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함의 부작용
당연한 걸 당연하게 받아들이니 불안해졌다.
불가능의 영역임을 알면서도 현실이 될 거라 굳게 믿으며 고민을 하고, 계획도 짜고, 중간중간 수정도 해대며 인생 설계를 한다.
연금 복권 1등과 2등에 당첨이 되면 일을 그만둘 거다. 20년 넘게 같은 직장에서 지나치게 성실하고 책임감 있게 다녔으면 그만둬도 되지 않겠는가! 명퇴를 할지, 사직서를 낼지 고민한다. 시기에 맞춰 명퇴 신청을 하고 바로 받아들여진다고 하면 몇 달 더 다니며 지금 하고 있는 일을 깔끔하게 마무리하고 명퇴금까지 알뜰히 챙겨서 그만둘 것이고, 명퇴 신청을 해도 받아들여지기까지 기간이 많이 필요하다고 하면 일주일 뒤에 바로 사직서를 내기로 한다. 일주일이면 인수인계할 시간으로 충분하지 싶다.
한 우물을 10년 정도 파면 길이 보인다는 말을 새기며 글을 쓰기 시작한 지 5년쯤 되어가는 시점에서 욕심이 스멀스멀 올라오면서 이번 출판프로젝트에 당선이 될 거라 기대한다. 당선이라는 결과는 새로운 영역에서 재능이 발견된 뿌듯함과 나만의 길이 틀리지 않았음이 인정받았다는 자부심에 혼자 더 당당한 현생을 살게 되지 싶다. 지극히 내면의 이야기이기에 가족이나 주변 지인들에게 내 글이 읽히기를 바라지는 않지만, 은근슬쩍 제안을 받고 출판하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알게 되면 그때 말해주겠다며 책제목을 공개하지 않을 계획이다. 당연히 작가명도 실명이 아닌 필명으로 출판을 해야겠다.
12월 아티의 콘서트 티켓이 배송을 시작했다. 그럼에도 대기예약 걸어둔 앞 구르기 좌석이 취소되어 나에게 연락이 올 거라 생각하며, 이미 받은 티켓을 우편으로 다시 보내는 절차를 확인하고 표를 취소하면 얼마의 수수료를 물어야 하는지 계산한다.
이 세 가지가 모두 12월에 이뤄질 예정이다. 내 계획으로는 말이다.
연금복권에 걸릴 확률은 없다. 다음으로 기대하는 출판프로젝트는 어떤가? 일방적으로 글을 쓰기만 할 뿐 누군가에게 열심히 읽히길 바라는 흔적조차 없는 허전한 서랍에 꽂혀진 글들이다. 엄청난 글들 중 나의 글이 한 줄이라도 읽힐 수 있을지부터 의문이 드는 시점에서 당선이 될 확률은 없음에 가까운 간절함이다.
그럼 마지막 아티의 콘서트 좌석 앞 구르기는 가능한가? 세 가지 기대 중 가장 현실성이 있어 보일 수 있겠으나 똥손의 실력이 유감없이 발휘되어 피케팅에서 겨우 내 자리 있음에 만족하고 예약대기조차 피케팅만큼 어렵게 겨우겨우 걸어둔 1인이다. 3시간 넘게 좌석표를 뚫어지게 보면서 한자리 취소티켓을 발견만 하고 바로 사라지는 허탈함까지 숙연히 받아들였다. 이미 배송까지 완료된 티켓을 누군가가 다시 취소하고 그 취소한 좌석이 내 좌석이 될 확률은 기적에 가까운 절실함이다.
So,
들려올 소식은 없다. 헛된 희망사항이다. 당연히 무소식이 될 거라는 걸 알지만 당연한 듯 소식을 기다린다. 찬 바람과 함께 희망찼던 순간들이 꿈같이 지나가고 당연하게 불가능한 것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지금 이 순간에 불안감이 엄습한다.
내일도, 일주일 뒤도, 한 달 뒤도, 1년 뒤도, 10년 뒤도 지금과 비슷한 루틴의 삶을 살고 있을 거라는 사실에 불안하다. 현재에 만족하고 불만이 없다는 것이 계속되어도 좋다는 의미는 아니다. 아무 일 없는 일상이지만 사건사고의 변수를 가슴에 품고 출근해야 하는 불안감에서 완전히 벗어나고 싶다. 하지만 목구멍이 포도청인 1인 가구이기에 따박따박 월급은 필요하고, 그 월급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연금 복권이 유일한 방법이다, 안일주의에게는.
본업에서 벗어날 수 없다면 현생과 전혀 다른 분야에서 나라는 존재로 숨 쉴 수 있는 새로움이 필요하지 않을까 기대하지만 이 또한 아니 된다면 잠시의 꿈이라도 즐길 수 있게 앞 구르기라도 하고 싶건만 허사다.
아이쿠야!
허망하기 짝이 없는 희망에 기대어 헛다리만 짚고 있는 흐린눈이고픈 하루사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