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자체가 비매너가 되는 순간
우린 멋진 '나'이는 없고 '나이'만 있는건가?
특정축제 가이드라인을 본다. 팬카를 통해 가이드라인에 대한 안내를 받을 때마다 자연스럽게 수긍한다. 주최측을 위한 행사니 일반인에게 열려진 행사공지가 있어도 눈치껏 멀찍이 감상만 하는게 당연하다고 받아들인다. 그래서 이른 시간부터 자리를 선점하거나 공연 중에 아티를 응원하는 모습을 온&오프에서 보고 팬카 게시글을 통해 자제를 요구하는 의견에 동의한다. 했다.
늘 있었던 소란들이지만 이번 축제를 다녀와서 의문이 든다. 그동안의 축제와는 다른 주최측의 chill한 분위기에 처음으로 1열에서 오른쪽에 중학생팬, 왼쪽에 대학생 팬과 함께 신나게 공연을 즐겼다. 중고등학생 팬도 대학생 팬도 자연스럽게 동화되어 불편함 없이 아티스트의 무대를 즐기고 응원도 하는데 왜 '직장충'이라 분류되는 대다수의 아티팬들만 눈에 띄어 끼어들기 새치기도 아닌 앞자리에서 응원하며 무대를 봤다는 이유로 비매너로 분류되어야 할까?
몇 달 전 내돈내산으로 새벽같이 달려간 페벌에서 이른 아침부터 대기줄을 기다리며 설레게 시간을 보내는데 앞줄 학생 2명이 더 앞의 40대 팬들을 보며 '직장충'이란 표현을 쓰며 대화하는 걸 듣고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이 표현도 충격이었지만 젊음 속에 엄습하는 위축감에 한동안 스스로 마음을 다스리고 공연장으로 들어서야했다. 머리를 흔들며 당당하게 말이다. 나이가 부끄러울 일은 아니라며.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는 왜 이 가이드라인을 당연하게 인정했던가? 그렇다. 당연함의 기준이 나의 나이였고 사회의 기준이 요구하는 책무성에 기반한 당연함이었음을 깨달으며 흠칫한다. 그냥 팬인데, 나이에 끼워맞춰진 사회생활 하려고 덕질하는 거 아니고 모든 현생의 존재를 내려놓고 덕생의 공간에서 그냥 '나'로 존재하고자 할 뿐인데, 이 공간에서 조차도 사회적 역할과 책무를 요구받아야 하는 것인가.
이번 축제와 관련된 SNS에 올라온 영상들을 보며 젊음 속에서 자연스럽게 눈에 띄는 연령대의 팬들, 영상 속 얼굴들에게 쏟아지는 불편한 시선이 담긴 게시글을 다시 읽으며 충분히 납득되고 동의되는 팬심의 글인데 순간 서글프다.
어쩔 수 없는 것인가. 아티는 분명 '우린 멋진 '나'이야' 라며 곡을 소개할 때가 많은데, 결국 나에게 이 가사의 의미는 '우린 멋진 '나이'야' 였던가 싶다. 그래서 멋진 나이가 지나버려 아련한 만화가 되어 방구석 1열만 가능해진 '나이'.
과한 소수의 특정 팬들이 있다. 하지만 그들은 그들의 세상에 살기에 기준이 되는 팬덤의 영역에서는 비난할 뿐 웬지 제외의 영역처럼 보인다.
매번 지각하는 사람들 기다리며 훈화 듣던 학생이 처음 지각했는데 싸잡아 야단 듣는 것 같은, 가끔 지각하는 학생이 매번 지각하는 것처럼 일벌백계가 되어 야단 듣는 것 같은 기분. 시간을 되돌릴 수 없는 이상 나의 덕질은 이방인 모드여야 하는 것인가하며 확대해석까지 번진다.
지난 주말, 아이돌 덕질과 트롯 덕질을 비교하는 전문가 인터뷰를 보면서 유사연애감정에서 시작하는 아이돌 덕질과 돌봄의 감정에서 시작하는 트롯 덕질 중 내가 속한 팬덤은 어디에 속할까 생각했었다.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중간쯤의 어디인 포지션. 아티도 그외 영역의 어디쯤인 듯 한데 그 팬의 덕질도 그 어디쯤이다. 딱 반투명 이방인 모드.
이방인이 되고 싶지 않아 질척대는 슬픈 하루사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