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이 변호인과 인간판사를 대체할 수 있을까?

by 흠흠

제1부 변호인은 인간이어야 함


경찰관인 상태는 얼마전부터 휴머노이드 로봇 A와 짝을 이뤄 현장에 출동하고 있다. 112신고를 접수한 범죄신고 접수시스템이 범행장소 인근에 있는 경찰관과 로봇에게 출동지시를 내리고, 경찰차에 범행장소를 특정하여 지시하면, 경찰차가 스스로 운전하여 경찰관과 로봇을 범행장소로 데려다 주고 있었다.


그날도 술에 취한 인간 하나가 어느 주점 앞에서 행인을 향해 칼을 들고 행패를 부리고 있다는 신고가 들어왔고, 상태는 A가 운전석에 앉아 있는 경찰차를 타고 현장에 출동했다. 예전엔 이런 신고가 들어오면, 방검 조끼를 입고, 전기충격기에 삼단봉, 그리고 수갑까지 챙겨서 출동을 해야 했지만, A가 투입된 후에는 그냥 근무복만 입고 출동을 하고 있다.


상태와 A가 현장에 도착하자, 성한은 A와 그 옆에 있던 상태를 향해 칼을 휘둘렀다. A는 성한의 팔을 때려 칼을 떨어뜨린 후, 능숙하게 성한을 체포했다. 그리고 꼭 해야할 말이 스피커를 통해 재생되었다.


“당신은 인간경찰관에게 칼을 휘둘러 경찰관의 공무집행을 방해하였으므로, 특수공무집행방해죄의 현행범으로 체포합니다. 당신은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고,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A는 로봇이라 공무‘원’이 될 수 없어, 성한이 A를 향해 칼을 휘둘러도, 칼이 A에 닿지 않았던 이상 형법상 아무런 죄가 되지 않았다.


그렇게 성한은 경찰서 유치장에 수감되었다. 로봇으로부터 가격을 당한 팔이 점점 부어오르고 아파오고 있었다. 성한은 유치장에서 변호사를 불러달라고 소리를 질렀다. 그 소리를 들은 A가 유치장으로 내려갔다.


“당신은 로봇인 B로부터 법률적 도움을 받을 수 있고, 인간인 국선변호인의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누구의 도움을 받으시겠습니까?”


성한은 자기의 팔을 내려친 A와 같은 로봇에게, 체포과정에서 다른 로봇으로부터 과도한 폭행을 당했다는 말을 할 수 없어, A에게 인간인 국선변호인을 선임해달라고 했다.


몇 시간 후, 경찰은 성한을 특수공무집행방해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고, 국선변호인으로 선임된 인간 변호사가 원격으로 접견을 신청했다. 화면 속에는 단정한 드레스 정장을 입은 인간인 여성이 앉아 있었다. 성한이 소매를 걷으며 팔을 보여주었다.


변호사는 성한의 팔을 바라보았다. 조금 더 올려보라는 말을 하면서 눈꼬리를 내리며 같이 아파하는 표정을 지었다.


"성한씨, 많이 아프시죠. 일단 제가 치료부터 받게 해드릴게요. 그리고 요즘 경찰업무를 보조하기 위해 투입되는 로봇들이 과도하게 피의자들을 체포한다는 민원이 많습니다. 저와 같은 변호사들이 로봇의 힘을 줄이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습니다."


성한의 표정은 변호사의 말만으로도 조금 누그러지면서 평온해졌다. 변호사는 성한의 눈을 보면서 성한을 계속 달래주었다.


"그리고 성한씨, 영장이 청구된 부분 말인데요. 피해경찰관분이 인간이시잖아요. 제가 인간 대 인간으로 사정이야기를 좀 해서, 처벌 불원서를 좀 받아보겠습니다. 술에 취해 우발적으로 범한 범행이고, 또 피해 공무원과 합의만 되면, 판사님도 인간이니까 영장을 기각해 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일단 치료부터 받으시고, 내일 법정에서 뵙겠습니다."


성한은 술김에 행패를 부리기 전까지는, AI에게 물어보면 모든 것을 알려주는 시대에 인간 변호사가 왜 필요할까 싶었는데, 변호사로부터 위로를 받고서야, 변호사가 왜 인간이어야 하는지 알 것 같았다.



제2부 판사도 인간이어야 함


변호사는 경찰관으로부터 받은 합의서를 전자적으로 법원에 제출했다. 구속영장 청구서와 합의서가 접수되었다는 알람을 들은 김 판사는 먼저, 재판지원 AI 프로그램인 로-서치(law-search)에게 기록을 요약해 달라고 했다. 예전 같으면 자기가 1시간은 넘게 직접 기록을 읽고, 유사한 사례에서의 양형을 찾아봤어야 했을텐데, 로서치는 1분도 안 되는 시간에 기록을 읽고 유사사건까지 검색한 후, 사건을 요약해 주었다.


로서치는 ‘피의자는 음주 상태에서 폭력적 행동을 반복한 전력이 있으며(2회), 재범 간격은 평균 11개월로 단축되는 추세에 있는 점, 이번 사건에서는 흉기(칼)를 사용하여 위험도가 상승한 점, 제복을 착용한 경찰관을 대상으로 한 점에서 공권력에 대한 위해 가능성이 높게 평가되는 점, 종전 재판에서도 반성하고 있음을 근거로 선처를 받았음에도 재범한 점에 비추어 반성을 감경요소로 고려할 수는 없는 점’을 근거로 들면서 화면 하단에 다음과 같은 분석 결과를 표시했다.


[구속 필요성 평가]

• 재범 위험도: 높음 (0.78)

• 도주 가능성: 보통 (0.42)

• 증거 인멸 가능성: 낮음 (0.21)

• 진지한 반성: 없음(0.00)

• 종합 권고 지수: 0.81

• 권고 결론: 구속영장 발부가 바람직함.


요즘은 영장심문도 온라인으로 열리고 있었다. 영장심문시간으로 예정된 10시가 되자, 성한은 유치소에 마련된 온라인 재판실에 설치된 카메라 앞에 앉았다. 김판사와 변호사도 각자의 사무실에 설치된 카메라 앞에 앉았다.


성한은 술에 취해 잠시 이성을 잃었다고 했다. 로봇 A로부터 맞은 팔도 보여주면서 너무 아프다고도 했다. 그러나 김판사와 같이 성한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로서치의 권고 지수는 변하지 않았다.


변호인이 의견진술을 시작했다.

"술에 취해 행패를 부렸던 적이 있는 인간이 한 명 있습니다. 판사님이나 로서치는 그런 성향이 있는 피의자가 술을 마시면 안 된다고 생각하실 수 있으시겠지만, 피의자는 이전에 술을 마시고 행패를 부려 형사처벌을 받은 이후에도 가벼운 음주는 지속적으로 해왔고, 지금까지 아무런 문제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제 밤에는 식당 주인과의 말다툼이 계기가 되어 처음으로 주방에 있던 칼을 들고 거리로 나오게 되었을 뿐입니다.

이 사건 범행으로 인한 물적, 인적 피해가 없습니다. 피해경찰관은 울면서 반성을 하고 있는 피의자의 모습을 보면서 합의서도 작성하여 주었습니다. 그리고 피의자의 주위 사람들도 모두 피의자의 선처를 호소하고 있습니다."


변호인은 탄원서를 참고자료로 전자소송시스템에 탑재한 후, 변론을 이어갔다.

"판사님, 피의자는 처음으로 유치장에 수감되어, 형사처벌의 엄중함도 몸소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피의자는 현재 외부 병원에서 치료를 받아야 하는 상태입니다.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을 수 있도록 하여주시기 바랍니다."


변호인의 변론이 끝나자, 김판사는 성한을 향해 마지막으로 할 말이 없냐고 물었다. 성한은 눈물을 흘리며 “정말 잘못했습니다. 판사님”이라면서 말을 끝내지 못했다. 김판사는 심문을 마치겠다고 하면서, 온라인 법정에서 빠져 나왔다.


피의자가 팔의 부종과 통증을 호소하며 고통을 표현했을 때에도, 성한이 눈물을 흘렸을 때에도, 로서치의 수치는 변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김판사는 로서치에게 다시 ‘동일하거나 유사한 지수에도 불구하고, 구속되지 않은 사례를 제시해 주렴’이라고 지시했다. 실형이 선고된 사례에 비하면, 드물긴 했지만 집행유예로 석방된 사례도 없지 않았다.


김판사는 영장청구를 기각했고, 성한은 석방되었다.



제3부 에필로그


김판사는 영장 청구를 기각한 후, 어릴 때 보았던 ‘터미네이터’라는 영화를 떠올렸다. 기계에 의한 지배. 판사가 스스로 판단하지 아니하고, 로서치에게 그 판단을 유보한 채 그 의견에 종속된다면, 그것은 어쩌면 인간이 기계에 의해 지배당하는 것일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 것이다.


인간이 인간이 아닌 휴머노이드 로봇에게 선처를 호소하고, 인간이 개입되지 아니한 채 휴머노이드 로봇이 인간의 신체를 구속할 권한을 가지는 것도 수긍할 수 없다는 생각도 들었다.


로서치가 우려했던 대로 성한의 눈물은 거짓일 수 있었다. 그리고 성한은 석방된 이후, 또다시 술에 취해 행패를 부리다, 이제는 사람까지 해치게 될 가능성은 분명 존재했다. 김판사도 그 가능성을 모르지 않았다. 다만 가능성이 곧 결론이 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인간은 반복해서 잘못을 저지를 수 있는 존재이지만, 동시에 단 한 번의 계기로 스스로를 멈추기도 하는 존재였다. 김판사는 그 가능성까지 함께 판단하고 공감하는 일은 AI시대에도 여전히 인간의 몫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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