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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수

버릴 것 하나 없던 시간

by 하루사리

나에게 묻는다. 어떻게 살고 싶냐고.




11월 마지막주의 요가 수련이 끝나고 명상 후 눈을 뜨는데 뭔가 할 말이 남아 있는 듯한 그녀의 표정이 눈에 들어온다. 머뭇거리며 천천히 전해져 오는 말

"그동안 개인적으로 공부를 하고 있었는데 내년 1년 동안은 모든 것을 접고 하고자 하는 길에 몰두하고자 합니다. 그래서 12월까지만 요가원을 운영하고 문을 닫게 되었습니다."

어렵게 꺼낸 말끝에 묻어 나오는 파르르 떨리는 입술을 닫고 눈물을 훔친다. 수련생만큼이나 아니 그 이상으로 아쉬움과 복잡한 심정이 느껴지는 그녀의 얼굴을 보며 새로운 출발을 다짐하는 결심에 진심으로 응원을 보내며 돌아서 나온다.


깜깜한 밤, 터벅터벅 집으로 향하는 걸음에 복잡한 무거움이 내려앉는다. '어떻게 해야 하나, 어떻게 해야 하나' 수십수백 번을 되뇌며 집으로 돌아와 씻지도 않고 소파에 털썩 앉는다.


운명처럼 만난 요가원이다. 상호부터 운명이었고 취향에 완벽하게 딱인 분위기와 그 분위기의 완결체인 그녀와의 인연을 가능하다면 평생이란 시간으로 이어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매주 2회 요가원을 찾았다. 그런데 그 공간이 신기루처럼 사라진다. 그 공간 속에 존재하는 그녀도 사라진다. 요가원은 사라져도 그녀와의 인연은 이어갈 수 있지 않겠는가 싶지만 설명할 수 없는 다채로운 무언가가 연결되어 맺어진 이 공간 속 공기가 없다면 존재할 수 있는 인연이 아니다.


길을 찾고자 검색을 시작한다. 인근을 중심으로 요가원을 찾고 명상센터를 찾고 좀 먼 거리까지 헤매어본다. 없다. 있지만 없다. '어떻게 해야 하나, 어떻게 해야 하나' 일주일째 방법을 찾고 있다.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새롭게 시작하게 된 1월이 다가온다. 올 한 해 삶 중에 가장 큰 의미를 가졌던 사건은 덕질과 요가이다. 요가도 덕질에서 시작되긴 했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독립된 영역의 새로운 일부가 되었다. 덕질 영역에서도 아티를 향한 순애는 더 확고해지고 더 강해지고 있으나 그 외의 부분에서는 '기준을 명확히 하고 관계 정리도 새롭게 해야겠구나'라며 복잡 미묘한 시간을 보내는 중인데, 요가도 리셋이 된다. 모든 것이 다시 설정되어야 한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본질적인 시작점에서부터 출발한다. 새삼 거창하게.


서랍 속에 채워진 추억을 보고
버릴 것 하나 없던 시간에 행복하기만 하죠


최근 아티가 부른 드라마OST <지나왔던 추억이 사랑이 되고>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가사다. 처음 듣는 순간부터 '버릴 것 하나 없던 시간'이란 표현이 가슴에 훅 꽂혔다. 아티의 음색이었기에 가능했던 울림이다. 그런데 이 가사가 내 삶의 순간과 연결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매 순간 나의 삶을 되돌아봤을 때 선택으로 채워진 서랍 속의 모든 순간들이 버릴 것 하나 없던 시간으로 나의 존재를 증명해 주길 바란다. 그리고 그 증명의 점들이 이어져 행복의 선이 되고 '나'라는 면으로 채워져 있길 바란다. 그렇게 살고 싶다. 그래서 현재 오늘 지금 이 순간을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생각한다.

어떻게.

어떻게.




연말 다운 12월의 어느 날을 보내게 된 하루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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