웬만한 계산은 의식하지 않아도 암산으로 답이 나왔다. 휴대폰을 꺼내어 계산기 두드리는 모습을 보면 굳이 저렇게까지 정 없이 해야 하나 싶었다. 대충 해도 될 텐데 뭘 저렇게 정확하게 사나 싶었다. 그때의 나는 마음도 물질도 의식의 흐름대로 쏟아부었다. 그런데도 항상 준 것보다 많이 채워지는 알 수 없는 풍족함에 사실 암산도 계산기도 필요치 않았다.
간단한 계산도 자신이 없다. 암산해서 내놓은 답은 어처구니없이 틀리기까지 하는 내 머릿속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휴대폰을 꺼낸다. 계산기를 두드리는 내가 민망하지만 틀리는 것보다 나으니 아무렇지 않은 척한다. 애써 신경 쓰고 챙겨 줬는데 그 마음을 몰라준다. 준 만큼 받고 싶어 애처롭게 구걸하는 질척이는 내 모습을 본 날이면 의연한 척 계산기 두드리는 정 없는 나와 마주쳐 초라하다.
받으면 줘야 한다. 조금이라도 덜 주면 빚진 것 같은 찝찝함으로 언제 돌려주나 눈치를 보며 의도와 상관없이 빚쟁이가 되어 바늘방석이다. 깔끔한 정리를 위해 부단히 애써 0점을 맞춰낸다.
구차해질 일도 불편해질 일도 없는 인간관계에서는 아름다운 거리가 필수다.주지 않으니 받을 것이 없고, 받지 않으니 줄 것이 없어져 이보다 더 청렴한 생활이 없다. 미꾸라지 한 마리 살 수 없을 정도로 청렴하여 군더더기가 없어진 일상이 아주 깔끔하다 못해 미끄러지겠다.
나에게 무언가를 준다. 상대에게 먼저 주고 싶어 하는 내가 낯설어 어리둥절해하며 방법을 몰라 고민만 하는 나에게 소소한 마음이 느껴지는 무언가를 이따금씩 준다. 암산도 계산기도 놓은 지 오래라 어떻게 계산해야 하나 심각하다. 다른 사람이라면 웃으며 단호박에 거절도 하겠는데 친해지고 싶고 벗이 되고픈 사람이라 답이 없다. 주는 대로 받으며 웃는 내가 참 난감하다.
줌에 준 것이 없어야 한다는 좋은 말에 받음에 받은 것이 없어야 한다는 말을 덧붙이지 않은 것으로 봐서 오류가 단단히 난 나의 셈법은 더 철저하게 계산을 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리고 새삼 다짐까지 한다.
잔나비의 <뜨거운 여름밤은 가고 남은 건 볼품없지만> 노래 가사 한 구절이 내 마음을 잡아끈다. 셈하지 않아도 셈이 정확할 수 있었던 그때는 셈이 필요치 않았다. 셈이 정확해지고 싶어 졌을 땐 셈하는 게 눈치가 보였고 셈을 하고 싶지 않게 된 지금은 어처구니가 없다.
어처구니가 없으니 마음대로 돌리는 수밖에 없다. 틀리면 어떻고 맞으면 어떻나 싶어 그때그때 기분에 따라 문제도 보지 않고 답을 내놓는다. 세상 이보다 더 정확하고 깔끔한 셈법은 없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