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영원회귀 Jan 12. 2024

나야 나.

이렇다 한들, 저렇다 한들

내가 누구인지 조바심 내며 찾지 않아도 나는 자연스럽게 나다.




올해는 다양한 cha를 접해보는 것을 목표로 시음차를 가득 주문한다. 바구니에 담긴 소포장의 시음차 종류만 봐도 마음이 풍요로워지고 행복하다. 이미 모든 차를 다 마시고 차에 대한 안목이 한 층 높아진 것 같은 소유욕으로 만족감이 채워져서인지 평소 마시던 cha만 마시고 있다.


큰맘 먹고 시음차 하나를 손에 들고 티테이블에 앉는다. 주문한 사이트에 들어가 마실 cha에 대한 정보를 꼼꼼하게 읽어도 보고, 티노트에 새로운 정보를 기입하면서 오늘의 cha를 마시기 위한 최선의 준비를 해본다. 포트에 물을 올리고 기본 세팅을 한 후 자리에 앉는다. '이 cha는 이런 우림방법으로 이런 향미에 중점을 두고 마셔야겠군' 만발의 준비를 하고 첫 잔을 마시기 시작한다.


우림횟수를 더해가며 cha에서 느껴야 하는 모든 것을 찾기 위해 최선을 다해 본다. 하지만 혼자서 cha에 대해서 알기란 쉽지 않다. 영상을 보면서 알게 된 것도 실제로 마시며 공유한 것이 아니기에 막연하다. cha를 진심으로 좋아하는 친구를 만나고 싶다는 바람이 생긴다. 지인들과의 찻자리는 늘 음차로만 존재하기에 아쉽다.


cha 스승을 만나게 된다면 더 없는 복일텐데 하며 찻자리를 정리한다. 채워지지 않는 마음에 이래저래 검색을 하다 30분 거리의 다원에서 하는 '다회'에 대한 정보를 발견하고 예약을 한다. 다우를 만나기 위해서든 cha스승님을 만나기 위해서든 '열심히 기회를 만들고 노력해 봐야겠다.' 하며 올해 목표를 새롭게 정해 본다.




오늘따라 이유 없이 평화로운 아침을 맞이한다. 눈을 떴는데 기분이 좋다. '어떡해. 어떡해. 이렇게 좋은데 어떡하지.' 침대에서 뒹굴뒹굴 거리며 일어나 거실로 나오니 눈부신 햇살에 포근한 따뜻함이 가득하다. 새로운 시음차를 고른다. 이름도 예쁜 '수선'을 다하에 담고 전기포트에 물을 올리고 다구를 준비해서 자리에 앉는다.


더없이 여유롭게 손이 움직이는 대로, 마음이 가는 대로 cha를 우리고 마신다. '수선'은 이런 향미가 나고 이런저런 방법으로 마셔야 한다는 따위의 구속은 애당초 마음에 없다. 첫 우림 cha를 마시며 '음, 수선이구나!', 두 번째 우림 cha를 마시며 '음, 수선이구나!' 한다. 우림 횟수에 따라 초단위로 시간을 늘려가야 한다는 기본룰도 애당초 마음에 없는 순간이기에 여유롭게 손의 움직임에 맞춰 개완 속 찻물을 공도배에 담는다. 그리고 또 '음, 수선이구나!' 한다. 어느 때보다 멋진 시간이다.


이 cha는 이래야 하는 cha라고 단정 지어 놓고, 마시는 내내 cha를 찾아 헤맨다. 진짜 찾은 것인지 찾았다고 스스로 세뇌시키는 것인지 모르지만 cha에 대해 조금은 알게 되었다며 안심한다. 같은 종류의 cha라고 해도 생산연도에 따라 환경과 등급에 따라 cha를 마시는 그날의 날씨와 장소, 다구에 따라 심지어 cha를 비워내는 그날의 순간의 마음에 따라 다르게 또는 다르게 느껴지는 것이 cha인데, 나는 무엇을 찾아 확인하고 싶은 걸까!


상대방이 나에 대해 잘 알고 맞춰주고 배려해 주면 좋다. 가끔은 '너 이거 좋아하지? 넌 이래서 참 좋아'라는 긍정의 평가를 받아도 좋다. 하지만 상대방의 머릿속에 존재하는 내가 실제 나인지는 모를 일이다. 상대방이 확인해주지 않아도 나는 나이고, 내가 누구인지 매번 스스로 조바심 내며 찾지 않아도 나는 나인데.


마지막 '수선'이 담긴 찻잔을 비워내며 '음, 수선이구나!' 한다.   



 

음, 하루사리구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