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빼고 다 한 라식&라섹을 난 꿋꿋하게 하지 않고 일회용 렌즈를 착용한다. 겁도 많고 뭐든 하는 걸 싫어해서다. 비 오는 날과 뜨거운 음식 먹을 때의 불편함을 더 이상 견딜 수 없던 어느 날 큰 마음먹고 렌즈를 구입했다. 노안수술을 해야 할 나이가 되어서야 더 이상 왜 수술을 안 하느냐는 질문은 받지 않게 되었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웃프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으나 나이가 들수록 좋은 것도 많다.
렌즈를 착용하는데 왼쪽 눈이 이상하다. 시력 차이가 많이 나는 짝눈이라 시력이 나쁜 오른쪽 눈에 렌즈를 먼저 착용하고 왼쪽 눈에 렌즈를 착용하면 세상이 순간 엄청 밝아진다. 분명 왼쪽에 렌즈를 꼈는데 아무 변화가 없다. 뭔가 뿌연 것이 눈이 맑지 않다. 손으로 오른쪽, 왼쪽을 여러 차례 가리면서 시야를 확인한다. 왼쪽이 확연하게 선명해야 하는데 잘 보이지 않는다. 초점도 이상하다. 새 렌즈를 여러 개 다시 뜯어서 착용한다. 똑같다. 오늘따라 눈이 적응하는데 시간이 걸리는 건가 하며 외출을 한다.
2년에 한 번 하는 건강검진 이건만 매번 연말이 다 되어서야 부랴부랴 병원을 찾았던 터라 이번에는 일찍 받기로 다짐하고 예약을 해뒀다. 병원으로 가는 내내 초점이 맞지 않다. 신호등불빛이 2개로 보인다. 운전을 하면서도 오른쪽, 왼쪽 눈을 번갈아가며 가리기를 반복한다. 확실히 이상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코로나 백신 부작용 시력저하'를 검색한다. 시력저하 부작용이 있다는 글들이 있다. 덜컥 내려앉은 심장이 요동친다. 갑자기 건강검진이 문제가 아니다. 2주 뒤에 백신 2차 접종도 해야 하는데 이것저것 온갖 생각들로 뒤죽박죽이다. 건강검진을 어떻게 받았는지 모르겠다. '몇 달 지켜보고 크기 변화가 있으면 조직검사 해보면 될 것 같네요.'라는 의사의 말도 흘려듣는다. 왼쪽 시력이 안좋다는 말만 들린다.
종합병원 신경외과에 전화를 하니 오후에 바로 외래가 가능하단다. 렌즈를 빼면 운전이 불가능 하기에 안경을 챙기기 위해 집으로 갔다. 안경을 꼈다. 어? 엥? 안경을 벗었다 꼈다, 오른쪽 눈을 가렸다 왼쪽 눈을 가렸다, 가까운 물체를 보고 멀리 있는 물체도 보고 아주 정신없이 초점을 맞춰본다. 아무 이상이 없다. 같은 도수의 안경과 렌즈인데 안경은 괜찮고 렌즈는 다르다. 새 렌즈를 뜯어서 다시 착용해본다. 똑같이 이상하다. 안과를 먼저 갔다가 신경외과를 가야겠다 싶어서 안과 전화예약을 한다.
쭈그려 앉아서 고민한다. 이상하다 이상하다. 한 참을 멍하니 넋을 놓고 있다가 혹시나 하는 마음에 허둥지둥 일회용 렌즈 한 박스를 새롭게 뜯어서 낱개를 다시 착용해본다. 헉! 엥? 멀쩡하다. 세상이 다시 환하게 보인다.마음 속 세상까지 맑아지는찰나의 순간이다. 안경원에 가야겠다.
외출을 한다. 멀쩡한 렌즈를 착용하고 이동하는 내내 여기저기 초점을 맞춰본다. 신호등 불빛도 선명하고 다 잘 보인다.
안경원에 도착해 간단히 설명을 하니 안경사 분도 처음이란다. 업체에 전화를 하고 문제의 렌즈 한 박스를 새것으로 교체해서 돌아왔다.
온갖 공포와 두려움으로 주변 사람에게 연락할 틈도 없이 홀린듯이 보낸 하루가 어이가 없으면서도 어이없어할 수 있는 이 상황에 감사할 뿐이다. 아무도 모르게 지옥을 갔다 일상으로 돌아왔다. 다행이다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