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수 Sep 13. 2023

다시 혼자가 되어


두 아이가 어린이집을 다닌 날, 그때 나는 혼자인 날이 많았다. 

내 곁에 엄마친구가 하나쯤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바라고 다녔던 그 시절. 활발하다고 생각한 나였는데 다른 엄마들에게 말 거는 일이 가장 어려운 게  돼버렸다. 다른 사람들은 조리원 동기에 어린이집에서 만난 엄마친구들과 짝을 이루며 다니던데. 나는 왜 친구가 없을까. 내 모습이 딱하고 불쌍했다. 남편에게 이런 내 모습을 보이는 것도 불편했다. 내가 별 볼 일 없는 사람처럼 보일 것만 같아서... 


아이가 유치원을 다니기 시작하니 내게도 아는 엄마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하원하는 아이를 기다리는 엄마들과 눈인사를 하고 말을 텄다. 놀이터 가는 일은 빠지지 않는 하루의 일과였다. 그렇게 놀이터라는 곳에 둥글게 모여 앉아 서로 사는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주말이면 일을 하러 간 남편 없이 혼자 아이 볼 때가 많았다. 아무래도 집에서만 아이들과 보내기엔 아이도 그렇고 나도 딱하다는 생각을 종종 했다. 밖에 나가야겠다는 생각이 강해졌을 무렵부터 일까. 함께 육아를 할 수 있는 곳도 어찌어찌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소속감을 느끼고 싶어 협동조합의 조합원으로 들어간 곳의 여러 소모임에 참여했다. 지역사회주민단체에 우연히 들어가 거기서도 이 행사, 저 행사를 쫓으며 나름대로 열심히 활동했다. 


외로운 날들이 이리저리 이어졌던 날들 속에서 내게도 봄날이 찾아온 것 같았다. 

일주일 동안 혼자 지내는 날 없이 꽉 짜인 스케줄 대로 철새 마냥 쫓아다녔다. 그렇게 새로운 사람들을 알아가고 모임에 스며들 때쯤 이제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내가 정말 좋아서 여기에 머무르는 건지, 누군가 좋다고 해서 여기 있는 건지. 다른 사람들에게 좋은 일을 하는 사람처럼 보이고 싶었던 건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소란한 생각에 자주 시달릴 때쯤하고 싶은 일이 생겼다. 바로 ‘수영’이었다. 


처음엔 친구의 권유로 시작했다. 함께하던 친구는 사정이 생겨 한 번 두 번 빠지게 되었다. 

혼자 수영할 때가 많았다. 친한 사람들이 없어 어색했지만 물속에서 나 스스로 몸을 움직이는 그 느낌이 너무 설레었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기분 좋은 감정. 내가 선택한 하루를 보낸다는 것이 이렇게 뿌듯하다는 것을 수영을 통해 다시 느끼게 되었다. 사람들과도 자꾸 수영을 같이 하니 앞과 뒤에 선 이들과 조금씩 말문을 트게 되었다. 깊은 대화를 나누진 못했지만 서로가 잘하고 싶어서 안달 난 수영을 주제로 나누는 대화는 과자만큼 고소했다. 


수영은 아이들의 여름방학을 시작으로 그만뒀다. 대신 일상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소속되고 싶어서 하게 된 것 들에서 조금씩 손을 떼기 시작했다. 진짜 내가 하고 싶은 게 뭘까 하며 고민하게 되었다. 이제까지 하던 모임들을 그만두는 과정에서 내가 매끄럽게 말도 하지 못하고 적절하게 관두지 못해서 소음이 잦았다. 몇 년 동안 만나던 사이가 끊어지기도 했다. 


마음을 두던 곳에서 떠날 때 느꼈던 상실감, 소외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컸지만 다시 내 생을 살아보고 싶었다. 좋은 것, 좋아 보이는 것 말고 날라리 같더라도 하고 싶은 것, 진짜 원하는 것을 느껴보고 행하고 싶었다. 그렇게 여러 모임에서 발을 뺐다. 


놀이터에서도 억지로 벤치에 앉아 있지 않았다. 나를 옭아매는 관계는 미안하고 아쉽더라도 서서히 거리를 뒀다. 아무리 좋은 사이였더라도 나 다운 모습으로 만날 수 없다면 만남의 횟수를 줄였다. 예전의 모습을 바라는 그 사람을 끊어 내기도 했다. 부족한 나여서 내 자격에 사람을 가릴 수 있을까 의문을 가지고 만남을 가졌다면 이제는 나다운 자격으로 관계를 선택하는데 주체가 되었다. 


서로가 성장할 수 있는 관계, 서로를 인정할 수 있는 사람과의 만남의 깊이를 늘려 나갔다. 만나는 사람의 수는 줄었지만 깊고 그윽한 관계로 더 단단해지는 날들을 기대했다. 그렇게 다시 자발적으로 혼자가 되었다. 


다시 혼자가 되어 길을 걸었다. 

작가의 이전글 내 삶을 이롭게 해주는 도구에 대해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