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만남
수영은 어렸을 때부터 '여자 같다'는 말을 들으면 기분이 좋았다. 화장과 치마를 즐기며 자기는 남자가 아니라 여자라고 생각하며 살았다. 그러다 22살이 되던 해에, 이름도 수영이라고 개명하고, 성전환 수술도 받아, 가족관계등록부상 성별도 ‘남’에서 ‘여’로 정정하였다. 수영은 그렇게 법적으로도, 신체적으로도 완전한 여성이 되었다.
그런데 그렇게 10년간 여자로 살았지만, 자신을 여자로 사랑해주는 남자를 만나지는 못했다.
대훈은 어렸을 때부터, 키도 작고 체구도 왜소해서, 주위 친구들로부터 여자 같다는 놀림을 많이 받았고, 그래서인지 30년간 여자와 연애도 해보지 못한 채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해 9월, 수영과 대훈은 서로 출근하는 길에 있는 어느 조그마한 카페에서 자주 마주쳤다. 처음에는 서로 눈인사를 나누었다. 며칠 후에는 누군가 메뉴를 고민하고 있으면, ‘오늘은 이걸 드셔보세요’라며 서로에게 메뉴를 추천해 주기 시작했다. 그렇게 며칠이 또 지났다.
그날 아침에는 수영 혼자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대훈이 조각케이크와 커피가 든 트레이를 들고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 천천히 수영을 향해 걸었다. 조심스러운 대훈의 발걸음에 커피가 흔들렸다. 마치 대훈의 심장이 떨리는 것처럼. 그의 발걸음을 따라 케이크의 달큰한 향기가 주위에 퍼지고 있었다. 마침내 대훈이 수영의 곁에 서서 미소를 지었다.
"저기요, 제가 오늘 조각케이크를 샀는데, 너무 맛있게 보여서요. 같이 드실래요?"
"아.. 네 고마워요.. 그래도 될까요?"
"제가 영광이죠... "
대훈이 처음으로 수영의 맞은 편에 앉았다. 수영에게 포크를 건네는 그의 손이 유난히 떨렸다.
"감사합니다"
대훈이 떨리는 손으로 건네는 포크를 받아드는 수영의 입가에 걸쳐진 미소도 잘게 떨리고 있었다.
"이 근처 회사에 다니시나봐요.."
"네, 저는 이 옆 시흥빌딩 5층에 있는 회사에 다녀요.. 그런데.. 그 쪽은...."
"아.. 제 이름은 대훈이라고 합니다. 저는 이 건물 4층에 있는 회사에서 일을 하고 있어요."
"제 이름은 수영이에요.. 케이크 나눠 주셔서 너무 감사해요.. 케이크가 정말 맛있네요"
수영도 웃었고, 대훈도 따라서 웃었다. 그 순간 두 사람의 어깨에 얹혀 있던 긴장이 조용히 풀렸다.
둘 사이에는 그렇게 작은 일상의 순간들이 쌓여갔다. 어느새 두 사람은 아침마다 일부러 같은 시간에 카페에 들어와 서로를 찾게 되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 수영과 대훈은 주말이면 함께 만나 데이트도 즐기게 되었다. 그 즈음 둘은 대훈의 제안으로 제주도로 첫 1박 2일 여행을 떠났다. 수줍게 손을 잡고 함께 오름에 올랐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함께 푸른 바다와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러다 문득 고개를 돌려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 눈에는 서로에 대한 애틋함과 고마움이 담겨있었다.
서울로 돌아가는 비행기안에서 수영은 대훈의 어깨에 얼굴을 기대었다. 수영의 호흡이 그의 어깨를 타고 가슴에 닿았다. 대훈은 비행기보다 더 높은 곳에 떠 있는 듯했다. 대훈의 눈에 비행기 안에 있던 예쁜 여자아이가 들어왔다. 자신에게도 곧 저런 여자아이가 딸처럼 찾아올 것 같았다.
성전환한 자신을 온전한 여자로 사랑해주는 남자를 만난 수영은 행복했고, 늘상 여자 같다는 놀림을 당하던 자신을 한 명의 남자로 사랑해주는 여자를 만난 대훈도 행복했다. 그 행복이 깨질까 두려웠던 두 사람은 결혼식을 올리기 전에 혼인신고를 먼저 하기로 하고, 대훈의 친구들을 증인 삼아 혼인신고도 먼저 하고, 동거를 시작하였다.
둘은 그렇게 행복하리라 기대했다.
제2장 고백
혼인신고를 마치고, 동거를 시작한 며칠 후, 대훈은 수영과 함께 저녁을 먹다가 조심스레 말을 건넸다.
"수영씨 우리, 애는 몇이나 낳을까요? 나는 딸만 하나 낳았으면 좋겠는데..."
그 말을 들은 수영의 눈은 커졌고, 심장이 거세게 뛰었다. 팔을 들고 있기 힘들어 수저도 내려 놓았다.
어렸을 때부터 '여자같다'는 말을 들으며 자랐다. 수술과 호르몬치료로 신체적으로도 완전한 여성이고, 법적으로도 10여 년을 여자로 살아왔다. 그렇지만, 수영은 스스로도 누군가 자세히 보면 자신의 몸 어딘가에는 남자같은 면이 남아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수영은, 대훈이 자신이 성전환수술을 한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자기를 온전히 여자로 사랑해주는 것으로 알고 있던 참이었다.
수영은 크게 심호흡을 하면서 뛰는 심장을 가라앉히며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자기야, 사실 나 성전환수술을 했어. 난 자기가 그 사실을 처음부터 알고 있는 줄 알았고, 우리가 제주도에서 함께 밤을 보내면서도 자기는 알고 있는 줄 알았어. 모를 거라는 생각을 못했어..."
그러나 수영은 마지막 말을 채 끝마치지 못한 채 말끝을 흐렸다.
대훈도 조용히 수저를 내려놓았다. 둘 사이에 놓인 국물이 모두 식을 만큼의 시간이 흘렀다. 둘 사이에 아무런 말이 없었다. 대훈이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 조용히 집을 나왔다.
대훈은 어두워진 하늘을 올려 보았다. 대훈도 여자를 만나본 경험은 없었으나 수영이 다른 여자와 조금 다르다는 점은 느끼고 있었다. 얼굴은 너무 예뻤으나 얼굴윤곽에서 어딘지 남자같은 모습이 보이기도 했고, 가끔씩 나오는 중저음의 목소리와 웃을 때 느껴지는 얼굴의 미묘한 주름 등이 여자와 다른 느낌이었다.
그러나 대훈은 그럴 때마다 수영이 좀 특별한 여자일 것이라고 애써 믿으려 했다. 수영으로부터 수술을 했다는 이야기를 듣고도, 대훈이 처음으로 느꼈던 감정도 수영에 대한 배신감이 아니라 수영을 닮은 아이와 함께 만들어갈 가족의 모습이 사라진 상실감이었다.
대훈은 고민끝에 부모님집에 들어가 부모님께 수영의 성전환 수술 사실을 말씀드렸다. 부모님의 격노도 격노였지만 대훈도 수영에 대한 까닭 모를 깊은 상실감에 혼인문제를 정리하기로 했다.
며칠 후, 수영과 대훈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함께 변호사 사무실을 찾아가기로 했다. 둘은 며칠만에 변호사사무실 앞에서 만났다. 수영의 표정은 덤덤했는데, 오랜만에 수영을 보는 대훈의 눈에는 눈물이 흘렀다.
"미안해요. 수영씨.. 저는 충분히 시간을 두고 이 상황을 정리하고 싶었는데요.. 저희 부모님이 빨리 정리를 하라고 하셔서요..."
"저는 정말 괜찮아요... 대훈씨.. 다 제 잘못인걸요.."
수영은 대훈의 손을 잡아 주었다. 그렇게 함께 변호사를 만났다. 변호사는 수영이 대훈에게 성전환 수술을 말해주지 않은 것 자체는 사실이고, 이는 사기로 볼 수 있어서, 혼인신고 자체를 취소할 수는 있는데, 이는 반드시 법원의 판결이 있어야 한다고 하여, 법원에 혼인의 취소를 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제1장 법정
방청석에서부터 수영과 대훈은, 대훈의 변호사와 함께 나란히 앉아 있었다. 판사가 호명하자, 대훈과 수영은 함께 손을 잡고 걸어 나와 원고와 피고석에 나누어서 앉았다. 피고석에 앉은 수영에게 판사가 물었다.
"피고, 성전환수술을 한 사실을 원고에게 알려주지 않은 것이 사실인가요?"
"네 그렇습니다."
수영은 짧은 대답을 마치고 고개를 숙였다.
판사는 원고석에 있는 대훈에게 물었다.
"원고, 정말 몰랐던 것이 맞나요?"
"네 정말 몰랐습니다."
대훈도 고개를 숙인 채 조용히 대답했다.
법정에는 잠시 정적이 흘렀다.
판사가 무언가를 확인하려는 듯 원고에게 다시 물었다.
"수술사실을 정말 몰랐던 게 맞아요?"
"네"
판사는 무언가를 더 묻고 싶은 표정으로 당사자들을 번갈아 보았으나, 끝내 아무 것도 더 묻지 않고 메모지를 덮었다.
"당사자들 사이에 별다른 다툼이 없어서요. 변론을 마치겠습니다. 검토할 내용이 많아 4주 후에 판결을 선고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변론기일은 끝났다. 함께 방청석으로 걸어가는 둘의 모습은 마치 결혼식 후 버진로드를 향해 걸어가는 부부같았다.
제2장 준비서면
선고기일을 기다리면서 수영은 대훈 생각에 너무 혼란스러웠다. 대훈이 알 것이라고 너무 쉽게 생각했고, 그로 인해 대훈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준 것 같아 너무 미안했다. 혼인은 취소되는 게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는 한편 수영은 수술 전부터 수술 이후 현재까지 자신이 겪고 있는 여러 부당한 대우들이 떠올랐다. 수영은 그 런 일들을 떠올리면서, 자기와 같은 입장에 있게 될 수많은 성전환 여성들을 대변하여 뭔가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할 말은 많았지만, 다른 부분은 이 사건과 무관하여, 결혼 부분에 대하여만, 판사님께 제출할 준비서면을 작성하기 시작했다.
"존경하는 판사님께,
저는 태어날 때부터 스스로 여성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성년이 된 후, 스스로 인식하고 있는 성정체성과 외부의 성별이 일치하지 아니하여 이를 일치하는 수술, 이른바 '성확정 수술'을 받았습니다. 이는 마치 선천적인 이유로 오른팔(성정체성)과 왼팔(신체적 성별)의 길이가 달라 수술로 양팔의 길이를 일치시키는 것과 같습니다.
그 수술 후 저의 성체성과 의학적•신체적 성별, 그리고 법적인 성별도 모두 완전한 여성입니다. 다만 저는 선천적이유로 자궁이 없을 뿐입니다. 그렇다면 저는 자궁이 없어 원고가 원하는 임신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고지하지 않은 경우에 불과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판사님, 자궁이 없어 임신이 불가능한 여성은 저 같은 경우 외에도 많습니다. 자궁기형과 자궁암 등으로 자궁을 적출한 경우는 주위에서 쉽게 볼 수 있고, 불행하게도 어렸을 때 심각한 성폭력 피해를 당해 자궁을 적출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맹장을 적출하는 수술과 같이 사소한 수술을 받았다는 과거의 수술기록을 고지할 의무가 없다는 점은 명백합니다. 그런데 여성이 이러한 이유로 자궁을 적출하는 수술을 받은 경우에 이를 모두 고지해야 하나요? 어렸을 때 당한 심각한 성폭력 피해를 입은 여성에게 성폭력 피해를 당했다는 고통을, 자궁암으로 죽을 만큼의 고비를 넘긴 여성에게 그로 인한 아픔을 공개하도록 하는 게 옳은 일일까요?
자궁을 적출하는 수술과 고환을 적출하는 수술은 또 다른가요? 신체의 어느 일부를 적출한다는 점에서 자궁을 적출하는 것이나 남성의 외부성기 또는 맹장을 적출하는 것이 본질적으로 다른 것인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왜 어느 수술기록은 고지하지 않아도 되고, 어느 수술은 고지를 해야하는 것일까요?
저는 자궁이 없다는 선천적인 이유로 임신이 불가능한 여성입니다. 여러 이유로 자궁이 없는 수많은 여성들이 '나는 임신이 불가능한 여성'이라는 사실을 만나는 남성들에게 모두 고지해야 하는 한다고 보는 것은 모든 여성을 출산의 도구로 한정하는 것이자, 트랜스젠더를 '완전한 여성이 아닌 존재'로 규정하는 것이어서 명백한 차별이고, 이는 여성, 더 나아가 인간에 대한 존엄성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할 것입니다.
나아가 대법원도 임신이 불가능하였으나 혼인 전에 이를 미처 알지 못한 채 혼인한 사례에서 불임을 혼인을 계속할 수 없는 '악질'로 볼 수 없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판사님, 부디 이 사건을 성확정 수술을 받은 사실을 고지하지 아니한 사건으로만 보지 마시고, 자궁이 없다는 사실을 미처 고지하지 못한 사건으로 보아 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이 사건이 저에게 유리하게 판단되기를 바라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언젠가 저와 같은 처지에 있을 누군가를 위해, 이 사건이 기록으로 남기를 바랍니다. 판사님의 현명한 판단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피고 수영"
제3장 고뇌
판사의 머릿속에서는 법정에서 보았던 수영과 대훈의 모습이 떠나지 않았다. 그들은 방청석에 나란히 앉아 있다가 함께 걸어 나와 원고석과 피고석에 앉았었다. 그리고 재판이 끝나자 함께 손을 잡고 마치 버진로드를 함께 걷는 것처럼 퇴장을 했다. 이혼 법정은 서로를 향해 악다구니를 쏟아내며 물어뜯으려는 전쟁터였다. 그러나 그들은 전쟁터에 날아든 다정한 한쌍의 비둘기 같았다. 판사는 그 부부를 왜 갈라놓아야 하는지에 알기 어려웠다.
판사는 그런 고민을 하면서 수영의 준비서면을 다시 읽었다. '성폭력 피해로 자궁을 적출한 여성도 그 사실을 고지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만약 수영이 성폭력 피해자였다면? 판사는 고지 의무가 없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 사건과 이 사건이 무엇이 다른가?
고민 끝에 판사가 내린 결론은, 이 사건의 핵심은 수영의 주장처럼 '임신 가능 여부'가 아니라 '배우자의 알 권리'라는 것이었다. 대훈은 수영을 '출생 시 여성'으로 알고 혼인신고를 했다. 수영의 과거는 단순히 의료 기록을 넘어서는, 배우자의 정체성 자체에 관한 정보였다.
판사는 이 판단이 수영을 포함한 트랜스젠더에 상처를 줄 것을 알았다. 하지만 배우자의 자기결정권도 보호되어야 한다고 판단했다. 법리적으로 성전환수술은, 모든 사람에게 알려야 할 필요는 없지만, 적어도 결혼을 앞둔 배우자에게만은 알려 상대방으로 하여금 판단하게 하여야 하는 사정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제4장 판결
판사는 잠시 눈을 감고 간절히 기도했다.
‘나의 부족한 이 판결이나마, 그들 모두에게 평안이 깃들 수 있게 하소서.’
그는 천천히 판결문을 읽기 시작했다.
"주문
원고와 피고가 11. 20.에 서구청장에게 신고하여 한 혼인을 취소한다."
수영과 대훈의 혼인은 정리되었다. 수영도 판결결과를 담담히 수용했다. 그들의 혼인은 서류상으로는 끝났지만, 서로가 함께 보냈던 시간은 그 어떤 판결로도 지워지지 않는다는 것을 둘 다 알고 있었다.
며칠 후, 그들은 미뤄두었던 신혼여행을 ‘졸혼여행’이라는 이름으로 떠났다. 서로에게 마지막 예의를 다하고 싶다는,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마음이 두 사람을 공항으로 이끌었다.
비행기는 끝없이 펼쳐진 구름 위를 부드럽게 미끄러지듯 넘어가고 있었다. 수영이 창밖을 보며 조용히 물었다.
"대훈씨는... 후회해요?"
대훈은 잠시 침묵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후회는 아니에요. 그냥... 아쉬워요."
"저도요."
두 사람은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다만 나란히 앉아 서로의 손을 잡은 채 구름 너머로 펼쳐진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 하늘 어딘가에, 그들이 함께 살 수 있는 세상이 있을까. 아직은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비행기는 계속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