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창수 Jun 03. 2024

프롤로그

이별 이야기 / 콩트

  이별이란 단어를 떠올리면 오래전에 프랑스 파리, 로댕 미술관에서 봤던 '키스(입맞춤)'라는 작품이 생각난다. 단테의 <신곡> 중 '지옥' 편 5곡에 나오는 프란체스카와 파울로의 비극적 사랑 이야기를 모티브로 만든 조각상이다. 지옥에서 받을 고통을 생각하며, 처절한 죽음을 앞두고 나누는 그들의 마지막 이별의 키스, 죽음의 키스 장면이다. 이 작품은 옷을 모두 벗고 격렬하게 껴안으며 키스를 하려고 하지만, 입술은 닿지 않은 상태로 조각되었다. 영원한 이별이 싫었던 것일까? 파올로와 프란체스카의 비극적 사랑은 약속되지 않은, 안타까운 이별이라 많은 예술가의 작품 주제가 되었다.     

  

  예고되지 않은 이별은 항상 가슴이 아프다. 젊었을 때 여러 가지 이유로 이별을 했던 연인, 학교 생활하면서 만났던 친구들과의 이별, 군대 생활 중에서 저 멀리 떠나 버린 전우, 사회생활 하면서 만났던 많은 사람과 이별, 그리고 나이가 들어갈수록 예상치 못한 이별이 점점 늘어간다. 얼마 전까지 만났던 친구의 부고, 가족들의 슬픈 이별, 쌓였던 감정이 터져서 이별을 하는 경우가 있다. 만남보다 이별의 횟수가 더 많아지는 것은 세월의 흐름 때문이리라.     

  서로 갈리어 떨어지는 이별이 두렵다. 특히 사랑하는 사람과의 헤어짐은 더더욱 두렵다. 누구든 나를 잊는 게 싫고, 나 역시 누군가를 잊고 싶지 않기에 빈번하지는 않지만, 가끔이라도 서로의 소식을 전하며 살았다. 부모님과의 이별은 험난한 세상에 홀로 남겨진 막막함이었다. 모든 이별은 내게 아픔이고, 힘겨움이다. 그러기에 사소한 헤어짐도 없는 삶을 살고 싶다는 강박감이 생겼는지도 모른다. 살기 위해, 헤어지지 않기 위해 집착했고, 넘어지지 않기 위해 나를 감추고 타인에게 맞추며 살았다. 뿌리 뽑히지 않으려고, 티를 내지 않고 좋은 척하며 살았다          

  

  살아오면서 몇 번의 이별을 해야 하는지 생각해 본다. 누구와의 이별이 가장 아픈 것인가도 떠올려 본다. 그리고 이별이 주는 감정의 변화는 어떠했는지도 궁금하다. 불교에 회자정리 거자필반(會者定離 去者必返)이라는 말이 있다. 만나는 사람은 반드시 헤어지게 되고, 떠난 자는 반드시 돌아온다는 말로 인생의 무상함을 말하는 것이다. 앞으로 얼마나 더 이별을 고해야 하는지 알 수 없다.

  이별의 순간 그들에게 최선을 다해서 사랑했었는지, 미련이 없었는지 그리고 후회가 없었는지를 항상 생각한다. 조금만 더 잘해주었으면 하는 과거의 바람은 이제 사라진 지 오래다. 그들이 기억 속에서 얼마나 오래 남아있을지, 혹은 잊힐지 두려워진다. 지금, 이 순간에도 이미 이 세상에 없는 많은 사랑했던 가족, 친구, 연인 그리고 스쳐 지나갔던 사람들이 생각난다. 

  

  이제 나와의 이별을 준비할 시간이다. 이별의 시간이 정해져 있지 않지만, 그런 준비를 하지 않은 채, 갑자기 이별을 맞이하게 되면 속상하고, 아쉽고, 두려울 것 같다. 누구의 손을 잡아야 할지도 모를 것이다. 그들과의 이별은 웃으며, 행복해 보이는 모습으로 했으면 좋겠다. 그동안 마음에 두었던 사람에게, 끝까지 사랑했던 사람에게 마지막 키스를 하고 싶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