울 수 있었던 시드니의 여행은 이렇게 끝이 났다. 남편은 이 한 달간의 여행으로 모든 것을 완전히 치유할 수는 없었겠지만, 내가 항상 옆에 있고 무엇이든 함께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고 했다. 이번 여행이 우리의 관계를 더욱 돈독히 하고, 앞으로의 도전에 함께 맞설 힘을 준 의미 있는 시간이 되었다.
한편, 삶의 경험들을 통해 나는 다시금 깨달았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 남편이 7년간 다니던 회사에서 해고당했을 때 우리는 큰 충격을 받았지만, 시간이 지나니 그것도 새로운 시작의 계기가 되었다. 내가 한때 고생으로만 기억하던 시드니 역시, 이번에는 여유와 아름다움으로 가득한 장소로 다시 다가왔다. 변하지 않을 것 같던 상황도, 머릿속에 각인된 기억도 시간이 흐르며 달라지는 법이다.
결국, 삶은 끊임없이 흘러가고 변한다. 때로는 고통스러운 변화도 있고, 예상치 못한 기쁨도 찾아온다. 하지만 그 변화 속에서 우리는 성장하고, 새로운 기회를 만나며, 삶의 또 다른 모습을 발견한다. 고된 시드니의 기억이 여유로운 풍경으로 변한 것처럼, 우리의 삶도 그 흐름 속에서 계속 새로운 이야기를 써 내려가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변화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준비해야 할까? 먼저, 현재의 상황이 영원하지 않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 좋은 순간이든 힘든 순간이든 그것이 영원히 지속되지 않을 것임을 안다면, 기쁨은 더 소중하게, 어려움은 더 담담하게 맞이할 수 있지 않을까? 또, 변화는 항상 우리를 성장시키는 기회를 준다. 불확실함 속에서도 배우고, 작은 가능성이라도 찾으려는 태도가 결국 더 나은 길로 이끌어줄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기억은 스스로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내가 한때 힘든 기억으로만 남아 있던 시드니를 이제는 여유로움으로 바라볼 수 있듯이, 우리의 과거도 새로운 시선으로 재해석할 수 있다. “나는 왜 그때 그렇게 힘든 선택을 했을까?”가 아니라, “그 경험 덕분에 지금의 내가 있구나”라는 마음으로 전환하는 것이 필요할 수 있다.
불확실함은 두려운 것이 아니라, 우리 삶에 새로운 이야기를 더하는 과정이라는 사실을 떠올리며, 지금 이 순간도 언젠가 새로운 의미로 다가올 날을 기대해 본다. 변화는 피할 수 없는 것이지만, 그 변화를 어떻게 마주하느냐는 우리 손에 달려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