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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창수 Jun 17. 2024

2화. 구름

이별 이야기 / 콩트

  새로 이사 한 집이 시내 중심에 있어, 전학 간 학교는 전차를 타고 몇 정거장을 가야 했다. 나는 익숙지 않은 번잡한 도시의 낯선 환경과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느라 얼마간 정신없이 보냈다. 어머니가 가끔 ‘전에 친하게 지내던 학교 친구들 보고 싶지?’라는 말에 Y를 생각했다. 왼쪽에 달았던 손수건도 떼어낸 지 오래되면서, 그녀의 얼굴이 낯설어지기 시작했고, 같이 다녔던 학교길도 서서히 잊혀 갔다. 


  나는 주변이 산과 대학 캠퍼스들로 둘러싸인, 도심에서 약간 외진 중학교로 진학했다. 집에서 버스를 타고 사대문 밖으로 가야 하는 불편함은 있었지만, 시골 같은 한적한 분위기가 좋았다. 학급수도 많지 않았고, 남녀공학이라는 특수성과 여자 선생님들이 많아서인지 교장 선생님도 여자였다. 같은 학급에서 여학생과 같이 공부한다는 말에 남학교로 간 친구들은 나를 부러워했다.

  사춘기에 접어들고 있는 나이에 남녀학생이 짝으로 앉아서 공부하는 분위기는 가슴을 설레게 했다. 

  “너! 목소리가 변성기로 접어든 것 같네. 같은 반 여학생들과 잘 지내니?”

  학교 옆에 있는 대학에 입학한 누나가 약 올리는 소리에 얼굴이 빨개지면서, 펄쩍 뛰는 내 모습이 우스웠는지 ‘그냥 해본 소리야.’ 하면서 놀려댔다.     


  여자 선생님이 가느다란 나무 막대기와 출석부를 들고 교실문을 열고 들어오자, 뒤에 있던 아이들이 웅성거렸다. 첫 생물 시간이었다.

  “오늘부터 여러분에게 생물을 가르치게 된 S입니다. 거기 뒤에 학생 조용히 해요!”

  그녀는 자기소개하다 뒷자리에서 떠드는 학생들을 향해 큰 소리로 말했다. 20대 후반으로 보이시해 보이는 여자 선생님은 학생들을 압도하는 카리스마가 있었다. 일주일 2시간을 공부하는 생물 시간이 기다려졌다.

  "이번 학기에는 곤충과 꽃들에 대한 생물의 다양성, 식물과 동물의 에너지원에 대한 학습, 생물의 자극과 반응, 생식에 관한 공부를 하겠습니다."

  일주일 2시간을 공부하는 생물 시간이 기다려졌다. 2학기에 접어들면서, S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광릉 수목원의 1박 2일 일정 프로그램 참가 제안을 했다. 나는 망설임 없이 신청했다. 그날 밤 내 머릿속에는 S 선생님의 모습으로 꽉 차 있었다.


  수목원에 도착해서 숙소에 여장을 풀었다. 우리는 개울가를 건너 오솔길을 따라 산 정상 쪽으로 올라갔다. S 선생님은 곤충이 보이자 자세하게 설명해 주었다. 

  “저 곤충은 이름이 긴 ‘검은 빛나는 작은 빛’이라고 하지. 반짝이는 검은 껍질을 가지고 있으며, 그 몸이 빛을 반사하는 모습에서 이름이 유래되었어.”

다른 곤충을 가리키며 ‘붉은 가슴 잎 벌레’라며, 밝은 붉은 가슴 때문이라고 했다.

  S 선생님과 정신없이 얼마나 올라갔는지 일행은 길을 잃어버렸다. 여름의 우거진 숲 속에서 날이 어두워지면, 길도 잘 보이지 않았다. 얼마를 지나서 멀리 숙소의 불빛이 보였다. 친구들은 하루종일 숲 속을 헤매고 다녀서 피곤했는지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나는 잠을 설치다, 별을 보기 위해 밖으로 나갔다. 그곳에 S 선생님이 혼자 벤치에 앉아 있었다. 달빛에 그녀의 어두운 얼굴 표정이 드리워져 있었다. 나는 조용히 선생님 옆으로 다가가서 앉았다. S 선생님은 내 손을 잡고, 아무 말 없이 하늘만 쳐다보고 있었다.     


  S 선생님이 개구리 해부 실험을 위해서 과학실로 모이라고 했다. 과학실에는 다양한 실험기구와 벽에는 여러 가지 곤충과 동물의 해부도에 명칭이 붙어 있었다. 

  “비커에 개구리를 넣고, 알코올램프에 불을 붙이세요.”

  내가 선생님 지시에 따라 개구리 해부 실험을 시작했다. 여학생들은 옆에서 보다가 눈을 감았고, 일부 학생들만 흥미롭게 보고 있었다. 비커가 끓기 시작했다. 

  S 선생님이 개구리의 살과 뼈를 직접 추리면서, 부위와 그 역할에 관해서 설명했다. 개구리 뒷다리가 움직일 것 같은 느낌이 들었지만, 선생님은 아랑곳하지 않고 골격을 맞춰 나갔다. 선생님이 수컷과 암컷의 구별법에 관해서 이야기하자, 학생들은 얼굴을 찡그리면서도 귀는 선생님 입을 향해 있었다. 나는 남아서 선생님의 과학실 정리를 도와주었다. 선생님이 갑자기 어디가 아픈지 가슴을 움켜잡았다.     


  내가 생물 시간에 S 선생님에게 관심을 받자, 일부 학생들은 시기의 눈치를 보이기 시작했다. 특히, 점수가 잘 나오면 수군거리거나 비아냥거리는 친구들도 있었다. 그런 그들에게 나는 관심 없이 열심히 공부했다. S 선생님이 다른 선생님들과 등산 모임에 내가 참여한 것이 결정적인 문제가 되었다. 여학생들의 시기심은 도가 넘었고. 교장 선생님도 S 선생님에게 주의를 주었다.

  그 사건 이후, S 선생님은 학기를 마치면 학교에 사직서를 제출할 거라는 소문이 돌았다. 겨울 방학이 되면서 S 선생님은 결국 학교를 떠났다. 

  “선생님! 학교 왜 그만두셨어요?”

  나는 선생님에게 전화를 걸어 떨리는 목소리로 물어보았다. 그녀는 힘이 없는 목소리로, 건강 때문에 미국에 있는 부모님에게 갈 예정이라며, 공부 열심히 하라는 말을 했다.


  공항에서 S 선생님과 작별 인사를 나누면서, 그녀가 잡아준 따뜻한 손때문이지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처음 수업에서 만나 3년간 자연의 아름다움을 알게 해 준 S 선생님과 작별의 아쉬움이었을까? 그동안 쌓인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정 때문인지, 아니면 친구에게 들은 선생님의 불치의 병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S 선생님이 탄 비행기가 멀리 사라진, 하얀 구름 위로 다시는 보지 못할 S 선생님의 얼굴이 희미하게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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