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고 싶은 이야기 / 에세이
이스라엘의 역사는 ‘디아스포라’(Diaspora) 한 단어로 축약할 수 있다. ‘흩어진 사람들’(이산·離散)이라는 뜻이다. ‘디아스포라’는 유대교의 규범과 생활 관습을 유지하는 유대인을 가리키는 말이다. 성서의 기록에 의하면 2천 년 전 유대인의 이산이 시작되었다. 그들은 로마군에 의해서 쫓겨난 후, 팔레스타인을 떠나 세계 곳곳에 흩어져 나라도 없이 살았다. 1948년 이스라엘 독립이 선포된 직후, 전 세계에 이산 되어 있던 상당수의 유대인 디아스포라가 본격적으로 이스라엘에 정착했다.
유대인들이 말하는 옛 이스라엘 땅은 팔레스타인으로 불리고 있다. 그들은 1948년 그곳에 나라를 세우며 ‘디아스포라여 안녕!’이라고 외쳤다. 그리고 팔레스타인에 살던 아랍인들을 쫓아내기 시작했다. UN이 권고한 영토 분할을 유대인들은 받아들였지만, 아랍인들은 거부하였다. 따라서 이스라엘 건국은 비극적일 수밖에 없었다. 중동국가들은 이스라엘을 인정하지 않았다. 결국 이스라엘의 정치적 지리(地理)는 전쟁으로 결정됐으며, 이로 인해 이 지역은 이후 수십 년간 전쟁의 상흔에 시달리게 된다.
국토가 협소한 이스라엘은 인구증가에 대처하기 위해 건국 전후부터 이곳의 수원(水源) 개발 및 농지 개척에 심혈을 기울였다. 초대 총리 겸 국방, 장관인 벤구리온(텔아비브의 벤구리온 공항은 그의 이름을 따왔다.)은 지하수를 끌어올리고, 멀리 떨어진 갈릴리호(湖)에서 송수관으로 물을 끌어들여, 사막 남쪽에 비옥한 농지를 만들었다. 그곳에서 농촌 공동체인 키부츠가 시작되었다.
이스라엘은 전 세계에 퍼져있는 유대인들을 불러들였다. 러시아에서는 많은 기술자, 유럽 전역에서도 오랫동안 흩어져 있던 지식인들 그리고 에티오피아 등 인종과 관계없이 유대인이라는 증명만 되면 이스라엘 국민이 되었다. 그들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키부츠라는 집단생활과 국방의 의무를 다하면서 강대국도 무시할 수 없는 지금의 강한 이스라엘을 만들었다.
이스라엘을 알기 시작한 것은 중학교 때 본 영화 '영광의 탈출'(Exodus)이었다. 이스라엘의 독립을 꿈꾸는 유대인들의 투쟁을 그린 내용이었다. 역사에서 버려졌던 사람들이 끈질긴 생명력을 견뎌내면서, 세계 곳곳에서 전전하다 다시 새로운 국가를 세우는 과정을 보았다. 이집트를 탈출하면서 겪었던 이들의 고된 역사가 끝나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만든 이스라엘이었다.
유대인에게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탈무드’라는 책을 접하면서였다. 탈무드는 유대인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했으며, 민족의 동질성을 유지할 수 있는 목적으로 만들었다. 그것은 신앙과 민족정신의 원천이며, 그들의 탁월한 교육과 경제활동을 가능하게 해 준 바탕이 되었다. 유대인들이 '이산민족' (Diaspora)으로 살면서도 정체성을 잃지 않은 이유가 바로 탈무드에 있었다.
유대인에게는 ‘선민의식’이 있었다. 그들은 지난 세월의 고통도, 중동국가들 틈새에서 팔레스타인인들을 몰아내고 이스라엘을 건국할 수 있었던 것도, 신이 이스라엘 백성을 선택하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이 ‘홀로코스트’(Holocaust. 유대인 대학살)를 겪으면서도 살아남은 것은 바로 이 선민의식이 그들을 지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유대인 남자들이 기도할 때 머리에 쓰는 모자를 ‘키파’(Kippa)라고 한다. 키파는 히브리어로 ‘가장 높은 계층’이란 뜻이다. 탈무드에 보면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을 표현하기 위하여 네 머리를 가려라’라고 나와 있다. 온 인류 위에 계시는 하나님을 인식하기 위하여, 구약성서의 613 계명을 받아들이고, 유대인의 일체성을 위하며, 모든 유대인의 선교적 표현으로 키파를 쓴다.
이스라엘에 근무할 때 키파를 줄 곳 쓰고 다녔던 유대인 친구가 있었다. 그는 가족이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남은 이야기, 아버지와 키부츠에서 생활했던 이야기 그리고 군대에서 팔레스타인과의 전쟁을 겪은 이야기를 해줬다. 그를 통해서 유대인의 참모습을 알 수 있었다.
유대인들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왜 세계의 이단아(異端兒)로 불렸는지를 이해하게 되었다. 그들의 실상과 오랜 역사를 거치며 방랑하면서 존재했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들의 질곡의 역사만큼 수많은 고통 속에서도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민족으로 생존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선민의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