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스러움의 기준
낙엽 밟는 즐거움을 외면한 깨끗한 길을 걷는다.
뜨거운 여름을 보내며 열일한 나뭇잎들은 이제야 제 할 일 끝내고 홀가분하게 가벼이 인연을 끊어내고 떨어진다. 가벼이 가벼이 내려앉은 바닥에서 쉬어갈 틈도 없이 포대에 담긴다. 예쁜 낙엽 하나 주워 책 사이에 꽂아두고 어느 날 펼쳐 든 책에서 낙엽을 발견하는 낭만은 오래전 라떼라지만 낙엽 밟히는 소리에 쓸쓸함을 담아 한 해를 보내는 마음의 준비를 할 기회조차 없어지는 것 같아 허전하다. 낙엽을 밟을 수 있는 곳을 찾아갈 수는 있으나 나의 삶이 머무는 일상의 장소에서 편안하게 느껴보고 싶은 욕심이다. 욕심을 뒤로한 채 깨끗한 길을 포대에 담겨있거나 한 곳에 모아져 있는 낙엽들을 바라보기만 하며 걷는다.
낙엽을 바로 치우지 않으면 밟혀서 가루가 되고, 이렇게 저렇게 하수구로 쓸려간 낙엽들은 다음 해 하수구 기능을 하지 못하게 막아 폭우에 빗물이 하수구를 역류하는 등의 피해를 준다는 뉴스를 본 기억이 난다. 낭만 하나 부여잡자고 낙엽을 방치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낙엽이 떨어지는 것조차 인간이 사는 곳에서는 자연스러울 수 없는 자연의 섭리라는 생각에 뭔가 자연스럽지 못하다.
드라마를 본다. 어릴 때 자신을 두고 떠난 어머니를 만나러 가는 아들의 눈에 잘 정돈된 마당에 낙엽만 치워지지 않은 채 떨어진 그대로 흩어져 있는 것을 보며 집 안으로 들어간다. '낙엽이 떨어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라 그대로 두고 싶었다.'는 어머니의 말에 '실내에는 먼지 하나 없이 깨끗하게 청소가 되어 있네요.'라고 대답하는 아들의 말에 내가 주춤한다.
예쁜 낙엽이 자연스럽게 부스러지거나 분해되어 흙이 되고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조차 부자연스러움이 된 것 같아 안타까워하면서 매일 눈에 먼지만 보이면 부직포밀대로 밀고, 설거지 후 싱크대를 닦은 행주로 보이지 않지만 손에는 느껴지는 먼지들을 이곳 저곳 수시로 닦아내는 나를 들여다본다. 다행히 아직 치워지지 않은 낙엽이 있는 공원을 걷다가 벤치에 앉을 때면 손으로 먼지가 있는지 확인하고 닦아내거나 휴대용 방석을 깔고 자연을 느끼던 내가 들여봐 진다. 엉덩이 툭툭 털어내면 될 일인데.
자연스럽다는 것의 의미와 기준이 무엇인지, 나는 내 삶을 자연스럽게 살아내고 있는 것인지, 조금 전 설거지 후 습관처럼 닦아 반들반들해진 아일랜드식탁을 보며 적당히 먼지가 내려앉는 것을 자연스럽게 바라봐줄 수 있는 마음의 너그러움이 있는지 들여다본다. 자신이 없다. 여전히.
먼지 같은 인생이라면서 눈앞의 먼지만 용납하지 못하는 특정 결벽증을 앓고 있는 하루사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