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방 사기

by 흠흠

제1부 사위의 취업사기


남수는 생산직이었지만 지역에서 꽤 유명한 회사를 다니고 있었다. 주위 사람들은 남수를 부러워하며, 어떻게 하면 그 회사에 들어갈 수 있는지를 묻곤 했다. 남수는 결혼정보회사를 통해 지윤과 결혼했다.


지윤의 부모는 제법 재산이 있었고, 큰 근심거리도 없었다. 다만 지윤의 동생인 지훈이 대학을 졸업한 후에도 취직을 못하고 있는 것이 걱정거리라면 걱정거리였다.


지훈은 부모에게 카페나 식당이라도 차려달라고 떼를 쓰고 있었지만, 지윤의 부모는 회사 생활을 먼저 해보면서 경험을 쌓은 후에 자영업을 하더라도 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 지훈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고 있었다.


지윤과 남수가 결혼식을 마치고 몇 달이 지났다. 지윤의 장모가 지윤과 지윤의 부친 몰래 남수의 회사를 찾아가, 회사 앞 카페에서 남수를 만났다.


"이서방, 내가 자네에게 은밀히 부탁할 게 있어서 찾아왔네."

"네, 장모님... 근데 무슨 일로..."

"자네 처남인 지훈이가 집에서 놀고 있잖은가... 에미된 입장에서 보고 있기가 딱해서..."

"네. 그러니까요. 지윤이도 걱정이 많더라구요"

"그래서 말인데, 자네가 다니는 회사에 우리 지훈이를 취직시켜주면 안 되겠는가?”


남수는 장모의 말을 듣고 적잖이 당황했다. 하지만 회사 내에서 특별채용은 가끔씩 있었고, 조만간 특별채용절차가 진행될 예정이기도 했다. 남수는 장모 앞에서만큼은 회사에서의 자기 위치를 과장하고 싶었다. 적어도 이 집안에서는 ‘잘 나가는 사위’로 남고 싶었다.


"네, 장모님. 그렇지 않아도 조만간 회사에서 특별채용절차가 진행될 거예요. 그때 제가 힘좀 써보겠습니다. 하하하"

남수는 일부러 호탕하게 웃어 보았다.


장모는 핸드백에서 500만 원이 든 봉투를 꺼내 탁자에 올려놓았다.

"이서방 꼭 좀 부탁하네. 이 돈으로 자네 상사들하고 밥도 좀 먹으면서, 힘 좀 써주게. 응? 나는 자네만 믿겠네. 그리고 이건 자네 장인 모르게 준비한 거니까 그렇게 알고 있고.. "


장모가 먼저 카페를 빠져나갔다. 남수는 봉투를 주머니에 넣었다. 카페를 빠져 나오면서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남수는 생산직인데다가 노조활동도 하지 않고 있어서 딱히 누구에게 청탁을 할 수도 없는 처지였다.


그래서 남수는 그저 회사 게시판에 게시된 안내문을 지윤을 통해 지훈과 장모에게 보내주었다.


그리고 남수는 사실, 지윤 몰래 주식을 하고 있었는데 손실을 많이 본 상태였고, 그로 인하여 주위 사람들로부터 빚을 많이 지고 있었다. 남수는 장모로부터 받은 돈으로 그날 바로 주식을 샀다. 남수가 돈을 받은 사실은 장모 외에는 아무도 모른다는 사실이 남수를 과감하게 행동하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남수는 며칠만에 그 돈을 전부 날려버렸다.


지훈은 특별채용절차에 낙방했다. 남수는 장모에게 거짓말을 했다.

"장모님, 거의 다 됐는데 마지막에 줄이 꼬여버렸네요. 돈이 조금 부족했나 봅니다. 거 참 아쉽네요"


장모는 그 말을 믿었는지, 며칠 후에 남수를 또 찾아가 봉투를 내밀었다. 이번엔 1,000만 원이 들어있었다. 그런데 그 당시에는 특별채용절차도 특별히 예정된 것이 없었다. 그럼에도 남수는 노력해 보겠다는 거짓말을 하면서, 그 돈을 받아 또 금방 탕진해 버렸다.


남수가 그런 방법으로 장모로부터 받은 돈이 5,000만 원에 이르자, 장모는 어쩔 수 없이 그 사실을 가족 모두에게 알렸고, 지윤은 남수를 상대로 이혼을 청구했다. 그날 이후, 남수는 더 이상 누구에게도 ‘잘 나가는 사위’로 불리지 않았다.



제2부 장인의 차용금 사기


제1장 프롤로그


가정법원의 1단독을 맡고있던 김부장과 2단독을 맡고있던 박부장이 오랜만에 점심을 같이 하면서 사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박부장이 먼저 남수 사건 이야기를 꺼냈다.

"김부장, 오늘 아침에 진행한 사건 중에 사위가 장모를 상대로 사기를 친 사건이 있었다네. 내가 가정에서 이혼 사건도 여럿 봤고, 형사사건도 많이 처리해 봤지만, 사위가 장모를 사기친 사건은 처음 봤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참..."


"자네는 그런 사건이 있었구만... 나는 오늘 오후에 장인이 사위를 상대로 사기를 친 사건이 있는데... 세상이 참..."


김부장도 창밖을 바라보며 엷은 미소를 지었다.



제2장 장인의 사기


유나의 아버지는 아주 오래전부터 조그마한 공장을 운영하고 있었다. 그런데 요즘 부쩍 회사 사정이 어려워지고 있었다.


유나는 은행을 다니는 정훈과 사귀고 있었는데, 정훈의 부모가 부유했다.


유나와 정훈이 결혼식을 마치고 한달 무렵 지났을 때, 유나의 아버지가 정훈에게 전화를 했다.

"최서방, 잘 지내고 있지? 이번에 회사 사정이 좀 어려워서 그러는데, 자네 은행에서 대출을 받을 수 있도록 해줬으면 좋겠는데, 가능한 지 좀 알아봐 주겠나?"


정훈은 백방으로 알아봤으나, 장인이 이미 대출을 너무 많이 받은 상태여서 추가대출은 어려운 상황이었다. 정훈이 유나의 아버지에게 대출이 어렵겠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러자, 유나의 아버지는 정훈에게 읍소를 했다.

"최서방, 너무 미안하네. 그러면 자네가 개인적으로 돈을 좀 빌려주면 안되겠는가? 한 5,000만 원 정도면 고맙겠네. 유나의 얼굴을 봐서라도 꼭 갚아줌세. 염치 없지만 꼭 좀 부탁하네"


정훈은 유나때문에, 장인의 부탁을 거절할 수 없었다. 유나의 아버지는 다음 달 초순에 5,000만 원을 갚아 주었다.


그런데 유나의 아버지는 그 다음달에도, 또 그 다음달에도 정훈에게 돈을 빌려달라고 했다.


정훈은 난감한 표정을 지으면서, 옆 자리에 있는 김대리에게 대출을 좀 받아야겠다는 이야기를 했다. 정훈의 배경을 알고 있던 김대리는 적잖이 놀라며, 근심어린 표정을 지었다.


김대리는 금방 표정을 바꾸면서, 유쾌하게, "왜 비상금이라도 떨어지셨어? 왜 갑자기 대출을 받겠다고 난리야?" 라면서 너스레를 떨었다.


정훈은 김대리를 보면서 착잡한 표정을 지으며, 대출서류에 서명을 했다.

"내 일은 아니고, 장인 어른 사업이 좀 어렵다고 하시네..."

정훈은 그 돈을 돌려받지 못했다.


그럼에도 정훈의 장인은 몇 달 후에 다시 정훈에게 돈을 빌려달라고 했다. 정훈의 입장에서는 장인의 회사가 문을 닫으면, 이미 빌려준 돈까지 못받게 될 처지였다. 이미 빌려준 돈을 받기 위해서라도 돈을 추가로 빌려줄 수 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다시 은행에서 대출을 받을 수도 없었다.


정훈은 자기 아버지를 찾아가 부탁을 드렸다. 정훈의 아버지도 사돈의 일이어서 거절을 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정훈은 유나의 장인에게 몇차례에 걸쳐 돈을 빌려주게 되었고, 돌려 받지 못한 금액의 합계액이 6억 원에 달하게 되었다.


정훈은 유나의 아버지에게 읍소를 했다.

"아버님, 제가 아버님께 빌려드린 돈에는 제 돈도 있지만, 제가 은행으로부터 빌린 돈도 있구요, 제 아버지로부터 빌린 돈도 있습니다. 이번 달 안에 꼭 좀 갚아주세요."


유나의 아버지는 회사의 사정이 어려워서 미안하다고만 할 뿐이었다. 정훈은 어쩔 수 없이 그 사실을 유나에게 털어 놓았고, 유나를 상대로 이혼을 청구했다.


정훈은 돈보다도, 장인이 끝내 가족에게까지 사위로부터 돈을 빌린 사실을 숨기려 했다는 점이 더 견디기 어려웠다.


유나와 유나의 어머니는 정훈이 이혼소송을 제기했다는 걸 알게 되자 재산들을 처분하고 다른 사람들로부터 돈을 빌려 정훈에게 6억 원을 갚아 주었으나, 정훈의 마음을 돌이킬 수는 없었다.



제3부 에필로그


식사를 마친 박부장과 김부장은 법원으로 향하는 산책로를 천천히 걸었다. 겨울바람이 제법 매서웠지만, 두 사람의 마음은 방금 나눈 기묘한 두 사건의 잔상으로 더 서늘했다.


두 사람의 발걸음은 법원 청사 앞에 멈춰 섰다. 시간은 어느 덧 오후 재판이 시작되는 두 시를 향해 가고 있었다.


김부장이 입을 열었다.

"자, 박부장. 우리도 이제 들어가서 각자의 사건들을 정리하십시다."


김부장의 말에 박부장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두 판사는 서로 다른 법정으로 향하는 복도 갈림길에서 헤어졌다.


한 사람은 사위가 장모를 속인 법정으로, 한 사람은 장인이 사위를 속인 법정으로. 가장 가까워야 할 사람들이 가장 멀어진 채 기다리고 있는 그곳으로, 두 판사는 무거운 법복을 입고 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