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일, 금토요일에 풍랑주의보로 배가 뜨지 않는다는 소식을 듣고 내일 체크아웃하기로 정한다.
목요일, 제주에서 금요일까지 하루 더 묵을 숙소를 찾다가 비행기예약변경을 선택하고 탑승한다.
금요일, 지인들과 얘기 중 이번 겨울에는 꼭 눈을 보러 어딘가로 갈거라 다시 한 번 다짐한다.
그리고 토요일, 내 삶의 보금자리에서 첫눈이 함박눈으로 내리는 풍경을 보고 있다.
'눈'예보를 알리는 안전문자가 왔다. 그것도 새벽 3시에 온단다. 눈! 눈! 눈! 해서였을까! 보일 듯 말 듯 흩날리는 눈에도 '눈'이라고 뛰쳐나가는 이곳에서 '11월에 눈이 온다고?' 하며 웃어넘겼을 문자를 보고 알람을 맞춘다. 2시 55분. 침대에 누워 다시 일기예보를 확인하니 5시로 눈 예보가늦춰져 있다. 4시 55분으로 알람을 재설정한다. 벌써 새벽 2시인데.
알람소리에 1초의 미적거림도 없이 일어나 창문을 연다. 함박눈이 강한 바람에 45도쯤 누워서 온 세상에 내려앉고 있다. 설렘에 급분주해진다. 늘 그렇듯 언제 눈이 왔냐는 듯 신기루 같은 이곳의 눈을 놓치고 싶지 않다. 포트에 물을 올리고, 난방기를 서재로 옮겨 전원을 켜고, 담요도 챙긴다. 창문을 반쯤 열고 지정석에 앉아 담요를 덮고 따뜻한 차 한 모금 넘기며 바라보는 세상은 행복함이 한도초과다.'네가 그렇게 원한다면 기회를 줄 테니 마음껏 행복해봐' 하는 것 같은 눈의 기대에 부응하듯 맘껏 취한다.
따뜻한 몸과 눈바람에 차가운 공기의 절묘한 비율은 내가 좋아하는 겨울 분위기다. 기적 같은 행복의 순간은 예상보다 긴 듯 짧다. 5시 20분이 되니 눈이 내리지 않는다. 창문을 좀 더 열고 마음에 겨울을 담는 사이 창가에 앉은 눈의 포근함이 반쯤 내려앉았다. 아파트 화단 가장자리부터 흔적이 지워지고 있다.인도는 벌써 촉촉이 비로 바뀌고 있다. 해도 뜨기 전인데 성격 급한 경상도 눈답다. 그래서 더 눈의 신비주의 전략은 항상 옳다.
간절히 원하면 이뤄진다는 것에는 반드시 기회가 주어져야하고, 그 기회를 알아차리고 내 것으로 만드는 준비된 의지가 있어야내 것이 되는 거구나. 새삼 기적 같은 첫눈을 볼 수 있게 해 준 나의 의지에 기특함을 느끼며 한껏 으쓱여본다.
다시 일어난 주말의 아침은 햇살 눈부신 완벽히 화창한 날이다. 역시 신비주의 전략은 흔적을 남기지 않는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