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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창수 Sep 13. 2024

12화. 수녀(修女)

하고 싶은 이야기 / 에세이 

  지중해의 역사를 간직한 섬의 나라, 몰타 여행은 수녀님을 만나러 가기 위해서였다. 여행 준비는 항상 즐겁지만, 지난 며칠 동안 착잡한 마음이 더 컸다. 처음 가는 여행지의 설렘보다는, 수녀님이 마지막 안식년을 고향인 발레타(Valletta)에서 보내기로 했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다. 이번 여름휴가로 몰타 방문을 제안했고, 그녀는 흔쾌히 수락했다. 그녀와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만나기도 전에 ‘이별’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고 있었다. 

  텔아비브에서 카이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그녀를 처음 만났다. 기내에서 통로 쪽에 자리를 잡고 앉아있는 내 옆으로 와서 나직한 소리로 창가 좌석으로 들어가도 되겠냐고 했다. 옆에서 본 그녀의 얼굴 모습은 수녀복을 입지 않았다면 어머니를 연상케 했다. 창가에서 밖의 풍경만 보고 있는 그녀에게 '수녀님을 보니 어머니 생각이 납니다'라고 조심스럽데 이야기하자, 살포시 웃으면서 고맙다는 말로 대신했다. 수녀님에게 명함을 주며 필요한 일이 있으면 연락을 달라고 하면서 헤어졌다. 

  수녀님은 40여 년 여러 나라의 어려운 지역에서 사역을 했고, 지금은 이집트 오지마을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어느 날, 수녀님으로부터 메일을 받았다. 마을 어린이들을 위한 여름학교를 일주일 간 여는데, 필요한 경비를 지원해 줄 수 있냐는 내용이었다. 그 내용에는 자세한 내역서가 적혀 있었고, 집 근처 수도원을 통해서 전달했다. 얼마 후, 그녀로부터 감사의 메일을 받았다. 수녀님은 고마움의 표시로 부탁한 가족을 위한 기도를 매일 하고 있다는 내용도 잊지 않았다.     


  한 여름이라 발레타의 바람은 뜨거웠다. 리조트 로비의 온도계는 38도를 찍고 있었다. 여장을 풀고, 수영복 차림으로 풀장으로 내려갔다. 파란 하늘과 물이 어우러져 대형 풀장은 작은 지중해로 변해있었다. 시원한 맥주를 주문하고 더위를 식히기 위해 시원한 풀 속으로 들어갔다. 수녀님께 연락을 하자, 반가운 목소리로 벌써부터 손수 저녁 준비를 하고 있다고 했다. 리조트는 그녀의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그녀가 남동생과 함께 호텔로 왔을 때, 처음에는 평복을 입은 또 다른 모습의 수녀님을 알아보지 못했다.      

  그녀의 집으로 가는 길은 이태리의 전통적인 골목길의 풍경이었다. 건물 사이로 줄을 이어서 매달아 놓은 빨래들과 집집마다 발코니에 예쁜 꽃들의 화분들이 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골목길은 바다로 향하는 가파른 내리막으로 현기증이 날 정도였다. 노을이 지면서 바다는 짙은 오렌지색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문을 열고 계단을 오르자, 수녀님 가족이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몰타는 영국 식민지였으나, 오래전 시칠리아의 지배를 받아 이태리와 흡사했다.  수녀님이 준비한 이태리 가정식 백반이 식탁에 가득했다. 이태리 음식은 마늘을 많이 사용해서인지 한국 음식과 그 맛의 느낌이 비슷했다. 집에 걸린 사진에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테레사 수녀와 찍은 사진도 보였다. 사진 속 수녀님의 앳된 모습이 그녀의 사라 온 흔적을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다음 날 수녀님과 하루 일정으로 몰타 여행을 떠났다. 그녀는 처음부터 수녀가 될 생각은 없었다. 사귀던 남자 친구가 어느 날 신부의 길로 가겠다는 충격적인 말을 듣고서, 그녀는 ‘모든 것을 버리고 나를 따르라.’는 예수의 말을 좇아 수도생활을 시작했다. 처음에 많은 방황을 했으나, 테레사 수녀가 인도에서 활동하는 모습을 보면서 마음의 평안을 찾았다. 40여 년을 오직 한 길만을 보고 꾸준히 걸어왔다는 그녀의 모습에는 여한이 없어 보였다. 

   몰타는 수도 발레타가 있는 몰타(Malta), 고조(Gozo), 코미노(Comino) 등 6개의 섬으로 되어 있다. 섬마다 약간의 문화적 특색이 있었다. 오랜 역사만큼이나 다양한 건물양식과 지중해의 음식들이 40만 명도 안 되는 인구보다 더 많은 관광객들을 유혹했다. 사면이 지중해로 둘러싸인 해안가에는 수많은 집들이 해변을 따라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었다. 시내 관광투어는 영국식 빨간 2층 버스가 운행되었고, 섬은 페리가 연결시켜 줬다. 지중해의 낙원 몰타의 하루가 푸른 바다와 역사의 흔적이 가득한 섬으로 빨갛게 저물어 가고 있었다. 

  수녀님과 저녁에 같이 간 곳은 발레타에 있는 대통령궁이었다. 1년에 한 번 전 세계의 청소년들이 모여 콘서트를 열었다. 화려하지 않은 궁은 각국에서 온 관광객들이 클래식을 통해서 한 마음이 되는 시간과 공간이었다. 수녀님이 입은 평상복이 환속하는 세상과 어울리는 것 같았다. 대통령궁의 우아한 조명과 오케스트라의 화음이 어두운 밤하늘을 수놓고 있었다. ‘구노의 아베마리아가’ 첼로와 피아노의 협연으로 퍼져가고 있었다. 내가 수녀님을 본 마지막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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