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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원회귀 Jan 15. 2022

대봉감과의 전투

집요한 집착이 승리하던 날

나이를 거꾸로 먹는 건가 싶기도 하지만 나는 진지하다.




유난히 홍시를 좋아하는 자식을 위해 매년 홍시 계절이 되면 계절이 끝날 때까지 대봉감을 조금씩 사다주신다. 올해도 어김없이 매주 오실 때마다 남은 대봉감을 확인하고 몇 개씩 채워주신다. 한 때 만날 때마다 살이 빠지는 자식을 보며 '잘 먹어라. 잘 먹어라.' 걱정하시던 후유증이신 걸까? 이미 통통하게 원상회복되었건만 여전히 '잘 먹어라. 잘 먹어라' 걱정하시는 그들의 눈에는 자식은 통통하게 살이 찌는 게 좋으신가 보다 싶어 살찌기 딱 좋은 대봉감을 열심히도 먹는다.


무슨 바람이 불어서였는지 이번에는 대봉감 한 박스를 사들고 오셨다. 아무리 생각하고 생각해도 혼자서 이 한 박스를 어떻게 다 먹어야 할지 답이 안 나온다. 매일 1개씩 한 달은 먹어야 하는데 어떻게 매일 먹을 수 있으며, 한 달 동안 골고루 조금씩 익을 수 있도록 속도를 조절한단 말인가. 내 돈으로 산 물건이나 음식은 지인과 나누거나 버리기라도 하련만 부모님께서 사다주신 물건이나 음식은 이상한 집착증이 생겨 나누거나 버리지를 못한다. 아무리 먹기 싫고 입맛이 없어도 끝까지 먹는 강박증도 조금 있는 것 같다. 이리하여 대봉감과의 전투가 시작된 것이다.


햇빛을 피할 수 있는 옷방으로 대봉감을 옮기고 선별작업에 들어간다. 박스 밑에 가장 단단한 녀석을 분류해 넣는다. 종이를 위에 깔고 살짝 말랑이 낌새가 있는 녀석들을 올린다. 그리고 이미 말랑해져서 먹어야 하는 녀석들은 몇 개는 식탁으로 나머지는 냉장고에 넣어둔다. 


1일1대봉감, 매일매일 대봉감의 상태를 확인하며 식탁에 둘 것과 냉장고에 넣을 것을 분류해 가며 용하게 버려지는 것 없이 매주 잘 먹어갔다. 가끔 익는 속도가 빨라진 대봉감으로 인해 냉장고에 대봉감이 쌓여갈 때면 마음이 조급해지기도 했으나 잘 버텼다. 아무리 저녁 약속이 있어 든든하게 먹고 온 날에도 1일1대봉감은 꼭 챙겨 먹었다. 대봉감 덕분에 매주 조금씩은 더 통통해지는 딸을 보며 요즘 얼굴 좋아 보인다며 웃으시는 부모님의 기쁨이면 됐지 싶다. 그렇게 힘겹게 대봉감과의 전투가 승리로 끝나가던 날 복병을 만났다.


너무나 멀건 빛깔로 전혀 익지 않은 상태로 존재하고 있는 마지막 녀석과 마주한 것이다. 햇살 좋은 주방 쪽에 일주일을 올려둬도 탐스러운 빛깔로 탱탱함을 유지하고 있다. 일주일이 더 지나도 굳건하다. 먹어도 될 것 같긴 한데 왠지 꼭지 부분에 떫은맛이 날 것 같은 소견이다. 한 참을 대치하며 고민에 고민을 한 끝에 결심하고 칼을 집어 든다. 조심스럽게 차분히 껍질을 깎아서 푸른 잎모양 접시에 담는다. 곶감을 만들기로 결심한 것이다.


바람이 잘 통하는 응달에서 곶감을 만들어야 한다는 초록창의 조언을 참고하여 바람이 잘 드는 다용도실에 굳이 이 추위에 문을 열고 미래의 곶감이 될 녀석을 둔다. 오후가 되면 다용도실에 빛이 들어오기에 시간 맞춰 다시 주방으로 옮기는 과정을 1주일째 반복한다. 겉 표면이 곶감처럼 쫄깃쫄깃해지긴 했으나 여전히 속은 말랑한 것 같으면서도 익지 않은 것 같은 모를 상태다. 다시 일주일의 공을 들인다. 조금 더 쫄깃해진 것 같기도 큰 변화가 없어 보이는 것 같기도 하지만 왠지 이때다 싶은 촉이다.


토요일 일레븐시즈의 페어링은 너로 정했다. 화사한 접시에 곶감인 듯 곶감 아닌 곶감을 적당한 두께로 잘라서 담는다. 씨가 없어서 잘린 단면이 화려한 국화꽃처럼 예쁘다. 겉쫄속촉 완벽한 외형이다. 맛보고 싶은 마음을 꾹 누르고, 포트에 물을 올린다. 향긋한 홍차 한 모금 후 드디어 곶감을 한 입 맛본다. 두근두근  사르르 녹으면서 쫄깃한 이 극강의 달콤함은 설렘이다. 집요한 집착이 더해져서일까? 이런 달콤함은 다시 맛보기 힘들 거란 생각이 스친다. 그러니 한 조각 한 조각 설레게 천천히 음미하며 승리를 자축해야지 싶다.




집요한 집착의 승리를 거둔 하루사리는 하루하루 더없이 진지하게 최선을 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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