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가 중하냐, 숲이 중하냐!
올해 막콘은 무조건 봐야겠다며 수원에 왔다. 기필코.
오전 9시 30분 출발하는 열차를 타기 위해 20분 남짓 거리의 역에 1시간 일찍 도착한다. 협소한 주차장이라 주차가 어렵다는 글을 보고 서두른 결과다. 역시 간신히 주차자리를 확보하고 내심 출발이 좋다며 흐뭇하게 열차에 오른다. 오늘의 순리는 딱 여기까지!
4시 공연을 위해 1시에 수원역에 도착한다. 역에서 공연장까지 택시로 20분 남짓이면 도착할 수 있다는 맵정보를 보며 2시간 정도는 딴짓을 할 여유가 있으니 살짝 샛길로 새도 될 것 같다. 한 번쯤 가고 싶었던 티룸이 공연장 가는 길의 어디쯤에 위치해 있다는 것을 보며 '한파에 딱이다' 싶어 택시를 타러 이동한다. 굳이 하지 않았으면 좋았을!
'나는 길치다'라는 대명제를 설렘이 하얀 눈길에 파묻어 버린 것이 틀림없다.
길치답게 두리번두리번 택시를 찾아 헤매다가 인파에 쫓겨 어찌어찌 백화점으로 넘어가 돌고 돌고 돌아 입구로 나오는데 30분이 걸렸다. 택시승강장도 모르겠고, 뭔가 꼬이는 느낌에 세한 것이 자연스럽지 않다. 이럴 땐 U턴, 수원역으로 돌아가야겠다.
변수다. 무슨 일인지 다시 왔던 길을 되돌아가려는데 백화점 안이 시끌시끌 북적북적 이상하다. 사람에 치이며 기억을 더듬어 돌고 돌고 돌아 2층으로 이동하는데 난리다. 뭔 줄이 돌고 돌아 대기선의 끝이 보이지 않는 인파로 여기가 어딘지. 마이크 잡은 사람이 뭐라 뭐라 하는데 안 들린다. 이미 부여잡을 영혼이 나가고 없다.
진심 울컥한다. 이 나이에 미아가 된 것 같은 두려움과 어찌할지 모를 난감함이 몰려오는데도 발은 계속 전진한다. 길 잃은 아이들이 무한 직진하는 이유를 알겠다. 아니, 이유가 없다. 그렇게 어찌어찌 수원역으로 넘어가는 통로를 발견하지 않았다면 다 큰 어른이 울면서 길을 찾는 가관이 펼쳐졌을 거다.
아! 또 당연히 역에서 지하철을 바로 탈 수 있을 거라 생각하며 두리번두리번 어찌어찌 지하철 입구를 찾아서 들어갔는데 이상하다. 공연장 안내문에는 신분당선을 타야 한다고 했는데, 수인분당선이란 글자가 보인다. 신분당선은 뭐고, 수인분당선을 뭔지 모르겠다. 느낌적인 느낌으로 이게 아닌 것 같아서 편의점 직원에게 물어보니 맞단다. 근데 아무래도 이상하다. 머릿속이 백지장 같은 상태로 우두커니 서서 울기 직전으로 검색을 해서 노선을 찾아보니 공연장까지 시간이 엄청 걸린다. 아닌 거다!
다시 u턴이다. 택시를 타야겠다. 출구는 어떻게 찾는단 말인가! 한숨을 쉬며 그렇게 무작정 탈출하듯이 한 방향으로 직진 해서 무사히 건물 밖으로 나온다. 역시 앱택시가 답이다. 결국 바로 공연장으로 오게 된다. 수원역에 도착해서 공연장까지 90분이 걸렸을 뿐.
그냥 바로 공연장까지 택시를 탔으면 되었을 것을 티룸에 가는 것을 포기했다고 뜬금없이 지하철은 왜 타야 한다고 생각한 것인가! 평소 택시를 앱으로 호출해서 타고 다니면서 처음부터 택시승강장은 왜 찾았을까?
공연이 시작되기 전까지 정신을 부여잡고 마음도 다잡고 공연장 안으로 들어선다. 나름 취케팅에 성공했으나 이 전 공연좌석에 비해서는 조금 뒤쪽이다. 그래도 전체 무대가 한눈에 들어오는 중앙 쪽이라 만족스럽다.
주황 응원봉에 불이 들어온다. 시작이다. 그렇게 2시간 30분의 공연을 온전히 즐기는데 생소하다. 세 번째 공연인데 모든 무대 배경이 생경하다. 심지어 중간중간 배경에 노래가사가 나온다는 것도 처음 발견한다. 이전 두 번의 공연은 정말 아티만 보느라 그 외 모든 것이 생략처리 되었나 보다. 아무리 그래도 모든 것이 처음 보는 것 같을 수가 있단 말인가! 공연을 즐길 때도 지금, 여기, 나만 존재하는 듯했다. 진정!
몇 년 전, 직장 후배와 뷰 좋은 카페를 갔었다. 연신 뷰가 너무 예쁘다며 감탄하는 나와는 달리 후배는 창가를 못 보겠단다. 창가 테이블은 만석이었고 뷰를 보려고 하면 창가에 앉아 있는 사람들과 눈이 마주치는데 너무 불편하다는 거다. 그런데 난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다. 심지어 창가 손님과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 내 시야에는 사람이 잡히지 않았으니 말이다. 그때는 그렇게 넘어갔는데 그냥 넘길 일이 아니었던 건가.
보고자 하는 것만 본다는 것. 단순히 세상 편하게 사는 편의성을 넘어 매사 내가 인식하지 못하는 모든 상황에서도 적용이 되었겠지. 일할 때는 숲이 보여야 움직여지는 사람인데, 정작 내 삶에서는 나무만을 보며 길을 가고, 그 길 위에서 매 순간 많은 것을 놓치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내가 길치인 이유도 이것과 연관되어 있는 건 아닐까? 낯선 길, 뭘 보며 가야 할지 모르는 그래서 점이 되는 상태.
어두운 밤, 집으로 가는 열차 안에서 내 모습만 선명히 보이는 창밖을 보며 생각이 많아진다. 자다가 환승 못할 걱정은 안 해도 되겠다.
문득 점이 되어 길을 잃은 하루사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