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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원회귀 Jan 08. 2022

건강한 게으름지수 +1

비타민D가 필요해.

병원이 두려운 건 아파서가 아니라 아프다고 할까 봐이다.




지난 연말쯤, 추가 복지비용이 남아있어서 부랴부랴 건강검진으로 혈액정밀검사와 고밀도 검사를 받았다. 위 내시경을 꼭 받아야 하는데 미루고 미루다 연말에 예약을 잡았었다. 하필이면 검사날 주변에서 코로나 검사 결과를 기다린다는 긴급통보를 받고 코로나 검사 대기 상태가 되어 위내시경을 취소하게 됐다. 내시경은 당해연도까지 예약이 불가능해 골밀도 검사로 변경하여 검사를 받은 것이다.


한차례 등기로 배송된 결과를 수령하지 못하고 해를 넘기고 나서야 등기 수령 시간에 맞춰 마주한 결과지 봉투를 무심한 척 던져둔다. 나이의 단짝인 건강은 매년 적응이 되지 않기에 열어볼 용기가 필요하다. 쓸데없이 이것저것 뒤적이며 시간을 보내본다. 그리고 한숨 크게 쉬며 최대한 덤덤한 척 밀봉된 것을 뜯고 결과지를 넘긴다.


늘 혹시나의 숨은 뜻은 아무 일 없다는 믿음이다. 이번에도 나의 혹시나는 특이사항 없음이다. 하지만 이번의 혹시나는 혹시나가 맞았다. 처음 발견한 여러 개의 빨간색 글씨들과 재검을 위해 내원하라는 종합의견을 본다. 요동치는 눈동자에 정신없이 결과지를 덮는다. 온갖 생각들이 머릿속을 뒤덮는데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건강검진에서 빨간색을 보기는 정말 처음인 거다.


저녁이 되어서야 다시 결과지를 열어 찬찬히 살피기 시작한다. 4년 전 혈액정밀검사와 비교되어 있는 수치들을 보며 조금씩 나이가 더해져 있음을 발견한다. 그리고 빨간색 알 수 없는 수치와 영어로 된 용어를 본다. 초록창을 열어 검색해 보지만 뭔 말인지 모르겠다. 가장 큰 적은 두려움과 공포라고 했었지. 최대한 빨리 병원을 가야겠다 생각하며 더없이 찝찝하게 결과지를 다시 덮는다.


다음 날, 건강검진 결과지를 챙겨 도착한 병원에서 의사와 마주한다. 기본적인 사항을 묻고 한 장씩 넘기면서 설명해준다. 빨간 수치를 보며 대수롭지 않게 넘기는 의사의 말을 듣고서야 뭔가 정신이 맑아진다. 일시적이거나 큰 영향을 주지 않는 수치로 괜찮다고 한다. 그리고 뜻 하지 않는 부분을 설명한다. 비타민D 수치가 너무 낮다는. 영양제를 먹으면 될까요?라는 나의 말에 영양제로는 보충이 되기 어려운 수치라 3개월에 한 번씩 주사를 맞아야 한단다. 이건 또 뭔 말인가! 골밀도 검사가 누락되어 결과가 없다는 나의 질문에 검사 결과를 살핀다. '골감소증입니다. 지금부터 관리를 잘하셔야 해요. 비타민D와도 관계가 있으니 주사 꼭 맞아야 합니다.'


혹 떼러 갔다 혹 붙인 기분으로 되돌아 나온다. 정기적으로 다녀야 하는 병원이 +1 되었다. 생각한다. 추가 검진을 받을까 말까 고민하다 받았고 불가피하게 변경해서 받은 골밀도 검사다. 이번에 검사를 받지 않았다면 내 몸의 비타민D와 뼈가 방치되었겠지?라는 생각이 든다. 참 잘한 일이다. 일이 잘 되려면 순리대로 되는가 보다 하며 위안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남향집이 좋다며 집을 살 때 첫 번째 조건이 남향 뷰였다. 그래서 겨울이면 따뜻한 햇살이 온 집안에 스며 해가 떨어질 때까지 밝고 따뜻하다. 웬만해서는 난방을 하지 않을 정도로 온기 있는 집이다. 이렇게 밝은 햇살 가득한 집에서 나 혼자 태양을 피해 생활한다. 햇빛 없는 곳만 골라 앉아있고 해의 움직임에 따라 나의 생활공간도 이동한다. 그랬던 내가 망설임없이 햇살 가득한 거실 한가운데에 대자로 뻗어 눕는다. 뭣이 중한디하면서 이미 기미로 가득한 얼굴만은 그늘진 곳으로 가린다.




주말이면 햇살 가득한 거실에 누워서 햇볕 쬐기를 하기로 마음먹은 하루살이의 건강한 게으름지수는 +1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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