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부터 기울어져 있었던 것도 천천히 기울어진 것도 아닌 나의 부주의로 기울어진 것이다. 우연히 TV
위에 놓을 수 있는 선반을 발견하고 아이디어상품이라며 좋다고 구매를 했다. 선반 2개를 TV 위에 설치해서 초록이를 둘 계획이다. 선반 하나는 무리 없이 바로 고정이 되는데, 이상하게 나머지 하나는 균형 있게 고정이 되지 않는다. 힘이 필요한 작업이 아님을 알면서도 조바심에 힘으로 균형을 잡으려고 누르다 '툭'. 주변을 살펴봐도 어디서 난 소리인지 모르겠기에 넘어가기로 한다. 2개의 선반이 잘 고정되고 그 위에 초록이까지 올려두니 아주 만족스럽다. 그렇게 흐뭇한 감상을 하는데 뭔가 이상하다. TV 가 왼쪽으로 살짝 갸우뚱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한참을 고민한다. 벽걸이에 연결된 어느 나사가 아래로 밀린 것이라 추측해 본다. 바르게 하려니 뭔가 귀찮다. 어차피 화면을 볼 때 고개를 갸우뚱해서도 보고, 가끔은 비스듬히 누워서도 보는데 TV화면 자체가 좀 기울어졌다고 무슨 문제인가 싶어 그냥 두기로 했던 것이 몇 달째 이 상태인 거다. 평소 고개를 왼쪽으로 갸우뚱하는 습관이 있는 나에게 왼쪽으로 기울어진 화면은 궁합이 더 맞을지도 모르니.
주말 아침 초록이들 물을 주기 위해 TV선반 위의 초록이들을 옮기는데 기울어진 화면각도가 새삼 더 의식이 된다. 반듯한 화면을 기울어진 시선으로 볼 때는 전혀 의식되지 않던 화면이었는데, 반듯하지 않은 화면을 반듯한 시선으로 볼 때는 뭐가 이렇게 불편하게 의식되는 걸까! 엄연히 따지면 전자가 더 왜곡된 각도일 텐데.
반듯한 것을 반듯한 시선으로 보면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하겠지만, 반듯한 것을 왜곡된 시선으로 보는 나를 바꾸는 것과 반듯한 시선으로 왜곡된 것을 바꾸는 것 중 어느 것이 쉬울까?
아주 오래된 습관을 바꿀 수 있을까? 의지만 있다면 그냥 고개를 바르게 세우기만 하면 되는 거니 가장 쉽다. 잠시 순간은. 하지만 이 의지가 내가 되어 무의식 속에 스며들기까지 얼마만큼의 노력이 필요할까? 그럼 선반 위 초록이들을 내리고 선반도 내리고 벽에서 화면을 앞으로 당기고 정리해 놓은 전선들과 연결된 이런저런 것들을 다시 풀고, 화면 뒤쪽 기울어진 원인을 해결한 후 다시 화면을 벽에 밀고 전선들과 연결된 이런저런 것들을정리하고, 선반 균형을 잡아 다시 고정시키고 초록이들을 올려두는 것이 더 쉬운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