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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수 Aug 31. 2023

무너지는 날에도 나를 돌볼 것


거의 10년이라는 시간을 꼬박 주부로 살았습니다. 베이킹이라는 즐거움을 만나 잠시 일할 기회도 얻었지만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습니다. 예전에 일한 경험을 살려 다시 해보려 노력도 했습니다만, 쉽게 발이 떨어지지 않습니다. 구인광고 사이트에 들어가서 이것, 저것 검색을 해보지만 과연 내가 할 수 있을까 하는 일들만 수두룩했습니다. 아이를 돌보는 일과 직장 일을 병행할 수 있게끔 시간이 알맞다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아마도 그게 다가 아니었나 봅니다. 무거운 생각으로 마음까지 무거워집니다.



뭔가 해보겠다고. 십 년 동안 이것저것 손 댄 게 수두룩 한데. 누군 빛나는 끈기로 학교도 다니고, 원하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 이어달리기도 하던데. 나는 왜 이렇게 하고 싶은 게 많아서 결국은 아무것도 하지 못했던 걸까 하는 생각이 나를 괴롭히기 시작합니다.


십 년은 정말 열심히 산 것 같은데. 놀이터에서도 아이가 즐거울 수 있다면 하는 생각으로 몇 년의 시간을 머물렀습니다. 놀이터를 작은 사회로 빗대며 그곳에서 있었던 일을 빽빽하게 글로 적어 낼 만큼 많은 일이 있었는데 그 경험들은 다 어디로 날아가 버렸을까요?


취미를 그냥 배운 적도 없었어요. 이 일들이 내 업의 시작점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진지하게 대했는데 말이죠. 학교도 다녀봤고, 자격증 공부도 매달려서 해봤습니다. 그런데도 나는 잘할 수 있는 게 없다는 생각에 골치가 아파집니다.










저는 10년 동안 좋아하고 잘하는 일을 찾겠다고 여러 일을 전전했지만 빼놓지 않고 행한 것이 있습니다. 그게 바로 ‘자기 돌봄’이라는 것을 깨달았지요.


마음이 아프면 마음을 들여다보려 책을 읽고 그래도 안되면 상담받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하도 산만하고 집중을 못 해서 정신과에 찾아가 주의력 결핍이 맞냐며 진료를 받기도 했죠. 그 문턱이 어렵긴 했지만 이렇게 나를 알아가고 찾아가는 과정들이 나를 탓하던 시간에서 조금씩 벗어날 수 있게 도와준 것 같습니다.


예쁜 에나멜 구두를 신은 꼬마 숙녀를 본 날, 나에게는 왜 저렇게 예쁜 모습을 선물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날부터 저는 외적인 모습도 돌보기 시작했습니다. 경제적인 여유로움은 없지만 내가 가진 것으로 성의를 다해 보자며. 아름다운 가게에 드나들며 중고 옷을 이것저것 구입하며 내 스타일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몇 년을 사 입다 보니 이번 여름 옷장은 정말 마음에 드는 옷만 걸려 있는 것을 보고 기분 좋은 웃음이 났습니다.



이 일들은 하루 이틀에 걸쳐 해 온 일들이 아닙니다. 몇 년이라는 시간을 두고 오랫동안 나를 돌보며 행해온 것들입니다. 그 일들이 과거의 나보다 단단한 오늘을 만들었습니다. 처음엔 우울해서 시작한 일들이 나를 살리고 키운 것입니다.



나를 돌본 시간의 빛은 지금처럼 무너지는 순간에 꼭 필요한 것 같습니다. ‘용기를 내야지 ’하고 무작정 덤비기 보다 뭉근히 끓여온 시간의 도움을 얻어 서서히 피어나고 싶습니다. 그렇게 무너지는 나를 달랩니다. 내가 나의 양육자가 되어 천천히 해보자고, 네 마음에 가닿는 너를 필요로 하는 곳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고 속삭여 봅니다.



눈여겨보던 일자리에서 떨어지니 마음이 조급해집니다.


한 호흡만 다시 가다듬어 봅니다. 이 시간을 기회라고 생각해 보려 합니다. 이십 대의 나는 내 기질을 고려치 못하고 일을 찾는데 급급했다면 이번에는 나의 모습이 잘 들어맞는 일을 찾겠다고. 그러니 뜻대로 안되더라도 절망하지 말자고. 내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자고. 내가 잘할 수 있는 게 뭔지 같이 찾아보자고. 바로 일터로 나서지 못하는 나를 비난하지 말자고. 노력하는 네 모습이 예쁘다고 매만져 주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오늘 하루를 다시 맞이합니다.

오늘은 내 일을 찾기 위해 어떤 시간을 보내게 될까 궁금해집니다.

나에게 다정한 사람이 되어 다시, 힘을 실어 보냅니다.


'오늘도 스스로에게 친절하기를. 나를 탓하지 말기를. '











© selvan548,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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