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취리히 & 바르셀로나 여행
호주에서 돌아온 후, 나는 펜션 오픈을 위해 모든 에너지를 쏟았고, 남편은 자신만의 시간을 가지기로 했다. 그는 그동안의 경험을 되돌아보고 스스로를 반성하는 시간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이를 통해 그는 무엇이 그를 행복하게 했고, 무엇이 그렇지 않았는지를 명확히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남편은 늘 자신의 사업을 구상해왔지만, 아이디어 단계에서 머물러 왔다고 말했다. 태국에서 친구와 함께 독일 스낵인 커리부어스트를 파는 작은 가게를 열겠다고 한 적도 있었는데, 로고와 이름까지 만들었지만 자본 부족으로 무산되었고, 또 한 번은 와이파이존을 알려주는 앱을 만들겠다며 온갖 구상을 하다가 적합한 개발자를 못 찾아 프로젝트는 흐지부지되었다고 했다. 그뿐인가, 기차역 근처의 작은 숙소를 연계하는 앱을 구상하며 처음에 열정적으로 스케치를 그렸지만, '자본과 개발자가 없다'는 현실 벽에 또다시 부딪혔다고 했다. 남편은 한숨을 푹 쉬며 말했다. “지금은 아이디어 창고가 텅 비었어. 우선 좀 쉬어야겠어.” 그의 창의력과 호기심은 마치 장작 같은 것이었다. 불을 붙여야 타오르는데, 지금은 연료가 다 떨어진 상태였다. “쉬어야겠어”라는 말은 곧 “나는 배터리 충전 중”이라는 의미였고, 나는 그런 그를 이해할 수 있었다. 왜냐하면, 이 남자는 충분히 쉬고 나면 갑자기 “있잖아, 이번엔 이런 거 어때?” 하며 완전히 새로운 아이디어를 들고 나타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결심했다. “좋아, 당신 마음껏 쉬고, 충전 좀 해봐!” 펜션 준비로 정신없었던 나는 그를 내버려 두는게 상책이라 생각했고 속으로 말했다. “쉬고 나면 당신은 아마도 기막힌 뭔가를 생각해내고 말거야. 근데 이번엔 제발 실행 가능한 걸로 부탁해!^^”
2019년 크리스마스 시즌이 다가오면서, 드디어 우리의 펜션 대작전이 결실을 맺었다! 대출이라는 씁쓸한 꼬리표가 붙긴 했지만, 이제 남편과 내가 언제든 들어와 살 수 있는 집이 생겼다는 사실에 큰 안도감을 느꼈다. "이제 진짜 우리 집이야!"라고 외치며, 남편과 하이파이브를 하고 춤이라도 출 기세였다. 특히 공사부터 온갖 힘든 작업을 도맡아주신 아버지의 황금손과 새어머니의 서포트 없이는 이 꿈이 이루어질 수 없었기에, 감사의 마음을 담아 두 분께 맛있는 밥을 대접했다. 가구 배치와 소소한 인테리어 작업까지 끝내고 나니, 마치 작은 꿈의 성을 완성한 듯한 기분이 들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지만, 그래도 끝났다!"라는 외침이 절로 나왔다. 이제 남은 건 손님을 기다리는 일뿐! 완성된 펜션 사진을 5개의 예약 플랫폼 등록하고, 사람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설렘과 초조함 속에서 기다리기 시작했다. '우리 펜션이 눈에 띄는지 확인하려고 플랫폼을 몇 번이고 새로 고침하는 건 나만 그런 거 아니지?'라며 스스로를 다독였다.
친한 지인들에게 펜션 오픈 소식을 전하니, 축하 메시지가 빗발쳤다. “와, 너희 진짜 해냈네! 정말 축하해!”라는 말에 어깨가 으쓱해졌다. 하지만 가장 감동적인 순간은 첫 예약이 들어온 날이었다. 예약 알림이 핸드폰에 뜨자마자 남편과 나는 서로를 껴안고 소리를 질렀다. “드디어! 첫 손님이 온다!” 이 순간이 우리에게 얼마나 큰 기쁨과 보람을 가져다줬는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었다. 이 모든 과정은 단순히 펜션 오픈이 아니라, 우리의 새로운 시작을 위한 중요한 첫걸음이었다. "이제 진짜 승부다!"라는 생각과 함께, 크리스마스 시즌의 반짝이는 불빛처럼 우리의 펜션도 빛나기를 기대하며 문을 활짝 열었다.
첫 예약은 12월 말로 예정되어 있었지만, 우리 펜션에 처음 발을 들여놓은 손님은 다름 아닌 내 결혼식 사회를 맡았던 대학교 선배였다. 선배는 오픈 소식을 듣자마자 홈페이지 사진들을 보며 “와, 진짜 예쁘게 잘 꾸몄네! 너희 대단하다!”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런데 갑자기 선배가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저기... 혹시 내가 여자친구한테 여기서 프로포즈해도 될까?” 나는 눈이 번쩍 뜨며 바로 대답했다. “당연하지요! 저희가 완전 제대로 준비해드릴게요!” 그렇게, 우리의 펜션은 뜻밖의 프로포즈 스폿이 되었다.
그날부터 나는 프로포즈 준비에 돌입했다. 한 객실을 풍선과 꽃다발, 케익, 초로 아기자기하게 꾸미느라 온몸을 들썩이며 작업했다. 방 안이 점점 반짝이고 사랑스러운 분위기로 변해갈수록 나도 묘하게 설레기 시작했다. 남편은 그동안 로맨틱한 샴페인과 이탈리안 음식들로 테이블을 세팅하며 완벽한 플랜을 준비했다. “이거 뭔가 드라마라도 찍는 기분인데?” 남편이 웃으며 말했지만, 사실 내 손은 떨리고 있었다. “우리 때문에 망하면 어떡하지?”라는 부담감 때문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아무것도 모를 여자친구와 선배를 위한 완벽한 순간을 만들어 주고 싶다는 의지가 솟구쳤다. "우리가 만든 이 공간이 특별한 사랑의 증거가 되겠지?"라며 스스로를 다독였다.
드디어 그들이 펜션에 도착했다. 선배는 여자친구에게 아무것도 귀띔하지 않은 상태였다. 객실 문을 열자마자, 그녀는 입을 막으며 눈이 휘둥그레졌다. "우와... 이게 다 뭐야?" 그 순간 선배는 무릎을 꿇고 반지를 꺼냈고, 방 안의 촛불과 풍선들이 그들의 특별한 순간을 완벽히 감싸주었다. 우리는 몰래 문틈으로 이 광경을 지켜보다 서로 눈빛을 교환하며 조용히 하이파이브를 했다. “해냈다!” 그들의 환한 미소를 보며, 나는 마음 한구석이 따뜻해졌다. 우리 펜션이 그들에게 잊지 못할 순간을 선물했다는 생각에 몽글몽글한 감정이 밀려왔다. “내가 온 정성을 쏟아 만든 이 공간이 진짜 특별한 의미를 가지게 되었구나!” 남편과 나는 그들의 행복을 축하하며, 우리가 꿈꾸던 펜션의 진짜 시작을 느꼈다. “자, 이젠 다음 프로포즈 예약 받아야 하는 거 아니야?” 남편의 농담에 우리는 함께 웃으며 축배를 들었다.
그리고 나서, 예약 플랫폼을 통해 손님들의 문의와 예약이 하나둘씩 쏟아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손님들이 펜션에 도착할 때마다 심장이 두근거렸다. ‘혹시 청소가 덜 된 건 없을까? 준비가 미흡하진 않을까?’ 걱정에 한껏 초조한 마음으로 손님들을 맞이했지만, 그런 내 우려는 기우에 불과했다. 손님들은 펜션을 무척 마음에 들어 했고, 하나같이 긍정적이고 따뜻한 리뷰를 남겼다. ‘마케팅을 따로 하지도 않았는데 이렇게 예약이 들어오다니, 이게 무슨 일이지?’ 놀라움과 설렘이 교차하는 와중에도 나는 즐겁게 청소기를 돌리고, 침구를 세탁하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첫 달 예약률은 30%로, 처음엔 그저 적자만 피하자는 마음으로 시작했던 나로선 꽤 괜찮은 결과였다. 그런데 두 번째 달에는 이야기가 달라졌다. 예약률이 50%까지 치솟은 것이다! 스스로도 믿기 어려운 숫자 앞에서 감동과 기쁨이 몰려왔다. ‘우리가 이렇게 잘하고 있구나!’라는 뿌듯함에 가슴이 벅차올랐다. 펜션의 불빛이 환히 켜진 밤, 바비큐장에서는 연기가 피어오르고 사람들이 웃음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렸다. 이제 이곳은 그저 하루 묵는 숙소가 아닌, 누군가의 소중한 추억이 되는 장소가 되고 있었다.
그 와중에 역마살이 따로 없다 싶은 우리 남편은 또다시 여행 욕구가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거의 3개월에 한 번씩 발동하는 그의 여행 본능은 이번엔 스페인 바르셀로나를 향했다. ‘3월에는 날씨도 딱 좋을 거야! 가자, 바르셀로나!’ 남편은 이미 한 손에 여행 책를 들고, 다른 손으론 짐가방을 집어 들 태세였다. 나는 남편이 직장에서 해고당한 후 ‘뭐든지 같이 해주겠다’며 야심 차게 던진 약속을 떠올리며 속으로 살짝 한숨을 쉬었지만, 결국 그의 뜨거운 열정을 이길 순 없었다. 그래서 부모님께 펜션 운영을 3주 동안만 맡아달라고 부탁드렸다. '이렇게 갑작스럽게?' 싶으셨겠지만, 다행히 부모님은 흔쾌히 받아주셨다. 예약 관리와 고객 응대는 다행히 온라인으로 원격에서 해결할 수 있었기 때문에, 현장 관리 위주로 부모님께 맡겼다. 부모님이 펜션 옆에 사셔서 다행이라고 생각했고 돌아오면 뭔가 이에 대한 조치를 취해야 겠다고 생각했다.
바르셀로나로 떠나기 전, 우리는 스위스 취리히에 잠깐 들렀다. 남편의 오랜 친구를 만나러 간 건데, 취리히에서의 첫인상은 ‘고요함’ 그 자체였다. 알프스를 배경으로 잔잔히 펼쳐진 호수를 보니 가슴이 뻥 뚫렸고, 그 위를 우아하게 미끄러지듯 떠다니는 백조들은 한 폭의 그림 같았다. 호숫가를 따라 걷다 보면, 여유를 만끽하는 현지인들과 여행자들이 눈에 들어온다. 그들은 햇살 아래 산책하거나 호수 옆 벤치에서 커피를 즐기고 있었다. 모든 게 완벽히 평화로워 보였다. 마치 시간이 멈춘 것 같은 이곳에서 도시의 복잡한 일상은 잠시 접어두고 마음껏 숨을 고를 수 있었다.
취리히는 스위스가 중립국으로서 가진 독특한 위치와 장점을 잘 보여주는 도시이기도 했다. 세계의 갈등과 위기 속에서도 스위스는 항상 침착하고 안정적이었다. 이곳 사람들은 그러한 안정에서 오는 여유를 알고 있었다. 정치적 혼란에 휘말리지 않는 나라의 장점은 단순히 이론적인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표정과 도시의 분위기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났다. 한편으로는 부러운 마음이 들었다. 우리나라와는 다른 형태의 사회적 시스템 속에서 살아가는 그들의 모습이 그랬다.
반면 그만의 아름다움 속에서도 우리를 놀라게 한 것은 숨 막히는 물가였다. 정말, 밥 한 끼 먹으려면 카드 결제 전에 손이 떨릴 지경이었다. 한국보다 가격이 2~3배는 높은 느낌이랄까? '아무리 맛있어도 이건 좀...'이라는 생각이 들며 한 끼 한 끼가 소중했다. 반면에 남편 친구는 그런 걱정과는 전혀 다른 세상에 사는 사람처럼 보였다. ‘여긴 다 너무 비싸지 않냐’고 물어보니, 그는 웃으며 "스위스에서 돈을 벌면 별로 그렇게 비싸다고 느끼지 못해. 오히려 다른 나라 가면 물가가 너무 싸서 충격받는다니까!"라고 했다. 역시 연봉과 물가가 비례하는 세상이었다. 그리고 스위스의 연금 시스템! 노후 걱정이 없는 그 안정된 모습이 한없이 부럽기만 했다. 남편 친구는 여유롭게 커피 한 잔을 홀짝이며 "여기선 나이 들어도 살만해, 걱정 없어"라고 했지만, 우리는 속으로 '그런 시스템 좀 우리나라에도 줘봐!'라고 외치고 있었다. 독일의 연금 시스템도 비교적 잘 갖춰져 있지만, 지속적으로 독일에서 근무하지 않으면 그 혜택을 온전히 누리기는 어렵다. 남편이 독일에서 근무를 지속하지 않는 이상, 이 연금 혜택을 받기는 사실상 힘든 처지였다.
한국에서는 다들 노후 걱정에 집 한 채라도 장만하려고 고군분투한다. 그 현실 속에서 우리의 펜션은 더욱 의미 있게 다가왔다. 단순히 손님을 받는 공간이 아니라, 우리가 꿈꾸는 미래를 위한 발판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비록 지금은 매일 침대 커버를 빨고 화장실을 닦는 현실이지만, 이 펜션은 우리가 언제든 돌아갈 수 있는 집이고 우리에게 보다 안정적인 수익을 안겨줄 것이라는 희망이 마음 한 켠을 따뜻하게 채웠다. 취리히의 높은 물가를 겪으며, 우리의 선택과 노력이 얼마나 큰 의미를 갖는지 실감했다. 그날 저녁, 나는 스위스의 고요한 정적속에서 남편에게 물었다. ‘언젠가 우리도 저렇게 여유롭게 살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대답은 하나였다. "펜션이 그 시작이야!" 그렇게 우리는 다시 힘을 냈다. 꿈은 이루어진다고 믿으면서 말이다."
취리히의 밤은 낮과는 전혀 다른 매력을 가지고 있다. 알프스의 은은한 실루엣이 점점 어둠 속으로 스며들면, 도시의 불빛이 하나둘 켜지며 잔잔한 호수를 황금빛으로 물들인다. 낮에는 고요하고 차분하던 호수도 밤에는 마치 반짝이는 보석함처럼 빛을 발하며, 별빛과 도시의 네온사인이 어우러진 풍경을 완성한다. 린덴호프(Lindenhof) 언덕에 올라 도시를 내려다보면, 취리히는 낮의 평화로움을 그대로 이어가면서도 어딘가 낭만적인 긴장감을 더한 모습이다. 반듯한 건물들의 실루엣 사이로 따뜻한 불빛들이 은은하게 퍼지고, 구시가지의 오래된 건물들은 시간을 초월한 듯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특히, 그로스뮌스터(Grossmünster) 대성당의 쌍둥이 첨탑은 밤하늘을 배경으로 더욱 장엄하게 우뚝 서 있다. 고요히 흐르는 리마트(Limmat) 강 위에 반사된 도시의 불빛은 취리히를 더욱 황홀하게 만든다. 취리히의 밤은 또한 일종의 모순처럼 느껴진다. 고요하고 정적인 동시에 그 속에 묘한 생동감이 스며 있다. 사람들은 호숫가를 따라 산책하거나 강변의 카페에 앉아 잔을 기울인다. 이곳의 밤은 시끌벅적하거나 화려하지 않지만, 그 자체로 충분히 풍요롭다. 호수와 강이 선사하는 잔잔한 물결 소리, 그리고 멀리서 들려오는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도시의 밤을 감미롭게 채웠다.
취리히에서의 짧지만 강렬했던 경험을 마치고 바르셀로나로 향했다. 그 도시는 취리히의 차가운 겨울의 풍경과는 다른 따스한 햇살과 여유로운 공기로 우리를 맞아주었다. ‘날씨부터 너무 좋은데?’라는 기분으로 가성비 좋게 예약한 라 람블라 근처의 숙소로 향했다. 그런데 와우, 금세 그 이유를 깨닫게 되었다. 숙소는 분명 저렴했지만, 이건 말 그대로 ‘싼 게 비지떡’이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남편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저기 봐," 그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고, 그가 가리킨 곳에는 마약 중독자로 보이는 사람이 벤치에 누워있었다. "그리고 저기..." 그의 시선은 알코올 냄새가 진동하는 거리 한쪽, 노숙자들이 모여 있는 곳을 향하고 있었다. 심지어 매춘부들까지 골목 곳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남편은 진지한 얼굴로 "여기 소매치기 많다니까 조심하자"며 내가 가방을 꼭 붙들도록 주의를 주었다. 순간, 낭만적인 바르셀로나가 현실적인 바르셀로나로 급변하는 느낌이었다. 유럽의 유명 관광지라지만, 이런 다양한 모습들이 공존하는 게 씁쓸하게 다가왔다. 하지만 걱정에 빠져 시간을 허비할 순 없었다. "에이, 그래도 바르셀로나잖아!"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며 웃고는 이 도시의 매력을 마음껏 즐기기로 했다.
바르셀로나를 걷는다는 것은 단지 거리를 지나치는 일이 아니었다. 이 도시의 공기에는 시간과 예술, 그리고 자연이 층층이 쌓여 있었다. 고딕지구(Gothic Quarter)를 거닐며 처음 든 느낌은 "세상이 아무리 발전했어도 예전만한것이 없다."였다. 좁고 구불구불한 골목길은 끝이 없어 보였고, 돌로 만들어진 건물마다 아로새겨진 시간의 흔적이 나를 이끌었다. 오래된 아치형 창문과 고풍스러운 광장은 그 자체로 이야기를 품고 있었다. 그저 걷는 것만으로도 도시의 혼과 마주한 기분이 들었다. 이곳에서는 굳이 서두를 필요도, 목적지를 정할 필요도 없었다. "걷는 것만으로 충분해"라는 도시의 속삭임이 나를 가만히 붙잡았다.
도시의 또 다른 상징, 가우디의 건축물들은 여전히 나를 매료시켰다. 사실, 이 도시는 예전에 친구와 한 번 방문한 적이 있다. 그때도 가우디의 작품에 눈이 번쩍 뜨였지만, 이번에도 다르지 않았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을 다시 마주했을 때, 그 웅장함은 여전히 압도적이었다. 단순히 높거나 화려해서가 아니라, 그것이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카사 바트요의 비늘 같은 외벽, 카사 밀라의 파도처럼 휘어진 벽면을 다시 보며도 생각했다. "이 사람, 시대를 몇 세기 앞서간 거야?" 가우디의 건축물 앞에서는 과거와 현재의 경계가 모호해지며, 나는 매번 어린아이처럼 놀라고 만다. 자연에서 영감을 받은 유기적인 곡선과 화려한 색감은 “이걸 사람이 만든 게 맞아?”라는 질문을 자아냈다.
하지만 바르셀로나는 단순히 건축과 골목길만으로 정의되지 않는다. 도시와 가까운 해변은 또 다른 차원의 매력을 선사한다. 복잡한 도시를 탐험하다가도 조금만 걸으면 끝없이 펼쳐진 바다가 눈앞에 나타난다. 바르셀로네타 해변의 부드러운 모래와 시원한 바람은 마음속까지 정화시키는 듯했다. 해변의 카페에서 맥주 한 잔을 마시며 수평선을 바라볼 때, 시간은 멈춘 것 같았다. 이 도시가 얼마나 다채로운 매력을 품고 있는지, 그리고 그 매력을 얼마나 자연스럽게 드러내는지 깨닫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간 몬주익 언덕. 이곳은 바르셀로나 여행의 클라이맥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케이블카가 서서히 올라가며 보여주는 전경은, 그야말로 도시와 바다를 한눈에 담는 걸작이었다. 이곳에서 본 풍경은 도시가 품고 있는 모든 이야기를 들려주는 한 편의 서사시 같았다. 해가 지며 노을이 바다와 도시를 붉게 물들일 때, 나는 그 순간을 머릿속에 새기고 또 새겼다. '사진으로 이 장면과 느낌을 온전히 담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간절했을 정도다.
바르셀로나를 여행하며 나를 가장 사로잡은 것은 그 어떤 랜드마크도, 화려한 건축물도 아니었다. 바로 사람들로 북적이는 광장에서 보내는 시간이었다. 플라자에서 타파스를 앞에 두고 상그리아 잔을 들이켜며 바라본 바르셀로나의 모습은, 이 도시가 가진 진정한 매력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광장들은 언제나 활기로 넘쳤다. 햇살은 따뜻하게 내리쬐고, 주변에는 말소리와 웃음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사람들은 누군가의 아는 사람처럼 가깝게 느껴졌고, 그 에너지가 고스란히 나에게도 전해졌다. 눈앞에 놓인 타파스는 한 입 한 입이 행복이었다. 쫄깃한 문어요리, 짭조름하면서도 풍미가 가득한 하몽, 그리고 방금 튀겨 따끈한 감바스까지, 입안에서 춤추는 듯한 맛에 감탄이 절로 나왔다. 그 위로 상그리아의 달콤하면서도 톡 쏘는 맛이 더해지니, 이보다 더 완벽한 순간이 있을까 싶었다.
무엇보다도 광장에서 마주한 바르셀로나 사람들의 모습은 여행지에서 느낄 수 있는 가장 진솔한 행복이었다. 각자의 이야기를 나누며 웃는 친구들, 악기를 연주하며 주변 사람들의 미소를 끌어내는 거리 예술가들, 햇살 아래 앉아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는 노부부까지. 이곳의 시간은 누구에게나 특별하고 또 평화로워 보였다. 그 속에서 나는 관광객이 아닌 바르셀로나의 일부가 된 기분을 느꼈다.
맥주잔을 살짝 흔들며 눈앞의 풍경을 바라볼 때마다, 도시는 나에게 말을 거는 듯했다. ‘여기서는 서두르지 마, 모든 걸 천천히 즐겨도 돼.’ 플라자에서 보내는 몇 시간이 짧게 느껴질 정도로, 그곳의 공기와 맛, 그리고 분위기는 마음을 포근히 감싸주었다. 바르셀로나의 유명한 건축물들과 명소도 물론 기억에 남지만, 내겐 이 광장의 순간들이 가장 강렬했다. 상그리아 한 잔과 타파스 한 접시가 만들어낸 작은 축제 속에서, 나는 바르셀로나가 가진 여유와 열정을 진정으로 느꼈다. 여행의 기억 속에서 이 광장은 언제나 햇살 아래 반짝이며, 나를 다시 그곳으로 초대하는 듯했다.
바르셀로나는 삶의 다양한 면모가 얽힌 복합적인 공간인듯 했다. 고딕지구에서 느낀 시간의 깊이, 가우디 건축물에서 발견한 창의성, 해변에서의 여유로움, 언덕에서 바라본 탁 트인 전경, 그리고 광장의 활기는 내가 사는 세상과 또 다른 방식으로 삶을 보여주었다. 이 도시를 걷는 것은 단순히 발을 옮기는 일이 아니다. 멈추고, 느끼고, 생각하게 되는 경험이었다. 바르셀로나는 여전히 나에게 속삭인다. “다시 오면 또 새로운 이야기를 들려줄게.”
이런 시간이 끝나지 않길 바랬지만...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