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고 싶은 이야기 / 에세이
어릴 적에 종로에 살면서 자주 갔던 곳이 사대문 안에 있는 고궁이었다. 고궁에는 오래된 나무, 연못, 그리고 정자(亭子)가 있어 궁궐의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다. 조선 시대에 건축된 경복궁(景福宮), 덕수궁(德壽宮), 경희궁(慶熙宮), 창덕궁(昌德宮), 창경궁(昌慶宮) 그리고 궁은 아니지만, 조선 시대 역대 왕과 왕비 등의 신주(神主)를 모신 유교 사당인 종묘(宗廟)가 있다.
종묘가 집 앞에 바로 있어서 여름에는 나무가 많은 종묘를 통해 창덕궁(오래전에는 ‘비원’이라고 부름)으로 가서 더위를 식혔다. 겨울에는 스케이트를 들고 종묘의 연못에서 놀다가 지겨우면, 창덕궁의 후원에 있는 부용지(芙蓉池)에 타다 관리인 아저씨에게 쫓겨나기도 했다. 친구들과 비원(祕苑)을 지나서 창경궁(오래전에는 ‘창경원’이라고 함) 춘당지(春塘池)까지 가서 스케이트를 타면서 놀았다.
창경궁은 일제 강점기에 창경원(昌慶苑)이라고 하여 동·식물원을 만들어 공원화하였다. 그곳에 있는 춘당지는 겨울에 스케이트를 타는 장소로 유명했다. 춘당지는 중고등학생들이 많아서 친구들과 조용한 곳에서 스케이트를 타다가 결국 이곳까지 왔다. 점심에는 떡볶이, 오뎅을 사 먹으면서 해지기 전까지 놀았다. 그리고 다시 창덕궁, 종묘를 거쳐 집으로 왔다.
덕수궁은 초등학교가 바로 옆에 있어 친구들과 학교 마치고 자주 갔었다. 입장료를 안 내려고 덕수궁 돌담길 뒷문으로 뛰어 들어가면 관리인이 쫓아오기도 했지만, 옆에 있는 학교에 다니는 애들인 줄 알고 잡는 시늉만 한 것 같았다. 그곳에서 술래잡기의 일종인 ‘다방구’를 하면서 해 질 녘까지 놀았다. 덕수궁 안을 이리저리 뛰어다니다가 뒷문 아저씨 만나면 친구들과 도망쳤던 기억도 난다. 아저씨는 뒤에서 아마 웃고 있었겠지.
덕수궁 석조전에(石造殿) 미술 전시회 관람을 위해서 자주 갔다. 한국 최고의 신인 작가 등용을 위한 공모전인 국전((國展))이 열렸던 유명한 장소였다. 덕수궁 돌담길을 걸으면 사귀는 연인과 헤어진다는 속설이 있어서 몇 번 간 적도 있다. 그 당시 덕수궁 돌담길 옆에 가정법원이 있어서 이혼하는 부부들이 많이 오갔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지금은 가정법원이 있는, 이혼 전문 변호사 광고가 많은 양재동이 그런 곳으로 변하지 않았을까 한다.
경복궁은 여러 가지로 잊을 수 없는 곳이다. 고등학교 때 사진을 배워서 출사(出寫)를 자주 간 곳이었다 고궁은 사진을 배우기에 좋은 곳이었다. 아름다운 선들로 이뤄진 건축물, 사계절의 모습이 달라 보이는 풍광 그리고 많은 관람객으로 움직이는 피사체를 찍을 수 있는 곳이었다. 지금은 인물 사진을 함부로 찍지 못했지만, 그때는 몰래 찍는 법도 배웠다. 가족사진에 제일 많은 장소이기도 하다.
군대 생활을 경복궁 안에서 했다. 관람객들은 잘 모르지만. 한국 최고의 정예부대가 그곳에 있었다. 청와대와 가까운 경복궁은 북악산과 더불어 24시간 철저하게 통제되는 곳이었다. 친구들은 강원도에서 민간인 그림자도 볼 수 없다고 투덜거렸지만, 민간인을 24시간 보면서 감시하는 것이 더 힘들었다. 사진을 찍으러 다니고, 군 복무를 하면서 경복궁은 곳곳이 정들어 있는 마음의 고향이다.
경희궁은 최근에 볼 수 있었다. 오래전 서울고등학교가 있을 때 친구들 만나러 가본 적은 있었지만, 그 당시 경희궁은 제대로 보존이 되어 있지 않았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 있지만, 흥선대원군 시절에 경복궁 중건을 위한 자재를 확보하기 위해 경희궁 전각의 대부분이 헐렸다는 것이 정설로 되어 있다. 본래 경덕궁(慶德宮)으로 불렸고, 유사시에 왕이 본궁을 떠나는 이궁(離宮)으로 지어졌다.
어릴 적 사대문 안에 살면서 누리는 문화 혜택은 많았다. 그중에서 조선 시대의 역사를 자세히 볼 수 있었다는 것은 지금도 영광이자,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국민으로서 자부심을 느낀다. 물론 서울시민 자격을 상실한 지도 오래되어 주변을 떠돌고 있지만, 그 당시의 추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아마도 죽을 때까지 잊을 수 없는 기억의 흔적들로 남아 있을 것 같다.
요즘 친구들과 고궁에서 자주 만난다. 그 친구들은 대부분 서울에 살고 있지 않지만, 그곳은 우리의 놀이터였고, 추억이 담겨 있는 장소들이기 때문이다. 어릴 적에는 고궁을 가면 외국인들을 거의 볼 수 없었는데, 이제는 외국 관광객들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한복을 입고, 한국 음식을 먹으며, 한국말을 더듬거리면서 한다. ‘안뇽하세여.’ 고궁들을 생각하면 격세지감(隔世之感)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