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영원회귀 Jun 18. 2021

밤 멍

타인을 본다는 것

작은 서재에 스탠드 불빛만 아련히 남긴다. 창 밖 세상 풍경이 이보다 더 고요하고 평온할 수는 없다.




한낮의 밝음 속에서 세상은 지나치게 잘 보인다. 너와 나의 스쳐가는 표정과 미세한 움직임까지 보여 가끔은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본 것 같아서 보이지 말아야 할 것을 보인 것 같아서 민망함에 애써 시선을 피하고 싶은 느낌이 들 때도 있다.


한낮의 어둠 속에서 세상은 지나치게 선명하다. 화창한 날씨 덕에 감춰졌던 나의 우울함이 애써 웃으며 한껏 밝음을 끌어올렸던 가련한 내 노력까지 겹쳐져서 더없이 선명하게 보인다. 너도 나도 알아차린 진심 앞에서 서로가 안쓰러워 모른척하는 것 같다.


한 밤의 밝음은 내 세상을 온전히 보여준다. 여기저기 켜놓은 환한 불빛 속에 내 공간만 존재한다. 나의 공간은 오롯이 내가 되어 나의 흔적들을 한 겹 한 겹 펼쳐준다. 자그만 나의 집을 천천히 구석구석 둘러보며 나의 시선이 머무는 곳마다 나의 생각과 삶이 드러난다. 창 밖에서 누군가가 나를 지켜보고 있다고 해도 난 알아차리지 못할 것이다. 어둠은 나 외의 모든 세상을 지워버린 듯하다.


한 밤의 한 줄기 빛은 나와 세상의 연결고리가 된다. 집안 모든 불빛을 끄고 서재에 작은 스탠드 하나만 켠 채 밤 멍에 들어간다. 밝은 불빛 속에서는 보이지 않았던 까만 밤 풍경은 땅에 내려앉은 별빛처럼 고요하게 빛난다. 빛공해로 보이지 않는 밤하늘의 별 대신 빛공해로 만들어진 땅에 내려앉은 수많은 별들이 아름답게 빛난다. 창을 사이에 두고 서재의 모습이 창밖 풍경과 묘하게 겹쳐진다. 어디가 안이고 밖인지 모르겠다. 내가 서재 풍경에 초점을 맞추면 밤 풍경은 배경이 되고, 밤 풍경에 초점을 맞추면 서재의 풍경이 배경이 되는 재미있는 밤 멍이다.


사람과 사람이 관계를 맺고 함께 한다는 것은 이런 게 아닐까? 묘하게 겹쳐지는 창을 사이에 두고 때로는 너에게 초점을 맞춰 내가 배경이 되어 주고, 때로는 나에게 초점을 맞춰 네가 배경이 되어주는 그런 시간을 함께 한다는 것. 한낮의 밝음과 어둠 속에서 누구에게나 보이는 무엇이 아니라 한 밤의 빛을 따라 함께 있어주는 것. 


사색의 시간이 끝나고 스탠드를 끄고 서재를 나오며 무심결에 창가 쪽을 뒤돌아본다. 완전히 어둠이 내려앉은 내 공간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더없이 선명하게 보이는 창밖 풍경을 보며 멍해졌다. 사람과 사람이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한 밤의 빛을 따라 공평하게 서로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었구나!


너의 빛은 완전히 나를 내려놓아야 보이는 거였구나!




까만 밤  하루살이가 여전히 혼자인 이유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