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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순하도다!

줌엔 준 것이 있더라.

by 하루사리

무해한 무진존에 얼룩이 생기고 있다.




마음의 에너지가 넘쳐 흐름으로 인해 줌에 준 것이 없는 삶이 진정한 충일함이요 삶의 목표라 생각한다. 이성적인 생각으로는 그렇다.


지금 이 순간, 이 공간, 그리고 나 자신에게 부족함이 없다. 굳이 행복이라는 정의로 묻는다면 그렇다. 그런데, 분명 행복한데 행복하지 않은 것 같고, 충일한데 충일하지 않은 것 같은 모순 가득한 이 상태를 어떻게 정의 내려야 하는 걸까?


관계의 부재가 원인일까?

온전히 마음을 나누며 충일함을 쏟아 줄 대상이 없어서일까? 혹시?


줌에 준 것이 없는 충일함을 몸소 실천하기에 덕질만 한 것이 없다. 주고 주고 주어도 주고 싶고, 감히 받을 생각조차 하지 않는 마음이기에 이보다 더 완벽한 충일한 사랑은 없다.


그런데, 예상치 못했던 욕심이란 녀석이 불쑥 고개를 들이민다.


스쳐가는 눈빛 속에 내 모습이 잠시라도 담겼으면 좋겠고, 한 곳을 바라보는 시선 속에 머무는 곳이 나였으면 좋겠다. 조금이라도 가까운 곳에서 보고 싶고 그런 나를 알아봐 줬으면 좋겠다.


세상 무해한 무진존에 얼룩이 생기기 시작한 거다. 최근 몇 이슈들을 접하면서 '나는 정도를 잘 지켜서 건강하게 덕질해야지'하며 마음을 굳게 먹어도 공연장만 가면 순간순간 이성의 끈이 뚝 뚝 끊어진다.


아티의 공연 후 퇴길을 위해 총총 뛰고 있는 나를, 나란히 줄 맞춰 서서 아티의 차가 지나가면 오매불망 한 번 봐주지 않을까 간절히 바라는 강아지 같은 나를, 내 앞에 멈춰 서면 말 한마디 못하고 웃고만 있으면서 그래도 나라는 존재를 인식해 주길 바라는 다른 나를 본다.


갈구함이란 없는 존재인 줄 알았는데, 단지 그런 대상이 없었을 뿐 나도 인정욕구가 있었다. 부족한 것이 없다는 것이 완전히 채워졌다는 것도 충일하다는 것도 아닌 거다. 말 그대로 부족함을 느끼지 못했을 뿐. 부족하다는 인식이 필요한 상황에 노출되지 않았을 뿐.


무한 반복되며 문득 깨닫는 삶의 권태기의 원인이 뭘까 늘 궁금했는데, 태생부터 있었던 공허함의 존재를 미처 알지 못했던 것에서 기인한 게 아닐까? 받고 싶고 채우고 싶은 공허함이 영원히 채워질 수 없게 닿을 수 없는 별 같은 존재를 통해 깨닫게 되었으니 난감하다.


평생 가득 차 흘러넘치는 충일함을 온전히 느끼기엔 글렀다. 어쩔 도리가 없다.




삶의 목표가 충일함인 난간함 하루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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