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넥타이

단편소설

by 김창수

저녁 늦게 들어선 집은 전과 다르게 침묵이 흘렀다. 항상 켜져 있던 TV도 오늘은 조용했다. 직장 동료들과 마신 술기운 탓인지 갈지자 걸음걸이를 하고 현관을 들어섰다. 방문을 열고 나오던 아내는 휘청거리는 나의 모습이 불안한지 부축을 해줬다. 아내는 충혈된 내 눈을 쳐다보며 말을 건넸다.

“얼마나 마셨기에 몸도 제대로 못 가누는 거예요?”

“술 한잔해서 그래. 신경 쓰지 마!”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일어나는 분노가 자신도 모르게 서글픔으로 바뀌면서, 힘없이 아내 앞에서 쏟아내고 말았다.

“당신! 회사에서 무슨 일이 있었어요?”

집사람은 뭔가 눈치를 챘는지 다그치면서 물어왔다. 순간 멈칫한 나는 허공에다 손사래를 쳤다.

“당신이 힘든 사회 생활하는 남자들의 세계를 어찌 알겠어.”

푸념 섞인 말투로 아내에게 하소연하듯이 던진 말이었다. 오늘 아침 사장에게 내 평생 처음 들어보는 말 때문만은 아니었다. 사장은 힘없이 나오는 내 뒷모습을 보았을 것이다.

“유 상무! 내 방으로 잠깐 들러요.”

아침부터 전화기로 들려온 사장의 목소리는 일상적이지 않았다. 회사에 들어와서 사장과 같이한 세월이 벌써 30년이 다 되어 가는데, 그 목소리를 내가 모를 리가 없었다.

“무슨 일이신지요?”

사장실로 들어서면서 평소와는 다르게 내 목소리는 기어들어 가고 있었다. 왜 나를 불렀는지 회사에서 떠도는 소문으로 어느 정도 알고는 있었다.

“유 상무와 일하면서 좋은 일도 많았는데, 벌써 30년이란 세월이 이렇게 흘렀네.”

사장이 내 눈을 제대로 보지 않고 말을 돌리는 것은 우리의 스타일이 아니었다. 그는 평소에는 자상하고 따뜻해 보였지만, 업무에 있어서만큼은 엄격했다.

“유 상무, 넥타이가 바뀌었네. 지난번 내가 해외 출장 다녀오면서 선물한 건가?”

사장이 굳어있는 내 표정에 긴장감을 느꼈는지, 화제를 돌리려고 애를 쓰고 있었다. 내가 매고 있던 넥타이는 회사 생활하면서 거의 변함없는 남색 바탕에 빨간색의 스트라이프였다. 매고 있던 것이 낡아 보였는지 사장이 눈여겨보고 내게 같은 디자인으로 선물한 것이다.

“제가 사장님과 일하면서 처음 받았던 선물이 마음에 들어 오늘 매고 나왔습니다.

사장의 의중을 알고 있는 듯한 나의 말에 그는 멈칫하며, 잠시 눈을 감았다. 지난 일들을 반추하는 듯해 보였으나, 그의 손은 제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이번 인사에서 아무리 생각해 봐도 유 상무가 후배를 위해서 결단을 내려줘야겠는데…….”

말끝을 흐리는 사장의 말에 나는 담담하게 그의 눈을 응시했다. 고개를 힘없이 끄덕거리며, 침묵으로 그의 말에 동의해 주었다. 그는 내 시선을 피하면서 창밖을 내다봤다. 나보다 더 긴장한 듯 헛기침을 하면서 애매한 분위기를 해소하려고 안간힘을 쓰는 그가 안쓰럽기까지 했다.

“이미 예상은 하고 있었습니다. 그동안 사장님께서 배려해 주신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

그에게 할 수 있는 말이 마땅히 떠오르지 않아 나도 모르게 형식적으로 나지막이 말하며 말끝을 흐렸다. 수많은 세월을 같이 일하면서 누구보다도 잘 아는 나를 사장이 어려운 말을 꺼내기에는 무척이나 힘이 들었을 것이다. 시선을 돌리다가 사장과 회사 행사 때 찍은 벽에 걸린 사진을 응시하였다. 어색했던 분위기는 내가 사장에게 인사하고 방문을 나오면서 막을 내렸다.

“자러 들어간다. 내일은 깨우지 마!”

아내의 시선을 피하면서 한마디 툭 던지고, 나는 방 안으로 들어갔다. 아내는 문뜩 무슨 말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나의 무뚝뚝한 말에 신경이 쓰였던지, 조용히 내 뒷모습을 바라보고만 있는 듯했다. 어두운 방으로 들어서서 스위치를 켜는 순간, 깜짝 놀랐다. 평소에는 느끼지 못했던 강한 불빛이 내 눈으로 들어오자 순간적으로 방 안이 더욱 깜깜해졌다. 늘 하던 대로 상의를 벗고, 넥타이를 풀었다. 침대에 누워서 천장을 바라보았다. 문뜩 이 자리에서 영원히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밖에서 아내의 인기척은 들리지 않았다. 어두운 방 천장에는 수많은 별이 떠다니고 있었다. 그동안 회사생활을 하면서 일어난 일들이 낡은 영화 필름처럼 흐릿한 영상으로 스쳐 지나갔다.


“오늘 첫 출근인데 늦겠다!”

내가 늦을까 봐 노심초사 밖에서 기다리시던 어머니가 재촉하는 소리가 들렸다. 처음 매어 보는 넥타이는 내 목에서 이탈하려는 듯 꼬이고, 또 꼬였다. 오랜 세월 아버지에게 그러했듯이 어머니는 방으로 들어와서 손수 넥타이를 매주었다. 아침 출근 때마다 아버지는 어머니가 목을 다정하게 감싸주며, 넥타이를 매어주는 것을 은근히 기다렸다. 어린 내 눈에 그런 광경을 뒤에서 지켜볼 때면, 두 분이 다정하게 포옹하는 모습처럼 보였다. 지금 아버지의 그런 느낌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어머니는 성격이 급한 내게는 어울리지 않겠다 싶었던지, 약식으로 매는 법을 알려주었다. 어머니가 입사 기념으로 사주신 남색 바탕에 빨간색 스트라이프 넥타이는 그런대로 잘 어울렸다. 나 때문에 평소 아침과 다르게 정신이 없어 보이는 어머니는 빠른 손놀림으로 아버지의 넥타이를 매어주고는 두 분이 현관으로 서둘러 나가고 있었다. 나는 아버지의 뒤를 따라 부리나케 뛰쳐나갔다. 두 분의 익숙한 아침은 항상 그랬다. 출근 첫날은 그렇게 허둥대며 아침 식사도 거른 채 집을 나와야 했다.

사무실에 들어서자 직원들이 동시에 나를 쳐다봤다. 그들은 사진기렌즈를 통해서 움직이는 피사체를 꿰뚫어 보며 셔터를 누르는 사진사가 되어있었다. 그들의 시선들이 무척이나 낯설고 부담스러워서, 어색해진 내 몸은 경직되어 있었다. 그들의 시선을 의식할 때마다 긴장한 탓인지, 내 손이 자꾸만 매어진 넥타이로 가면서 손에 묻은 땀으로 얼룩이 지기 시작했다.

“유영규 씨! 동료들을 소개해줄게요.”

회사에서 업무를 가르쳐줄 선배가 나를 불렀다. 그는 차분하면서도 유머를 섞어가며 나를 편안하게 해 주려는 따뜻함을 느낄 수가 있었다.

“신입사원 유영규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한 사람씩 인사를 시켜줄 때마다 시선이 그들의 넥타이로 향했고, 다양한 색깔과 패턴을 통해 개개인의 개성을 보는 듯했다. 나를 소개해준 선배의 넥타이는 ‘윈저노트(windsor knot)’ 스타일로 단정하면서도 중압감을 느끼게 했다. 처음 본 그의 스타일이 시간이 지나면서 나도 모르게 서서히 그의 스타일로 닮아가고 있었다.

회사생활에 익숙해지면서 모든 것이 전쟁터로 변해가는 것을 느꼈다. 이른 아침부터 사무실은 직원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고, 어느새 시장바닥으로 변해갔다. 여기저기서 들리는 고성이 귀에서 가슴으로 전달되었고, 전화기를 붙잡고 큰 소리로 언성을 높이는 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왔다. 일에 몰입하다 보면 어느새 넥타이는 조금씩 풀리기 시작했고, 늦은 오후가 되면 거의 목에 걸려 힘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그런 모습을 한 직원들이 많아질수록 창밖은 어두움으로 변해갔다. 저녁 퇴근 무렵이면 홀가분하게 긴장감을 풀면서, 회사 근처 술집에서 스트레스를 술잔 속으로 날려 보냈다. 그런 일상생활이 반복되면서 어느덧 회사생활에 적응해가고 있었다.

“유영규 씨! 넥타이가 이제는 잘 어울리네.”

선배가 술자리에서 하는 소리가 낯설지 않다.

“신입사원 때는 넥타이가 목에서 따로 놀았는데 이제는 같이 붙어 다닙니다.”

나의 호탕한 대답에 선배들은 그 말뜻을 잘 알기에 공감해 주었다.

어느덧 중견 사원이 된 나는 신입사원이 들어오면 교육 시간에 먼저 넥타이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넥타이는 루이 14세에게 용병 부대가 충성을 맹세하기 위해 가슴에 맨 것에서 유래했다고 합니다. 당시 프랑스 왕실을 보호하기 위해 크로아티아의 병사들이 파리에 도착했을 때, 그들은 모두 스카프를 목에 감고 있었습니다.”

갑자기 내 이야기에 신입사원들은 의아해했고, 그럴수록 나는 그들의 눈동자를 응시하면서 내가 크로아티아의 병사가 되어 넥타이를 만지며 말을 이어갔다.

“그 스카프는 무사 귀환의 염원을 담아 병사들의 아내나 연인이 감아준 일종의 부적이었다고 합니다.”

신입사원들은 항상 목에 매고 다니는 넥타이의 의미를 잘 모르는 듯했다.

“스카프는 자신에 대한 일종의 부적이기도 하지만, 그것을 감아준 여인들에 대한 책임감이기도 하지요.”

그들의 눈빛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넥타이를 풀 때까지 일에 대한 책임감과 긴장감을 가지라는 일종의 정신교육이었다. 넥타이는 내가 회사생활에서 견뎌낼 수 있는 유일한 도구이자 힘이었기 때문이다.


어느 날 회사 근처에 있는 서울역 광장 앞에 많은 사람이 몰려들었다. 높은 빌딩 창가 너머로 보이는 그들 중 무리 대다수가 하얀 와이셔츠 바람으로 넥타이를 머리에 둘러매고 있었다. 그들은 무엇인가를 외치며, 시내 중심가로 향하고 있었다. 누구에 의해서가 아닌 자발적으로 거리로 뛰쳐나온 사람들이었다. 넥타이를 목에 매는 것으로만 생각했던 나였기에 그런 광경을 보면서, 넥타이가 크로아티아 병사들이 전장으로 나갈 때 그것을 감아준 여인들에 대한 책임감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책임감은 이 시대를 살면서 가져야 할 우리들의 의무이자 권리였다. 가족과 국가를 위해서 넥타이를 머리에 매고 거리를 행진하는 그들을 보면서, 어느새 그 무리 속에 있는 나를 발견했다.

“이번에도 간접선거로 대통령을 뽑으면 당연한 결과가 나오지 않겠어?”

내가 옆에 있던 회사 동료인 김 대리에게 걸어가면서 말했다.

“벌써 몇 번째 그들이 한 지붕 아래서 대통령 선거를 했나?”

김 대리도 70년대 유신 시대 교육을 받은 나와 마찬가지로 그동안 억눌렸던 상황을 이해하고 있었다. 사람들의 불만이 여기저기서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이제는 우리도 선거에 참여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원하는 대통령을 우리 손으로 뽑아야죠! 절대로 이번만은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됩니다!”

무리에 있는 사람들은 이번에는 결사적으로 직선을 해야 한다고 소리를 높였다. 대열이 광화문 네거리로 다가서면서 최루탄이 터지기 시작하자, 주변의 건물에서 더 많은 넥타이를 맨 사람들이 몰려나왔다. 잠시 흐트러졌던 대열은 다시 더 큰 대열을 만들었고, 그들은 말없이 앞으로 나갔다. 최루탄으로 앞뒤 분간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호헌철폐! 독재 타도!’라고 그들이 외치는 소리는 더욱 커져 광화문 네거리에 울려 퍼지고 있었다.

그날 저녁 같이 동참했던 김 대리와 회사 근처 주점에서 술을 마셨다.

“유대리! 우리가 이 시대를 살면서 사회도 변화해야 한다면, 그것을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아?”

김 대리는 먹은 술이 쌓이면서 울분을 참지 못한 채, 그동안 자신의 행동이 이 시대의 방관자로 보인 것은 아닌지 걱정하는 것 같았다. 그의 넥타이는 머리에서 내려오지 않았고, 온몸에 흐르는 피를 그의 뇌 속으로 역류시켜서 또 다른 그를 만들고 있었다.

“이 시대의 영웅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우리가 잃어버린 것이네.”

술잔을 부딪치면서 그를 잠시 응시하며 말했다. 김 대리의 자책하는 마음을 달래주고 싶은 마음으로 한 말은 아니다. 우리는 영웅을 사실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잊고 있었다. 우리들의 바쁜 생활이 현실 문제를 외면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우리가 그런 영웅을 찾을 수 있을까?”

김 대리는 술이 몇 순배 넘어가자, 결연하게 목에 핏줄을 세우며 말했다. 김 대리는 나약했던 자신을 다시 일으켜 세우려고 안간힘을 쓰는 것 같았다. 넥타이를 머리에 매고 몰려든 우리가 잊혔던 진정한 영웅들이었다. 그들과 동참하여서 한 무리를 이루며 보았던 그들의 모습은 이 나라를 지키기 위한 책임감 때문이었다. 그 속에서 우리는 잊어버린 영웅들을 찾았다고 생각했다.

얼마 후, 대통령의 담화문 발표가 있었고, 신문에는 ‘넥타이부대,

그들이 해냈다’라는 헤드라인을 볼 수 있었다. 길고 길었던 대통령

간선제에서 직선제로 바뀌는 순간에 우리가 있었다.


내가 유일하게 발을 뻗고 쉴 수 있는 날은 어쩌다 일이 없는 주말이었다. 그동안 밀린 잠을 식사도 거른 채 자는 것이 유일한 낙이었다. 일주일 내내 업무에 시달렸고, 저녁에는 손님 접대로 몸은 물먹은 솜처럼 천근만근 무겁기만 했다. 오늘도 오랜만에 하루 쉴 수 있는 주말이라 나른한 여유로움을 잠으로 즐기고 싶었다. 그런데 밖에서 아침 일찍부터 아내의 무거운 곰 발소리가 자주 들려왔다. 집에 있는 남편이 잠만 자고 있어 미워 보였는지, 아내가 갑자기 방으로 들어오더니 이불을 걷어 버렸다. 며칠 동안 늦게 들어와서 볼 수 없었던 나에게 심술이 발동한 것 같았다. 주말은 아내의 성화에 집에서도 전쟁이었다. 나를 못마땅하게 쳐다보는 아내에게 무심코 던진 말이 화근이 되고 말았다.

“넥타이를 풀면 긴장감이 없어지는지 맥이 풀리네.”

실눈을 뜨고 졸린 표정으로 아내를 보며 한 말에 아내는 그동안 참았던 말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허구한 날 술 먹고 늦게 들어와서 씻지도 않고 자면서, 오늘 같은 날은 조금 일찍 일어나서 집안일을 도와주면 안 돼요!”

아내는 흥분한 듯 떨린 목소리로 그동안 참아왔던 울분을 토해냈다. 나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녀는 울먹이기까지 했다. 밀렸던 잠을 자려던 내 계획은 여지없이 무너졌다. 아내의 그런 모습을 보면서 오늘은 밀렸던 집안일을 도와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일에 시달리다 보니 미처 당신을 챙기지도 못하고 정신이 없었네. 미안해!”

기어들어 가는 소리로 아내에게 용서를 빌면서, 벌떡 일어나 살며시 손을 잡았다. 회사 일에 늘 쫓기듯 지내오다 보니 그동안 아내에게 소홀했던 것이 미안했다. 나이가 들면서 아내에 대해 미안함이 애교 섞인 목소리로 변해가고 있었다.

“집안일 끝내고, 백화점에 가서 당신 필요한 옷 사러 갈까?”

힐끗 그녀의 얼굴을 봤다. 아내는 내 말 한마디에 기다렸다는 듯이 웃는 얼굴로 신나 하면서, 까치발로 방을 나갔다.

주말이라 백화점에는 발 디딜 틈이 없이 많은 사람이 있었다. 나 같은 남자들이 여기저기 눈에 띄었고, 그들 대부분이 마지못해 끌려 나온 모습들이었다. 하품을 하는 사람, 한눈을 팔며 시선을 이리저리 돌리는 사람, 아내 뒤를 졸졸 총총걸음으로 따라가는 사람, 아내가 물건을 사고 있는데 뒤도 안 보고 걸어가다 뒤통수가 근지러워한 번씩 쳐다보는 사람, 아예 아내가 쇼핑하는 동안 의자에 앉아서 책을 보는 사람. 다양한 사람들을 보면서, 문득 아내에게 집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봄도 되었는데 화사한 옷 하나 골라봐.”

얼마 만에 하는 소리인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아이들과 남편 뒷바라지에 정신없이 살아온 아내였다. 애들이 학교를 졸업하고, 이제는 직장을 다니느라 집에서는 거의 볼 수가 없었다. 아내는 예전 같지 않았다. 혼자 조용한 집에서 어떻게 지내는지 관심을 가지지 못했다. 갱년기를 겪고 있는 아내가 어느새 눈가에 주름이 잡혀가고 있는 모습이 안쓰러워 보였다. 그녀와 정신없이 보낸 지난 세월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친구가 어렵게 자리를 만들어 준 아내와 처음 만나기로 한 날, 나는 무슨 색의 넥타이를 맬 것인지 고민하였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희망을 준다는 오렌지색, 항상 매고 다니는 남색 바탕에 빨간색의 스트라이프, 아니면 평범한 푸른색의 솔리드를 맬까 생각하면서 넥타이를 고르는 내 머릿속은 이미 여러 가지 색깔로 모자이크가 되어있었다. 결국은 그녀가 좋아할 것 같은 오렌지색의 솔리드를 매기로 정하였다. 약속 장소로 가는 버스 안에서 창으로 비치는 오렌지색넥타이는 내게 좋은 예감으로 다가왔다. 그동안 바빴던 회사생활로 벌써 삼십이 넘은 노총각이 누릴 수 있는 호사는 이제 장가가는 일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던 ‘장가가라’라는 부모님의 혼성듀엣은 이제 들을 수 없을 것 같다는 아쉬움도 들기 시작했다.

버스가 드디어 정류장에 들어섰고, 문이 열리자마자 그녀와 만남의 기대로 환호성을 지르며 뛰어내렸다. 그런데 꽝! 하면서 갑자기 머리에 번개가 쳤다. 전봇대가 나를 암각화로 만든 것이다. 많은 시간이 흘렀을까, 눈을 떠 보니 내 주위는 하얀색으로 바뀌어 있었고, 부모님이 안쓰러운 얼굴로 나를 보고 있었다.

그녀와의 만남은 그 사건 이후 3개월이 지나 우여곡절 끝에 이루어졌다. 나의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이해할 수 없다는 핑계로 그녀가 계속해서 약속을 미루었기 때문이다. 나는 내 예감대로 그날 매었던 오렌지색 넥타이를 다시 매며, 희망을 가져올 거라고 믿고 또 믿었다. 그녀와 만난 지 6개월 만에 결혼식을 올리고 한 집에서 살게 되었다. 나는 희망을 주었다고 믿었던 오렌지색 넥타이는 결혼 이후로 매지 않았다. 오렌지색이 의미하는 부유, 권위, 숭고함, 위엄 따위는 이제는 중요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아내는 결혼 이후 내게 넥타이를 매어주지 않았다. 아내는 내가 넥타이를 잘 맨다는 핑계로 도움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던 것 같았고, 어머니가 나에게 가르쳐준 넥타이 매는 법을 바꾸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아침에 출근하면서 가끔 넥타이를 매어달라고 할 때마다, 어린애들 때문에 바쁜 척하면서 딴청을 부렸던 아내였다. 그런 아내를 보면서 한편으로는 섭섭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그녀의 그러한 행동에 무덤덤해지기 시작했다. 매일 늦게 퇴근하는 남편을 기다리며, 그녀는 예전 같지 않게 조금씩 변해가고 있었다. 나 역시 그런 아내의 태도에 점점 익숙해져 가고 있었다.

아내는 결혼 후 곧 아이를 가지면서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었다. 그녀가 아이의 양육을 위해서 자신의 인생을 포기하는 것이 안쓰러웠다. 그동안 직장 생활에 조금씩 염증을 느끼고 있었기에 미련 없이 그만둔 것이다. 둘째가 태어나면서 얼마 동안 그녀는 정신없이 아이들의 뒷바라지를 하면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아이들도 아내에게 보답이라도 하듯이 아무 탈 없이 커가고 있었다. 나는 그런 아내를 보면서 더욱 회사생활에 전념을 할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내가 내게서 멀어져 가고 있다는 것을 직감했다.

“요즈음 당신 무슨 생각을 하는지 나에게는 관심이 없는 것 같네.”

집에 일찍 들어오는 날에도 그녀는 아이들 핑계를 대면서 잠자리를 멀리하고 있었다.

“내가 당신에게 무슨 관심을 가져야죠?”

갑자기 꺼낸 말에 아내는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당신이 나에게 점점 멀어지는 느낌이 드는데…….”

권태기의 부부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관심을 말하고 있었다. 아내는 잠시 나를 쳐다보더니, 그동안 참았던 이야기를 쏟아냈다.

“사랑의 비극은 무관심이라는 말 모르세요?”

사랑! 비극! 무관심! 머릿속에서 세 단어가 빙빙 돌면서 그들의 상관관계를 생각하고 있었다. 내가 아내에게 무엇을 잘못했는지 곰곰이 생각해 봤다. 그리고 등을 돌렸다.

“당신이 먼저 말 꺼내놓고 등 돌리면 어떻게 해요?”

아내는 더욱더 거칠게 나를 파고들었다.

“당신이 이야기한 사랑의 무관심은 너무 심한 말 같은데…….”

부부가 살아가면서 비극적인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고, 사랑이 식어 갈 수는 있어도 그것이 무관심을 유발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아내가 넥타이를 매어주지 않는 것이 적어도 그녀가 나에게 무관심하기 때문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나는 아내와 그날 늦은 밤까지 입씨름했다. 부부가 할 수 없는 말이 있다는 것도 알았고, 내가 아내에게 무뚝뚝했다는 것도 알았다. 아내는 그동안 응어리진 가슴을 열면서, 내 품으로 다시 돌아왔다. 다음 날 출근할 때 아내는 나에게 넥타이를 매어주었다. 애들이 아빠, 엄마의 이상한 광경을 처음 보면서 즐거워했다. 목에 매인 넥타이처럼 아내의 존재가 내 몸에 한 부분을 차지한다는 것을 실감했다.

큰애가 직장 생활을 하면서 넥타이 매는 법이 어색했던지 나에게 매는 법을 가르쳐달라고 했다. 내가 회사 첫 출근 날에 어머니가 매 주던 쉬운 방법을 알려 주었다. 그 광경을 보고 있던 아내가 한마디 했다.

“당신 어머니가 처음에 가르쳐준 방법은 이제 보기 싫어요!”

내 넥타이 맨 방법이 보기가 싫은 건지 아니면 어머니가 가르쳐준 넥타이 매는 법이 싫은 건지 알 수는 없었지만, 그녀도 아들에게 직접 매어주고 싶다는 생각을 한 것 같았다. 아내는 내 손을 뿌리치더니, 큰애의 넥타이를 ‘윈저노트(windsor knot)’ 스타일로 바꾸어주었다. 큰애는 어머니가 매어준 넥타이가 마음에 드는지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남자의 넥타이는 여자의 손끝에 달려야 비로소 멋이 난다는 것을 알았다. 큰애가 장가를 가면 분명히 아내에게 넥타이를 부탁할 것이고, 그의 아내는 넥타이 매는 법이 시어머니와 또 다른 스타일

로 바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애야! 너는 어머니가 매어준 넥타이 방식을 절대 바꾸지 마라.”

내가 큰애한테 던진 말을 아내가 들으면서 흐뭇해했다. 하지만 아내는 그 말을 믿지는 않을 것이다. 둘째 딸애가 첫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받은 돈으로 내게 넥타이를 선물했다. 그 넥타이는 내가 좋아하는 스트라이프였다. 남색 바탕에 빨간색이 아니라, 노란색 바탕에 흰색 스트라이프였다. 뭔가 익숙지 않은 색상이 마음에 들지를 않았다.

“아빠가 좋아하는 색이 아니구나.”

나는 둘째에게 해야 할 말이 아니라는 것을 아는 데에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딸애가 아빠의 넥타이를 사준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빠! 살아가면서 변화가 필요한 것 아녜요?”

변화! 갑자기 둘째에게 뒤통수를 맞은 느낌이 들었다. 그동안 애들에게 보인 아빠의 모습은 항상 같은 패턴에 같은 색상의 넥타이를 매는 나를 융통성 없는 사람으로 보았을 것이다. 스트라이프가 얼마나 어렵고 멋있는 패턴인 줄 모르는 것 같았다. 그런 나에게 단지 같은 넥타이를 맨다고 단조로움을 느꼈을 가족에게는 넥타이가 아니라, 바쁜 회사생활로 가정적이지 못했던 그런 가장으로 생각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딸애가 요구하는 ‘변화’가 머릿속을 맴돌고 있었다.


아내는 옷을 고르면서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내 시선은 그녀의 시선을 따라갔고, 그녀의 시선이 어디엔가 머물면서 내 눈을 봤다.

“당신한테 너무 잘 어울리네.”

그녀의 얼굴에는 화색이 돌았다.

“당신도 정장 하나 살래요?”

그녀는 나에게 답례라도 하듯이 물어왔다.

“글쎄…… 필요한 게 떠오르지 않네.”

다음이라는 말이 나오려는 순간 아내는 무엇을 살 것인지를 알았다는 듯이 외쳤다.

“넥타이 어때요?”

나는 갑자기 가슴이 멍해졌다. 이제는 넥타이가 필요하지 않았다.

“색깔은 남색 바탕에 빨간색의 스트라이프 있는 걸로.”

첫 출근 때 어머니가 사주셨던 넥타이가 갑자기 생각이 났다.

“당신 넥타이 보면 거의 비슷해. 그런데 또 같은 패턴으로 사?”

아내가 지겹다는 듯이 다른 것으로 바꾸자고 했으나 쉽사리 난 그 패턴을 바꾸지 못했다. 그것은 내가 회사생활을 하면서 겪었던 나의 생활 방식으로 일종의 고착화 현상이었다. 아내는 그런 나를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아침에 눈을 뜨자 지난밤 일들이 떠올랐다. 넥타이를 푼 것까지는 기억이 나는데, 그 이후로는 기억이 나지를 않는다. 그 순간! 이제는 넥타이를 매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태양이 벌써 중천에 떠 있는데, 내가 지금 무엇을 해야 할지, 아무런 생각도 나지를 않았다. 아침마다 일어나라고 아우성을 치던 아내의 인기척도 없었다. 답답한 마음에 창문을 열었다. 멀리 펼쳐져 보이는 산들이 파랗게 변해가고 있었다. 오늘은 그동안 쌓아놓았던 넥타이를 하나씩 정리해야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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