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총의 향에 집중하기 위해서는 좁고 긴 형태의 개완에 차를 우려내는 것이 좋다는 이야기를 듣고 80mL의 작은 개완을 주문했다. 색감과 형태가 무척 마음에 들어 최근 집착 중이다. 처음 개완을 사용했을 때는 익숙하지 않아서 그런가 했다. 몇 번 사용해도 매번 손을 데어서 유심히 개완을 관찰한 결과 평소 사용하던 개완보다 날부분이 얇고 날카롭다는 것을 발견한다. 또한 나의 서툼도 한몫을 한다.
2~3번 우릴 때까지는 괜찮은데, 횟수를 더해 차를 우려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뜨거워진 개완의 날은 공도배에 따르기 시작하면서 엄지와 중지가 따가워진다. 누가 보는 것도 아닌데 그냥 내려놓으면 되는 것을 끝까지 버티며 한 방울까지 따라내고 나서야 아무 일 없다는 듯 천천히 내려둔다. 혼자 있을 때 유독 드러나는 몹쓸 고집에 자존심이다. 그렇게 3~4회에 끝나야 하는 우림을 5~6회까지 반복하며 우려내는 시간은 점점 길어지고 그만큼 나의 손가락은 혹사를 당한다.
공도배에 담긴 마지막 우림의 차를 잔에 담아 마신다. 찻색을 하고 있을 뿐 맹탕인 차인 듯 차 아닌 차를 비운다. 공도배에 담긴 차를 모두 마셔낸 후 빈 잔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집착이다.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미련 이상의 집착이다. 단순히 버리지 못해 채워져 있는 책꽂이의 책이나 옷장의 옷들과는 다르다. 서재에 책이 가득하다고 해서 옷장에 옷이 숨쉴틈 없이 빼곡하다고 해서 그것들이 나를 다치게 하지는 않으니.
아닌 걸 알면서도 스스로를 다치게 하면서까지 미련을 떨며 삼켜내고 있는 게 뭐가 있을까 생각해 본다. 딱히 떠오르지 않는다. 차갑게 식어 더 이상은 손가락에 위협이 되지 않는 개완을 본다. 물의 양을 줄이고 물의 온도만 낮춰도 좀 괜찮을 거란 걸 알면서도 매번 뜨거운 열수가 가득 담겨지는 개완이다. 몸소 미련의 극치를 실천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틀림없이 있을 텐데 왜 떠오르지 않는 것인가.
진정 인식하지 못한 채 날카로운 날에 스스로 베이길 자처하고 있는 것인지, 알아차렸다 인식하면 감당이 되지 않을 것 같아 완벽하게 모르는 척해주고 있는 것인지 모를 일이다. 때로는 소화되지 못하는 것을 삼켜내야 하는 것도 있지 않을까 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