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를 위함인가.
몇 년 동안 잘 자라던 수경 식물이 앙상해져가고 있다.
뜬금없이 여기저기 걸려있는 수경 식물들의 뿌리가 눈에 거슬린다. 사용하지 않는 투명 플라스틱 텀블러와 유리잔을 활용해 수경 재배로 키우는 식물들이다 보니 뿌리가 투명하게 잘 보인다.
물이 텁텁해 보이거나 초록이끼가 끼면 물을 갈아주고 용기를 세척하는 정도로 가끔 관리를 해 왔다. 그동안 너무 무심했던 것 같아 반성 하며 미안한 마음에 의욕이 생긴다.
수경 식물을 하나씩 싱크대로 가져온다. 용기를 깨끗하게 닦고 물을 채운다. 식물의 뿌리에 낀 이끼도 야무지게 제거하고 오래된 뿌리들도 시원하게 떼어낸 후 맑은 물, 깨끗한 용기에 담아 원위치시킨다. 세상 환해진 수경 식물들의 터전이 무척 청결해 보이고 뿌듯하다.
일주일쯤 지났을 때 5년 가까이 늘 푸르름을 유지하던 수경 재배 중인 뱅갈고무나무 잎이 하나둘씩 누렇게 변하기 시작한다. 이게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 해마다 잎 1~2장 떨어트리는 경우는 있었어도 올 해처럼 한꺼번에 잎 3~4장씩 색이 변하면서 떨어진 적은 없었다. 그렇게 떨어지던 잎은 남은 잎들도 갈색의 얼룩반점이 생기면서 싱그럽던 푸르름을 잃었다.
너무 오랫동안 함께 한 초록이이기에 모든 잎이 누렇거나 검은 반점으로 채워져 곧 떨어질 잎들을 간신히 매달고 있는 모습에 가슴이 먹먹하다. 어떡하나? 따뜻한 봄이 되면 새잎이 다시 돋아나지 않으려나 미련 가득히 바라볼 뿐이다.
잘 자라고 있었다. 한 겨울에도 주인의 무관심에도 아랑곳없이 자기 갈 길 잘 가던 초록이었다. 단지 주인의 눈에 거슬린다는 이유로 깨끗한 환경에서 더 잘 자랄 것이라는 죄책감 섞인 제삼자의 관점으로 부지런을 떨었을 뿐인데 초록이의 모든 세상이 무너졌다. 오랜 세월 나름의 방식으로 적응하며 완성된 환경에서 안정기를 찾아 잘 자라고 있었을 뿐인데 뜬금없는 주인의 오만한 친절에 생의 끝에 내몰렸다.
누군가의 선의가 누군가에게는 최악일 수도.
누군가의 친절이 누군가에게는 간섭일 수도.
그래서 묻고 동의가 필요한 것인데, 말 못 하는 식물이라고 무시한 오만함의 결과다. 말 못 하는 식물이면 더 세심했어야 하는 것인데.
이번만큼은 반성이 아닌 후회가 어울리는 하루사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