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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원회귀 Jun 18. 2023

명중

주사위는 던져졌다.

충전이 끝난 휴대폰을 집어 들다가 놓쳤다.




떨어지는 휴대폰을 아무렇지 않게 물끄러미 쳐다본다. 자유낙하에 소질이 특별한 휴대폰의 모서리 2곳은 이미 빠지직한 지 오래다. '또 떨어지네' 멍하니 휴대폰을 보는데, 비명 소리도 안 나온다. 슬로우 모션처럼 휴대폰 모서리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하게 왼발 네 번째 발가락 정중앙에 꽂히는 걸 보면서도 피하지 않는다. 오른쪽 발을 왼쪽 발가락 위로 올려 꾹 눌러줘도 통증이 사라지지 않는다. 정말 충격적이게 아프다. 통증에 비해 발가락 상태는 괜찮다. '곧 괜찮아지겠지' 생각하며 주섬주섬 가방을 챙긴다.


4월부터 주 2회 10주 과정으로 tea 클래스에 다니고 있다. 마음만이 다가 아님을 깨닫고 거의 8년을 사랑한 대상에 대해 이제야 알기 위한 노력이 하고 싶어졌다. 수업 내용을 외우지는 못해도 익숙해지는 데는 도움이 될 것 같아서 노트정리를 하기 위해 틈이 나면 도서관을 가고 있다. 발가락 통증이 있어 살짝 고민이 되긴 하지만 일단 출발이다. 도서관에서 3시간쯤 머물다 짐을 챙겨 나오는데, 움직이지 않을 땐 잊고 있던 통증이 심해진다. 결국 절뚝거리며 밖을 나오는데 뜬금없이 찾아오는 부끄러움은 뿌리가 어디인지 애매하다.


집으로 돌아와 발가락을 보는데, 화가 난다. '항상 슬리퍼를 신고 있는데, 왜 하필 맨발일 때 떨어진 건지, 어떻게 딱 발가락 중앙에 명중한 건지' 어이없어하던 생각이 '한창 운동에 재미를 붙이고 있는데 못하겠구나, 다음 주 미술관과 카페에도 못 가겠구나, 반깁스를 하게 되면 점점 더워지는 날씨에 엄청 성가시겠구나'처럼 아직 일어나지 않은 상황에 대한 불만까지 더해진다. 그러다 '그래도 왼발이라 다행이지' 하며 딴짓을 한다.


다음날 아침, 눈을 뜨자마자 발가락부터 확인한다. 통증으로 움직일 수 없던 발가락이 아프지만 움직여진다. 오후가 되니 통증도 많이 줄어들고 붓기도 조금 빠진듯하다. 이대로라면 월요일 병원을 안 가봐도 될 것 같다.


손가락과 휴대폰이 공범이다. 엄연히 따지면 부주의한 손가락 탓이 가장 크련만 아무런 피해도 입지 않은 손가락은 모르쇠인데, 가장 큰 피해를 은 왼발 네 번째 발가락에게 '피했어야지!' 괜한 화풀이만 했구나 싶은 미안한 마음에 심심한 사과를 전하며, 다시 정독 중인 니체 책을 펼친다.




니체의 철학을 눈으로만 읽은 하루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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