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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창수 Aug 12. 2024

3화. 바다(Sea)

하고 싶은 이야기 / 에세이

  바다가 보이는 도시에서 태어났지만, 물을 무서워해서인지 수영과는 거리가 멀다. 물속에서 발이 땅바닥에 닿지 않으면 공포부터 밀려오는 것은 아마도 기억이 잘 나지 않는 트라우마 때문이 아닐까. 가장 오래된 기억은 바닷가에서 어머니의 가슴에 안겨 있다가 물을 먹었는지 놀랬던 흐릿한 영상이다. 아이들이 겪는 단순한 상황이었지만, 아직도 잊지 못하는 것은 정신적 충격이 컸기 때문일 것이다. 

  중학교 때 친구들과 서해안의 자그마한 해수욕장에서 조금 멀리 나갔다가 돌아오면서 낮은 곳인 줄 알고 발을 디뎠다가 웅덩이에 빠졌다. 순간 물을 먹고 가라앉지 않으려고 발버둥 치면서, 정신이 없어서 살려달라는 말도 나오지 않았다. 이러다 죽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허우적거리다가 간신히 낮은 곳으로 빠져나왔다. 바닷물이 빠지고 그곳을 가서 보니 작은 배가 정박해 있었던 곳이 움푹 파여있었다.

  친구들과 바다 여행을 가면서 수영 팬티를 가져가 본 적이 없다. 혹시라도 같이 물에 들어가자고 할까 봐, 항상 텐트에서 멀리 있는 바다만 봤다. 짠물도 싫었지만, 밀려오는 파도에 휩쓸릴까 봐 겁이 나기도 했다. 뜨거운 햇빛에 살이 타면 따가운 아픔이 정말 싫었다. 해가 지면 오히려 어둠 속의 바다로 빨려 들어가고 싶은 충동을 받았다. 신을 벗고 모래를 밟으며, 천천히 차가운 바닷물로 들어갔다.


  해외 근무지들이 흑해, 지중해, 홍해를 끼고 있는 나라들이어서 바다 여행을 많이 했다. 흑해는 바다가 시커먼 색일 줄 알았는데, 여느 바다와 큰 차이가 없어서 오히려 실망했던 기억이 난다. 바다에서 이따금 때아닌 폭풍이나 짙은 안개로 위험에 휩싸이게 되는 데서 유래했다고는 하지만, 날씨가 좋으면 파란색의 아름다운 바다로 변한다. 흑해를 낀 국가들이 대부분 과거의 사회주의였거나 공산주의 소비에트연방이었다. 그 당시 흑해 북쪽에 있는 크림반도는 러시아의 여름 휴양지로 각광받았으며, 해변을 따라 루마니아에서 불가리아로 연결되는 해변가는 동구권의 최대의 휴양지역으로 유명했다. 

  지중해는 아름다운 코발트색으로 물감을 뿌려 놓은 호수 같은 느낌이 든다. 지중해 연안의 국가들이 주로 서유럽이지만, 북아프리카, 동지중해의 이스라엘, 레바논 등 중동국가들이 포함되어 있다. 그리스에서 새벽에 크루즈를 타고 에게해서 떠오르는 해를 봤던 감흥은 아직도 생생하다. 이탈리아 나폴리에서 프랑스를 거쳐 스페인 알리칸테까지 지중해를 끼고 자동차로 출장을 다녔던 기억은 잊을 수 없다. 지중해 가운데 있는 몰타는 지중해의 역사를 간직한 세계적인 관광 국가이다. 지리적으로는 이탈리아 남쪽에 위치해 있지만, 영국식민지였다. 한국에서도 신혼여행지, 언어연수로 유명한 나라이다. 지중해의 선물이 바로 몰타가 아닌가 생각된다.

  홍해는 이집트에서 수단, 에리트레아, 지부티 그리고 건너편의 사우디아라비아, 예멘을 끼고 있는 만(灣) 같은 평온한 바다이다. 이집트에 있는 후르가다, 샤름 엘 셰이크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휴양도시이다. 북유럽이나 러시아 등 추운 나라에서 겨울을 나기 위해 많은 관광객이 몰리는 곳이다. 일정한 바람, 잔잔한 바다, 다양한 물고기들을 볼 수 있는 바다의 수족관이 있어 수상의 낙원이다. 대형 리조트에서 아침 일찍 홍해의 일출을 보고, 낮에는 산들바람을 맞으며 해안의 파라솔 밑에서 독서를 하거나 오수를 즐긴다. 저녁에는 곳곳에서 벌어지는 쇼를 관람하며, 함께 춤을 추면서 하루를 마감한다. 여기가 지상의 낙원이다.           

  

  우리나라는 삼면이 바다이다. 어디에 있던 조금만 가면 바다를 만날 수 있다. 섬나라가 아니라면 이런 나라가 얼마나 있겠나. 삼면이 내해로 태풍이 올 때를 제외하면 잔잔한 바다이다. 동해는 흑해, 남해는 지중해, 서해는 홍해 같은 바다이다. 하루에 동해에서 일출을 보고, 서해에서 일몰을 볼 수 있다. 어느 바다보다 마음을 위로해 주는 어머니의 품속 같은 바다이다.      

  가끔 바다가 부른다. 삶이 힘들다고, 인생이 허무하다고 또는 육체가 피곤하다고 바다로 간다. 그곳에는 파란 하늘과 접해있는 수평선이 묵묵히 나를 바라본다. 지나가던 배들이 기우뚱하면서 인사를 한다. 떼 지어 날아가는 새들이 날갯짓하면서 어디론가 서서히 사라진다. 포말이 해변가에 있는 하얀 모래 위로 덮인다. 가끔 산책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따라간다. 그리고 짠 향기를 맡으며, 조용히 눈을 감는다.

  바다가 있는 도시에서 태어나 지금은 내륙에서 살고 있지만. 언젠가는 다시 바다가 보이는 곳으로 가서 살고 싶다. 바다와 대화를 하면서 살아온 인생을 반성하고 싶다. 파도와 주고받는 대화 속에서 모든 것이 허상이었다는 것을 느끼고 싶다. 성찰된 자아를 발견하고, 깊은 잠에 빠져 꿈을 꾸고 싶다. 그리고 조용히 파도에 밀려 먼바다로 떠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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