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창수 Jun 10. 2024

1화. 손수건

이별 이야기 / 콩트 

  “오늘 입학식이다. 빨리 일어나라. 학교 늦겠다.”

  어머니가 아들이 초등학교 입학한다고 아침 일찍부터 분주하게 움직였다. 큰누나는 입시 공부해서 중학교에 진학했는데, 이런 일 처음도 아니고, 아들이라고 신경이 쓰이는 걸까? 어머니는 새로 산 옷을 챙겨 입혀주면서, 하얀 손수건을 왼쪽 가슴에 옷핀으로 달아줬다. 왜 손수건을 달아주는지 궁금했지만, 누나들도 그렇게 했던 기억이 어렴풋이 떠올라 그러려니 했다. 

  어머니는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내 손을 잡아끌다시피 입학식에 늦겠다고 집을 나섰다. 3월이라 아직 밖은 추운 바람이 불었다. 학교는 내가 사는 아파트 옆 놀이터를 지나, 언덕을 한참 올라가야 보였다. 운동장에는 이미 많은 아이가 보호자의 손을 잡고 반 번호판이 붙어 있는 곳으로 모여 있었다. 어머니는 내 손을 꼭 잡은 채, 줄 끝 맨 앞에 서 있는 담임 선생님에게 공손하게 인사를 했다.      


  이제는 어머니 도움 없이 혼자서 시간표대로 책을 가방에 넣고, 등에 멨다. 

  “가방 잘 챙겼니?”

  어머니의 목소리를 뒤로 하고, 문을 열고 나가면서 ‘잘 다녀오겠습니다.’라는 말을 남겼다. 학교 가는 길이 이제 익숙해서인지 가파르긴 했지만, 힘들지는 않았다. 뒤에서 어디선가 많이 듣던 여자 목소리가 내 이름을 불렀다. 얼마 전 부반장으로 뽑혔던 Y였다. 그녀와 반장인 나는 같은 책상을 사용했다.

  1교시가 끝나자, 아이들이 교실에서 장난을 치며 돌아다녔다. 어떤 남학생이 여학생의 머리카락을 잡고 흔들어 댔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그 여학생은 울면서 선생님에게 달려갔다. 수업 시간 종이 울리고, 조금 지나 선생님이 그 여학생의 손을 잡고 교실로 들어왔다. 떠들던 아이들은 선생님의 성난 얼굴을 보자, 갑자기 자리에 조용히 앉아 놀란 토끼 눈을 하고 있었다.      


  “누가 이 여학생 머리카락 잡았어? “

  교실은 순간 정적이 흐르며, 아이들은 한 남학생을 쳐다보고 있었다. 여학생은 아직도 분이 안 풀렸는지 눈물을 흘리며 그 남학생을 째려보고 있었다. 

  ”제가 그랬습니다. “

  그 남학생은 금방이라도 울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왜 그랬어? “

  선생님의 화난 목소리에 그 남학생은 울음보를 터뜨렸다. 교실은 갑자기 초상집이 되었다. 나는 일어나서 선생님에게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나지막하게 속삭이듯 말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

  그 여학생은 내 옆에 앉아있던 부반장 Y였다. 남학생이 여학생들을 못살게 구는 것을 보던 Y가 그 남학생에게 그러면 안 된다고 한마디 한 것이 사건의 발단이 되었다. 사실 그런 문제는 내가 나서야 했지만, Y는 내가 머뭇거리자 직접 나섰다. 그 사건으로 그녀와 더욱 가까워졌다.

     

  Y의 집은 내가 살던 아파트 옆, 한옥에 살았다. 등하교에서 가끔 만나면 같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였지만, 숫기가 없었던 나는 Y에게 다가가지는 못했다. 방과 후에 그녀와 아파트 뒷문 대신 그녀의 집이 가까운 정문으로 돌아가서 헤어졌다. 

  ”내 생일날 집으로 와 줄래? “

  Y가 생일이라고 초대한다고 했을 때 망설였다. 고민하다가 어머니에게 이야기를 꺼내자, 예쁜 선물을 사주면서 다녀오라고 했다. 

  Y의 집에서 그녀의 어머니를 처음 보면서, 제대로 얼굴도 들지 못하고 인사만 했다. 왜 그리 그녀의 어머니 보기가 서먹서먹하고 부끄러웠는지 모르겠다. 친구들은 음식을 맛있게 먹는데, 나는 제대로 먹지 못했다. 친구들이 생일 노래를 부를 때에도 입안에서 오물거리기만 했다. 

  ”이리 와! 촛불 같이 끄자. “

  갑작스러운 Y의 말에 얼떨결에 촛불을 끄고, 그녀가 내 손을 잡아 케이크를 같이 잘랐다.   

  

  그날 밤, 잠자리에서 Y의 손을 잡았던 느낌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Y의 돌발적인 행동으로 내 가슴에 큰 돌멩이가 들어간 것 같았다. 그녀와 그렇게 3년간을 같은 학교와 동네에서 반장과 부반장이 아니라, 친한 친구로 지냈다. 어머니가 가끔 Y와 잘 지내냐고 물어보았지만, 나는 태연하게 관심 없다는 표정으로 침묵으로 일관했다. 내 가슴속을 어머니가 들여다보고 있는 걸까?           

  Y와의 인연이 조금씩 멀어져 가고 있다는 것을 그때는 몰랐다. 그녀는 항상 같이 있는 친구라고 생각했다. 나이는 어리지만, 성숙했던 그녀는 나에게 어머니보다 더 가까운 여자라는 것을 알기 시작했다. 

  ”애야! 누나들이 상급학교로 진학했는데, 학교 근처로 이사를 해야 할 것 같다. “

  어머니의 갑작스러운 말을 들으며, 그곳이 여기서 멀다는 것도 알았다.          


  며칠간 나는 밥을 먹지 않았다. 어머니는 그 이유를 모르는 것 같았다. 조금 있으면 겨울 방학이 오고 이사를 해야 하는데, 이 사실을 Y에게 이야기를 해야 할지 고민을 했다. 아무 말 없이 전학을 가면, Y는 내게 따뜻하게 대해준 마음을 잃어버린다고 원망을 할 것이다. 그런 그녀의 모습이 계속 떠올랐다. 겨울 방학은 다가오고 있는데, 가슴만 두근거리는 나에게 속상했다.             

  선생님이 어떻게 알았는지 겨울 방학을 며칠 앞두고, 내가 전학을 가게 되었다는 말을 아이들에게 했다. 옆에 있던 Y의 얼굴이 갑자기 빨갛게 변하는 것을 보았다. 

  ”우리 학교 잎 떡볶이집에서 볼 수 있을까? “

  아무 말 없이 마지막 수업을 끝낸 그녀가 가방을 싸면서 내게 힘없이 한 말이다. 그녀는 탁자에 마주 앉아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떡볶이가 식어가고 있는데도 먹지를 않았다. 그녀의 얼굴에 눈물이 보였다. 나는 왼쪽 가슴에 달고 있던 하얀 손수건으로 Y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그때는 눈물의 의미를 잘 몰랐다. 그녀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이전 01화 프롤로그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