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아침답게 적당한 느긋함으로 미적거리며 일어나 환기를 위해 창문을 여는데 진한 금목서향이 순간 쏟아져 들어왔다 사라진다. 정신이 몽환적이다.
지난주 내내 한낮에 운동하러 아파트단지를 걸을 때면, 온 세상 전체가 금목서향으로 부드러운 꿈결이었다. 길을 가다 스치듯 다가온 향에 두리번거리며 금목서를 찾아보곤 했었는데 그렇게 온몸을 감싸는 풍성한 향기는 처음이었다. 이 계절에 그 시간에 열일하며 직장에 있어야 할 몸이 한가로이 아파트단지를 유유자적 걷는 몸이 되고 나니 호사다 했는데, 주말 아침 예상치 못하게 불어닥친 금목서향에는 멈칫한다. 창문이 열리기만을 오매불망 기다린 것처럼 겨를도 없이 밀려들어왔다 순간 사라져 버렸다. 괜스레 설레게.
청소도 하고, 초록이들의 목마름도 해결하고 나니 나의 목마름을 채울 시간이다. 이런저런 행다를 배우고 있는 요즘 격식에 꽂혀 차를 마실 때면 다관 예열부터 시간, 온도까지 체크하며 마셨는데, 주말은 주말의 마음이 따로 있는 건지 관성처럼 티팟에 가볍게 차를 우려 서재 창가 고정석에 앉는다. 오랜만이다.
감미롭고 편안한 재즈음악에 살짝살짝 코끝을 다시 스치기 시작하는 금목서향을 맡으니 '이 향을 맡을 때마다 떠오르겠지?'혼잣말하던 드라마 주인공이 떠오른다. 고등학생 이후 처음으로 영화 포스터를 설레게 손에 쥐고 와서 떡하니 냉장고에 몇 달째 붙여두고 있는 최애캐릭터의 드라마 대사다.
매년 금목서향을 맡으면 나는 이 주인공의 대사가 떠오르려나? 이렇게 멋진 10월의 어느 날에 꿈결 같은 향을 맡으며 기분 좋은 얼굴을 떠올리는 것도 좋지만 왠지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