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 없는 공급일지라도
골리앗과 다윗의 이야기는 가능한가?
갓 스물이던 그 시절 지나치게 순진하기만 했던 라떼의 내가 떠오르는 날이다.
분노하며 종이와 펜을 들고 낯선 도심을 돌아다녔다. 대학생이라는 신분은 그 시절 어른들에게 관대함을 불러왔고 세상이 뒤짚힐 것 같은 사태에 대해 열변을 토하는 맑눈광의 여학생이 내미는 서명지에 따뜻하게 서명을 해주는 이들도, 앉혀놓고 장황한 설교를 늘어놓은 후 마지못해 서명을 해주는 이들도, 서늘한 눈빛으로 끝끝내 외면하는 이들도 있었다.
젊다는 패기는 상대의 반응에 아랑곳없이 더 돌진하며 부딪히게 했다. 집회에 참석해 하루 종일 목이 터져라 외치기도, 율동하며 노래를 하기도 하며 나의 날갯짓이 아니 우리의 날갯짓이 상황을 바꿀 거라 확신했다.
세상은 당연히 변하지 않음을 4년 졸업반쯤 되니 알게 되었다. 그럼에도 정신 못 차린 해맑은 정신은 사회초년생이 되었을 때도 진심이 상황을 바꿀 수 있다는 미련을 한동안 움켜쥐고 있었다.
세월과 함께 자연스럽게 학습된 무기력증은 세상 모든 일은 순리대로 사는 거라는 합리화의 편의성으로 안정을 찾았고, 현실 속에서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며 기꺼이 만족스러운 삶을 살고 있다. 이렇게 평화로운 삶에 굳이 욕심이 꿈틀꿈틀 잠자코 있던 열정을 끄집어내고 싶어진다.
그 어떤 타이밍에 내가 찾던 가장 이상적인 핵개인이 나타났다. 운명처럼 본진에서 눈부시게 빛나는 청년을 만난 것이다.
두근두근 행복한 늦덕에 빠져있는 요즘, 청년이 속한 소속사의 문제상황이 팬덤에서 이슈가 되어 며칠째 총공 중이다. 분노하는 팬들의 모습을 보며 라테의 경험들이 소환된다. 그러면서 나의 라떼가 여전히 반복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부정을 부정한다. 비록 가냘픈 나비의 날갯짓이더라도 어느 순간 태풍을 일으켜주지 않을까 하는 기적이 보고 싶어진다.
공지를 보며 할 수 있는 것들은 함께 하며 희망을 담아보았으나 당연한 듯 기대한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뭇 누군가에게 학습된 무기력의 시작 또는 반복이 아닌 삶의 경험치로 쌓이길 바라며 미미한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쓸데없는 오지랖에 생각이 많다. 생각만 많다.
이 또한 라떼의 착각 속 수요 없는 공급 같기도.
여전히 정신 못 차린 볼품없어진 하루사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